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대통령의 동상건립주장은 국민과 역사에 대한 모독행위(冒瀆行爲)
<부제: 독재자는 동상건립과 국립묘지 매장도 절대 불가하다>
o. 이승만대통령의 동상건립 주장
제대군인 단체인 국민행동본부(본부장 예비역대령 서정갑)는 2008년 3월 6일 조선일보에 ‘이승만 건국대통령의 동상을 다시 세웁시다’ 라고 광고했는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1. 이승만대통령은 대한민국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국가이념 위에 세운 위대한 민족지도자였습니다.
2. 농지개혁, 교육개혁, 한·미동맹구축 등 이승만대통령의 업적이 있었기에 박정희대통령의 근대화가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3. 작년 한국은행은 고액권에 이승만대통령 대신 김구, 신사임당 얼굴을 넣기로 했습니다.
4. 건국 60주년을 맞는 올해 이승만박사의 동상을 서울 한복판에 다시 세워야 합니다.
o. 이승만대통령의 동상이 철거된 배경
그러나 6·25전쟁으로 전국토가 파괴되어 국민들이 생활난에 허덕이고 있는 가운데 이대통령은 독재를 하는데도 간신들이 서울 남산에 큰 규모로 바닥을 대리석으로 깔고 거대한 동상을 세웠을 때 국민들의 원성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고 있는지 묻고 싶다.
여북하면 1960년 4·19학생혁명때 이승만의 동상이 철거되었겠는가.
그러므로 독재자 이승만과 박정희의 동상건립과 국립묘지매장도 안되는 이유를 우리 모두 살펴보자. 과거 역사를 똑바로 모르면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o. 독재자 이승만대통령: 자유민주주의를 짓밟았다.
1948년9월10일 국회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처벌법을 만들어 반민족특별위원회에서 친일파를 구속하기 시작했는데, 이승만대통령은 친일파들과 손잡고 권력노름에 빠져서 무장결찰이 반민특위를 습격하여 친일파를 풀어주게 하는 등 친일파청산을 철저하게 방해한 결과 역사정의를 세우지 못하여 친일파세상이 되다보니 역사의식과 사회정의가 마비된 나라를 만들었으므로 역사의 반역자가 되었다.
그런 결과 친일파인 박정희소장 등이 총칼로 정권을 강탈하게 되었으며, 1920년대초 발행한 조선일보(사장:친일파 방응모)와 동아일보(사장: 친일파 김성수), 1965년 발행한 중앙일보(사장: 친일파 홍진기) 등 3대 수구신문은 군사독재를 찬양하며 기생하더니 김대중정부때부터 민주평화개혁정부를 거짓말과 궤변과 선동 선전으로 흠집만 낸 바와같이 한나라당과 조·중·동 등의 친일과 군사독재수구세력이라는 암덩어리를 후세에 상속시켜 우리나라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1952년 피난 수도인 부산에서 간선제 대통령선거에 자신없으므로 국민이 뽑는 대통령직선제를 통과시키려고 버스로 국회 회의에 참석하러 가는 야당의원을 공산당프락치라는 이름으로 구속하고 경찰과 백골단과 땃벌떼 민족자결단 등의 유령단체들이 국회를 포위한 속에서 대통령직선제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그것도 모자라 국회는 1954년 초대대통령만 종신대통령하도록 중임제한을 폐지하는 헌법개정안을 가결했지만 한 사람이 부족한데도 사사오입(四捨五入)이라는 수학공식을 도입하여 엉터리로 가결했다.
또 그것도 모자라 1960년 3·15정·부통령선거때 관권개입 등의 부정선거가 극심하여 4·19학생혁명시 경찰의 총탄에 수백명이 죽고 수천명이 부상당했으니 역사의 반역자인 영구 독재자가 어떻게 국립묘지에 묻힐 수 있는가.
o. 독재자 박정희대통령: 자유민주주의를 없앴다
더구나 박정희 전대통령은 보리고개를 없앴다고 하는데 그것 하나로 그의 수많은 죄를 씻을 수 없다.
1.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사 졸업후 일본군장교되더니, 1945년8·15해방후 광복군에 입대했다가 귀국하여 육사2기로 졸업했지만 일본천황을 찬양하고 일본식민지배에 기생한 친일파다.
2. 1948년 전남 여수와 순천에서 남로당(남조선로동당)공산군 반란시 박정희소령은 가장 높은 계급이었으며, 사형구형시 군부내 남로당 당원들의 이름을 털어놓고, 군부내 남로당조직표까지 그려서 제출한 공로와 만주군 선배들의 구명운동으로 감형되더니 얼마후 석방되어 복직했지만, 공산주의사상범으로 군사반란에 참가할 정도로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안했음을 보여 주었다.
