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권뉴스 2007·11·30]
작가 최인훈과 민성노련, 주체적 성노동자 '심청이'로 만나다
최덕효(대표 겸 기자)

▲‘달아달아 밝은 달아’의 한 장면과 작가 최인훈 (서울시극단 사진)
주체적 매춘여성으로 재해석한 현대판 심청전 ‘달아달아 밝은 달아’
소설 '광장', '회색인' 등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 최인훈(71)이 30년 전 초연 당시 여론의 논란을 일으킨 작품 ‘달아달아 밝은 달아’를 가지고 돌아와 화제다.
최인훈의 희곡을 연희단거리패를 이끄는 '문화게릴라' 이윤택(55)이 연출한 이 작품은 12월 1일부터 16일 서울시극단 창단 10주년 세종 M시어터 개관 기념작으로 올려지는데, 가뜩이나 성매매 특별법으로 한국사회에 매춘에 대한 낙인이 가중되고 있는 이 때에 심청이를 매춘 종사자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주체적인 여성으로 그리고자 한 작가의 의도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다시한번 문화계의 쟁점이 될 전망이다.
화제의 작품 ‘달아달아 밝은 달아’에서 심청이는 부친의 공양미 3백석 마련을 위해 중국에 몸을 팔러가 용궁이라는 이름의 색주가에서 매춘부가 되는데, 초연 때 이와 관련하여 보수적인 평론가 집단으로부터 작가가 우리나라 효녀의 상징적인 존재라 할 수 있는 심청이를 자발적으로 몸을 파는 매춘부로 타락시켰다고 말들이 많았었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매춘을 보는 시각이 진보되기는커녕 성매매 특별법 시행으로 더 수구적으로 엄혹해진 까닭에 ‘달아달아 밝은 달아’ 공연은 30년 전 못지않게 도덕성을 두고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더욱이 민심은 늘 그렇듯이 묻히기 마련인데다 요즘은 보수진영은 물론 진보진영의 다수도 이런 비난에 가세하고 있어 결코 만만한 상황이 아니다.
이런 분위기를 염두에 둔 듯 최인훈이 공연에 앞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던진 화두는 자뭇 의미심장하다.
그는 심청이를 왜 매춘부로 설정했냐는 물음에 “딸이 등 떠밀려 제물이 된다는 것이 민족의 아름다운 유물로 생각되지 않았다. 자신의 결정에 따라 집안을 위해 몸을 파는 것이 오늘날에 비춰서도 오히려 현실적이지 않느냐.”며 초연 당시 부정적인 반응에 대해서도 “전위·현대 연극에서 그 정도는 농담 수준이다. (그걸 이해 못하는)촌뜨기들이랑 무슨 얘길 하겠어. 연극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동시대인들과 호흡하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원래 심청전에서는 효심 가득하고 어여쁜 심청이가 부친인 심학규의 눈을 뜨게 하려 공양미 마련을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지지만, 옥황상제가 이를 갸륵하게 여겨 용궁에서 살게 도와준 뒤 마침내 연꽃을 타고 환생하여 왕비에 이르고, 드디어 전국의 장님들을 모아 잔치를 베풀어 심봉사도 찾고 그의 눈을 뜨는 것으로 그려지지만 최인훈은 이런 식의 환타지를 거부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달아달아 밝은 달아’는 뻔한 헐리우드식 해피엔딩을 섞어놓은 듯한 단순한 동화 수준의 심청전 스토리를 오늘날 어른들의 눈높이에서 공유할 수 있게끔 효녀로 박제화된 심청의 이미지를 '주체적 여성'으로 바꿔 놓았다는 지적은 온당하다. 따라서 이는 일각에서 말하듯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떠받치는 심청을 이렇게 망가뜨"린게 아니라 "고전을 역사적으로 재해석했다"는 칭찬을 받을만 하다.
흥미로운 것은 치열한 작가정신의 최인훈과 성노동운동의 전위 민주성노동자연대(민성노련)가 현대판 심청이로 조우했다는 사실이다. 현재 민성노련은 자신들을 '성노동자'로 호칭하며 노동조합(법외)을 결성해 활동하고 있는데 이들은 지난 2005년 고려대에서 열린 성매매 특별법 시행 1년 토론회 주제 발표를 통해 통계를 들어 오늘날 성노동자의 삶을 심청이에 비유한 바 있다. 민성노련은 최인훈과 마찬가지로 관제용어인 '성매매'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선불금’을 약간 풍자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고전에서 빌려오는 것을 허락한다면, 심청전을 예로 들고 싶다. 우리 성노동자들의 삶은 늙으신 눈먼 아버지 심학규의 눈을 뜨게 하기위해 심청이가 공양미 3백석(요즘 시가로 약1억5천만 원)에 몸을 팔아 인당수에 뛰어든 것과 닮은 데가 많다. 공양미는 오늘날 선불금과 같다. 성노동자들 83%가 가족의 병수발을 들며 생계를 돌본다. 다수 성노동자들은 인당수에 뛰어드는 대신 성노동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민성노련 이희영 위원장 발표 "성노동자 운동의 이해와 과학화" 중에서)
그건 그렇고, 이쯤되면 주류여성계와 기독교계는 효녀 심청이를 매춘부로 망가뜨린(?) 연극 ‘달아달아 밝은 달아’가 가족주의에 익숙한 시민들에게 미칠 악영향을 차단하기 위해서 30년 전 보수계 평단 분위기처럼 뭔가 도덕적인 액션을 취할 법도 한데 과연 그럴 수 있을른지, 뜻있는 이들은 12월 1일부터 이 작품이 공연되는 세종 M시어터 앞 상황을 한번 지켜보는 것도 좋겠다. [한국인권뉴스]
[자료제공] 한국양성평등연대 (평등연대)
http://cafe.daum.net/gendersolidarit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