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메이데이다. 알리안츠 파업이 100일째를 맞는 날이기도 하다.
또 시끄럽겠지. 이 파업이 메이데이를 더욱 빛나게 할까?
알리안츠 경영진의 무능과 아집으로 빗어진 작금의 사태는 노동자들의 분노와 저항을 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알리안츠가 계속기업으로서의 가치를 유지하며, 그들이 그토록 원하는 ‘수익성 있는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선 ‘위로부터의 자기혁신’보단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 지금의 파업투쟁이 이러한 효과를 창출하면 얼마나 좋을까? 이 엄청난 노동투쟁의 열기를 힘입어.
무당집이다. 그래 파업현장은 영락없이 무당집이다.
그런데 그 무당집엔 선무당이 득실거린다.
신 내린 영매도 영혼의 씻김도 없이,
그저 한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갖고 장난치는. 장사하는.
이들은 점차 고립되고 있다. 자신들도 놀란 자신들의 힘에 취해서. 오만해져서. 자신들도 모르게 자신들이 그토록 저주하는 상대방을 닮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양자가 오만을 공유한다.
신명 나게 한 판 놀아보니. 좋던가! 접신해보니 개명천지가 열리던가!
개명천지가 열리니 눈에 뵈는 게 없던가! 에끼, 이 미련한 자들아.
어떤 역사에서 이 따위 굿판이 새 역사를 열었던가 말이다.?
딴은, 얼치기 영매들이 문제지. 미련한 중생들이야. 쯧쯧.
어느 샌가 이 굿판엔 잔뜩 낀 ‘살(煞)’과 마(魔)’가 씻기기는커녕 자꾸 쌓여만 간다. 무구(巫具) 소리만 요란할 뿐 접신(接神)은 없다. 영험함이 아닌 시산함만이 감돈다. 그 분이 거의 오신 것도 같은데, 왜 자꾸 파루시아는 지연되는 것일까?
이쯤 되면 유사 신 내림 현상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들에겐 모든 것이 너무 명료해 진다. 세상의 선과 악이 너무나도 명백해 진다. 자신들의 눈을 통해 신령함을 보지 못하는 모든 다른 이들은 참말로 지옥 불구덩이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정말 가련한 영혼으로 보인다. 이 때, 그들 앞에 나타나는 것이 있다. 자신의 주신(主神)인가. 아니다. 바로 작두이다. 위험한 작두타기를 해야한다. 미련스럽게.
잘 짜여진 지배블럭과 싸워본 적이 있는가? 공권력. 법률. 언론 그리고 돈의 블럭! 이 들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것이 그대들이 아무리 생각해도 틀린 곳 전혀 없는 성명서일 거라 생각하는가? 민노총과 참여연대일 거라 생각하는가? 그대들의 노래와 함성, 그리고 쌍소리일 거라 생각하는가?
그대들 곁엔 정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 없다.
어드바이저가 없다. 동료가 없다
경영진이 가장 무서워하는 게 그대들에겐 없다.
이들을 고스란히 경영진에 바친 게 누구인가?
어드바이저들이 겪은 그리고 겪을 고통을 그대들이 나누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감히 이 파업에서 어드바이저의 지지를 얻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대들의 현재의 행동에는 반대하지만 그대들의 분노와 절망을 이해하는 동료들에게 욕을 퍼부은 자들은 또 누구인가?
도대체 그대들의 눈엔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세력의 종류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나? 노조만으로(그것도 선무당이 판치는) 승리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도대체 적은 고사하고 자신들이 누구인지는 아는가?
“단결만이 살길이다. 노동자가 살길이다.”
이 노래를 기억하는가? 이 노래를 부르면 눈물이 나는가?
그 눈물에 그대들 스스로가 속는 것을 정녕 모르는가?
누가 그 단결이 그대들만의 단결이라고 가르쳤는가?
도대체 누군가?
그대들의 눈엔 파업참가자만이 노동자로 보이는가?
수천 명의 어드바이저는? 파업에 참가하지 않는 수백 명의 동료들은?
명심하라.
그대들의 투쟁은 파업이지 혁명(전쟁)이 아니다.
싸움이 끝나도 새 세상은 오지 안는다. 돌아갈 곳은 여전히 구세상이다.
탓으로. 그대들의 투쟁공간은 요새이어서는 안 된다. 진지이어야 한다.
결딴 낼 요새가 아닌 지속적인 투쟁이 전개 되야 할 진지이어야 한다.
근데, 그런가?
누군가? 그대들에게 이게 전쟁이고 요새라고 강변하는 자들이?
천길 낭떠러지를 만나도 의연하게 한 발 내디딜 수 있어야 진짜 투쟁이다.
온갖 기복적 욕망으로 가득 찬 굿판에선 탐욕과 변절만이 난무할 뿐이다.
자본의 승리 뿐만 아니라 그대들의 승리조차 나는 두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