토요일 2시, 남대문앞 우리빌딩의 신한생명보험 회사에 갔다. 그 회사 노조가 넓직한 교육장을 갖고 있어서 거기를 빌려 ‘사회주의 강령발표회’를 연 것이다.
‘문화’ 강령 작성이 여러번 퇴짜를 맞아서(포스트모더니즘 비판, 진리사건으로서의 예술을 언급한 대목이 난해하고 방향이 빗나갔다 등등. 원래 문화강령은 그 방면의 운동가나 이론가에게 맡기려고 찾아봤는데 신통한 사람이 없어서 하루이틀 앞두고 내게 작성 임무가 떨어졌다)
밤을 (강령작성팀 모두가) 꼴딱 새고 불과 한 시간 눈 붙이고서 행사장으로.
제일 먼저, 경북 구미에 사는 노동자들이 봉고를 타고 달려왔다. 경기 안산에서 몇이. 제주 축협 노조에 있는 친구도 둘이. 필리핀과 네팔의 이주노동자 몇몇도. 안 온 곳이 어디더라? 전라도와 충남. 인천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전교조 교사는 경북과 강원, 충북과 서울에서 한명씩. 반가운 것은 대학생 두 명이 찾아와 주었다는 것이다. 서사협 행사를 주동한 고려대 사범대 친구에게 단단히 일러서 그 친구가 후배 한 명을 데불고 왔는데 순딩이같은 1학년 국어과 학생. 꼬박 듣고 갔으니 견문이 좀 넓어졌겠지. 비정규직 집회 있지, 황금의 10월에 미리 잡혀 있는 행사들(등산 등등) 많지, 연락도 좀 늦게 갔지.... 그래도 “여기서 무슨 얘기 하려고 하나” 궁금해서 찾아온 타 단체 여러 사람까지 합쳐서 행사장은 꽉 찼다.
민노당 정책위원장 이용대는 지난번 베네주엘라 보고회때 (토론자로서) 영양가 없는 발언을 해서 ‘토론자’로 부르지 않았는데, 이곳이 궁금했는지 스스로 찾아왔고 발언도 했다.
“주30시간 노동을 쟁취하자”고 하는데, 그게 현실성 있는 대안인지 묻고 싶다고 그가 말하길래, 다른 참석자가 귓속말로 “저 사람, 노동운동 한 사람인가요?” 내게 묻는다. “아니오, 통일운동한 사람이지요.”
속내, 즉 경계심도 드러냈다. “당신들이 (민노당에서 제기하지 않은) 의제들을 선점해서 발표했는데, 그 정치적 책임도 지시오....”
당 선전도 빼놓지 않았다. “코리아연방공화국 제안은 꼭 통일운동 차원이 아니라, 대한민국 아닌 새 나라를 만들자는 취지다. 대선 이후에 더 활발하게 토론하자....”
글쎄, 선거용으로 만든 낱말인 줄 알았는데 ‘혁명용?’으로 만든 것이었나? 뒤풀이 자리에서 민노당 간부 한 사람이 응, 그거? 오만 가지 내용이 코리아연방국 설계에 들어있대...궁금한 것은 다 그 설계를 들여다보면 찾을 수 있대...하며 쿡쿡 웃었다.
토론자 김영수는 ‘연대사회’가 독자적인 사회구성체냐, 혁명적 민주주의 사회와는 어떻게 다르냐 등등 개념을 주로 따지고 물었다. “당신들이 국가 소멸을 이야기하는데 꼭 남북이 통일해야 하느냐, 평화공존으로 가도 되는 거 아니냐?”하고 발언했다가 또다른 토론자, 엔엘파 중에서는 치열한 사람에 속하는 김종일이 나중에 “당신, 통일을 반대하느냐?”고 따지고 들자 황급하게 발뺌했다. “아니, 국가 소멸을 이야기하길래, 그렇다면 생각해볼 만하다고 한 것”이라고... 강단 학자들은 이렇게 일전의 오세철처럼 현실 운동의 흐름에 찬물을 끼얹는 생각들을 꺼내놓을 때가 있다.
토론자 김성구는 왕년에 ‘피디’파의 이론가로 활약했는데 요즘은 건강도 나쁘고 의기소침해져서 가까스로 토론자로 모시게 되었다. “재벌은 국유화해야 맞지, 그저 ‘해체’하는 것은 문제 있다.”고 일침을 놓는다. 강령을 책임질 ‘주체’도 없는데 ‘왠 강령?’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요즘 세계 자본주의의 흐름이 30년전의 위기보다 훨씬 심각하다. 그때와 달리, 각국 자본가 정권들이 위기 관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겉으로 폭발하는 것을 막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객관조건을 보자면 ‘강령 제출’이 이해가 된다.
도산 기업들을 국가 개입으로 살려놓은 것부터 국유화하자는 제안은 현실적 방안이라고 본다면서 그러나 ‘세계 동시혁명’은 각국 자본주의가 ‘불균등’ 발전을 하고 있어서 현실성이 없다고 뿌리깊은 ‘일국 사회주의’ 관념을 표명했다.