3. 1961년5월16일 박정희소장 등이 쿠데타를 일으키자 미국이 박정희사상을 캐고 다닌다는 정보에 따라 미국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조용수 민족일보사장을 혁명재판에 회부하여 조총련계로부터 불법자금을 받아 북한괴뢰집단이 지향하는 목적수행에 적극 활약했다는 죄를 만들어 1961년12월22일 32세 나이로 억울하게 사형했다.
그뿐만 아니라 보도연맹관련자와 혁신정당관련자 좌파이데오르기에 물든 지식인 사회단체와 노조지도자 등 4천여명의 사회불만세력과 좌익활동경력자들을 체포 구속했다.
이와같이 박정희는 빨갱이경력을 세탁하기 위해 빨갱이 사냥을 했다.
4. 장면 민주정권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하려는 순간 박정희소장 등이 쿠데타를 일으키지 안했으면, 한·일회담에서 식민지배상금을 한국측이 18억달러, 일본측이 12억달러 주장했으니까 중간 타협만해도 15억달러 받아 자유와 인권을 누리며 보리고개를 더 잘 넘을 수 있었다. 그 당시는 국내와 국제경제규모가 작아 15억달러는 큰 자금이었다. 예를 들면 1964년 우리나라수출은 1억달러이었으니까.
그렇지만 박정희 군사정권은 한·일회담으로 겨우 무상 3억달러를 받더니 미국이 원하지 않는 베트남전쟁에 자청하여 월남특수로 10억달러벌어 보리고개를 없앴다고 국민을 세뇌시켰는데, 베트남전쟁에서 국군전사자 5천명이상과 상이군인 1만6천명 이상이 발생하고, 고엽제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5. 영구집권 위해 전무후무한 유신체제를 만들어 긴급조치1호에서 9호까지 공포하여 국민들을 우리 속에 가두어 놓고 언론 출판 집회 시위 결사 등의 자유를 박탈하여 자유민주주의를 없애버린 역사의 반역자가 되었다.
그런 결과 민주화인사들과 대학생들이 구속과 고문 등으로 고통을 당하고, 심지어 조작된 인민혁당사건에 관련되었다고 사형을 선고받은 8명은 1975년4월8일 대법원에서 상고기각된 다음날 새벽6시 사형집행되었으니 상고기각된 지 20시간만이었다.
고문사실이 폭로될까 두려워 유족의 동의없이 화장시켜 버렸으니 법원과 법관은 있으나 마나였다.
6. 공화당재정위원장이 정부건설공사마다 10%수금하여 박대통령에게 상납해서 공화당정치자금으로 쓰고, 야당일부정치인과 여기저기 뿌려 꿀먹은 벙어리와, 사꾸라, 왕사꾸라도 만들었으며, 중앙정보부의전과장이 채홍사(彩紅使)가 되어 주색도 맞추었으니 조폭두목에 부정부패의 왕초가 되었다.
7. 1963년 대통령선거때부터 박정희를 당선시키기 위하여 지역감정과 지역갈등 지역주의 를 만든 결과 현재도 국민들이 갈갈이 찢어져 국민화합은 힘들고 지역갈등과 지역주의가 계속된다.
8. 내각책임제 장면총리가 1960년8월23일 국회 임명동의를 받았는데, 박소장 등은 1961년5월16일 9개월도 안되어 무능부패해서 총칼들고 나섰다고 했으며, 심지어 육사8기중심으로 1961년9월10일부터 쿠데타모의를 했으니, 어떻게 18일만에 무능부패한 정부가 될 수 있는가.
박정희소장 등이 권력에 미쳐서 거짓말로 국민을 선동한 증거다.
그러므로 박정희소장 등은 민주정권을 총칼로 강탈했을뿐만 아니라 언론 출판 집회 시위 결사 등의 자유와 인권을 짓밟아 자유민주주의를 없애고 역사의 방향을 거꾸로 가서 역사정의와 사회정의를 없애버렸기 때문에 역사의 반역자들이다.
추종자들도 역사의 반역자인 역적들이다.
o. 독재자들이 국립묘지에 묻힌 것은 정의가 없는 증거
따라서 독재자들이 국립묘지에 묻힌 것은 역사정의와 사회정의가 모두 죽어버린 증거이다.
그러므로 하루속히 독재자들을 국립묘지에서 추방해야 잃어버린 정의를 살려낼 수 있다.
독재자들이 국립묘지에 있는한 추종자들이 국립묘지에 모여서 활개치게 되고, 국민들은 잘못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미리 홍보한 후 개인묘지로 이전하도록 해야한다.
남산에 세운 이승만대통령의 동상도 철거했는데, 어떻게 독재자들을 국립묘지에 묻혀있게 할 수 있는가.
2008년 3월 19일 김 만 식 (사)평화통일시민연대 지도위원
(사)동아시아역사시민네트워크 정책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