주최측의 답변 ; 노동자계급의 역량이 대단히 발전하지 않고서 ‘재벌의 국유화’까지를 주장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지금은 ‘재벌 해체’ 담론조차 자취를 감춘 형편이다. 자본이 집중되는 경향이 필연흐름이니 ‘여러 기업들을 뿔뿔이 흩어놓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국유화’를 말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자본가들의 사회정치적 ‘지배력’을 꺾기 위해서는 재벌에 속한 여러 기업들을 흩어놓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그래야 재벌이 언론까지 장악하는 그런 사태를 물리치지 않겠는가)
‘세계 동시혁명이 불가능하다’는 말은 혁명을 ‘일회적인 폭발’로서 간주할 때에 도출되는 생각이다. 급진적인 혁명과 완만한 개혁이 뒤섞여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는 ‘긴 기간’을 혁명으로 사고할 때에는 ‘세계 동시 혁명’이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엔엘파 중에 진정성 있는 친구들은 ‘통일투쟁’보다 ‘자주화 투쟁’에 나서는 사람들이다. 평택 투쟁을 해온 김종일은 ‘강령이 훌륭하다’면서 다만 ‘한반도 평화’를 넘어 ‘동북아 평화’까지 욕심냈으면 좋겠다고 덧붙인다. 그는 “유엔사 해체, 주한미군철수 일만인 선언” 서명운동을 열심히 호소하는 것으로 발언을 마쳤다.
토론자 채구묵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다음 세대를 위한 복지”에 대해서도 더 고찰해 주기를 주문했다. 아이들 기를 엄두를 내지 못하니까 아이를 낳지 않는 것 아니냐? 한국이 ‘아동 복지와 아동 인권’에 너무나 무관심한 나라라는 사실은 교육자들도 늘 잊지 말아야 할 것.
채구묵은 사회주의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잔뜩 드러냈다. “사실 내가 존경하는 박승희 교수가 불러주었기에 나왔을 뿐이다. 그런데 ‘복지’는 스웨덴이 최고 아니냐? 현실사회주의보다 더 낫지 않으냐?” 그러더니 민주노총에 대해 버럭 목청을 높인다. “비정규직 받아 안을 생각도 못하는 데가 무슨 노동운동 한다고 그러느냐? 귀족 노동자들, 자기 밥그릇 챙기는 곳!!”
* 또다른 토론자 이재영(민노총 서울본부장)이 “그 비판을 달게 받겠다”고 즉각 수용해서 그 논란은 더 벌일 필요가 없었다. 사실, 이재영도 속으로 울고 싶을 것이다. 비정규직들을 받아 안을 민노총의 활로는 ‘지역본부들의 강화’에 있는데 대대적 혁신 없이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 택지국유화강령 작성자 강남훈이 답변. “스웨덴이 훌륭한 업적 보인 것은 잘 안다. (물론 문제도 있지만). 그런데 우리가 사민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영국/독일/프랑스 사민당을 겨냥하는 말이다. 스웨덴은 오히려 ‘대다수 사민주의’와 달리 예외적인 것이고, 후진국들에 대해 ‘초과이윤’을 챙기는 선진자본주의국이라는 조건에서 달성한 것이다. 그래서 그 나라의 사례를 ‘일반화’할 수가 없다.
* 토론자 최병두는 ‘생태 사회주의’를 유일하게 모색하는 학자다(‘녹색평론’의 김종철 등등은 ‘생태’는 말하지만 사회전망은 노무현 초기만 해도 ‘노무현 지지’였고, 최근에야 ‘사민주의 동조’쯤으로 좌경화했을 뿐이고, ‘생태’를 연구하는 사람이 사민주의 아닌 사회주의까지 주장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그의 말에는 ‘외로움’이 묻어났다.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고, 실천이 충분하지 못하니 그의 말은 ‘이론적 설명’으로 시종했다. 참, 최병두 자신이 말했다. “이것의 실현 여부는 나중 문제이고, 지금은 이런 강령을 통해서 ‘담론 투쟁’을 벌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 방청객의 발언 ; ‘주 30시간’을 한다면 지금 같아서는 노동자들이 ‘옳닷꾸나’하고 ‘더 많은 잔업 특근’을 챙겨서 더 돈벌이하려고 환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올 것이다. 왜 그런가? ‘노후’가 보장되지 않아서다. 나는 내 주변에서 75살 된 노인이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서 노동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80살 되어서도 살아남기 위해 노동해야 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이 말이 발표회장에 앉아 있는 사람들 가슴팍을 둔탁하게 ‘탁’ 치고 공기 중으로 흩어져 갔다. 미래의 꿈을 한창 좇다가 문득 현실을 되돌아본 사람들 가슴팍에서는 ‘억’하는 한숨이 흘러나왔다.)
.....어느새 창밖은 캄캄해졌다. 발제자 토론자들이 꾸부정한 모습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데, 문득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마지막 장면이 오버랩되었다.
“그 곳이 어디에 있습니까?” 묻는 학생들.
“그 곳은 달나라에 있다. 종이비행기를 타고 다같이 달나라로 가자.” 수학선생의 답변.
선생은 꾸부정한 모습으로 문을 닫고 나갔다. 날이 어둑해졌다.
.....“87대투쟁”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THE 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