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동(反動)의 역사가 계속되는 슬픈나라 우리나라

상식(常識)도 역사의식(歷史意識)도 없는 사람들

반동(反動)의 역사가 계속되는 슬픈나라 우리나라
<부제: 상식(常識)도 역사의식(歷史意識)도 없는 사람들>


o. 상식도 역사의식도 없는 사람들
반동이란 정상적으로 발전하는 역사의 흐름을 역행하여 가로막는 것을 말하고, 상식이란 보통사람으로서 으레 가지고 있을 일반적인 지식이나 판단력을 말하며, 역사의식이란 과거역사를 반성하고 가야할 역사의 방향을 깨달은 것을 말한다.

그런데 2008년4월2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친일인명사전수록인물 4,776명의 명단을 공개하니까 수구세력은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체제를 위협하는 친북행위라며 사전편찬을 방해하고, 자칭 뉴라이트라는 학자들은 일본우익의 식민지근대화론을 빌려와 한.일합방을 미화하고 친일행위를 비호하고 있다.
더구나 이명박대통령은 4월29일 청와대에서 불교 기독교 천주교 등 7대종단대표들과 오찬간담회에서 “친일문제는 국민화합차원에서 봐야한다. 우리가 일본도 용서하는데 ...”라며 “친일문제는 공과를 균형있게 봐야한다”고 말했다고 하니 이런 세력들의 행동을 아무리 생각을 곱씹어 보아도 상식이나 역사의식을 찾아볼 수 없고 반동의 역사를 계속하겠다는 주장만 보일뿐이다.
왜 이렇게 정의와 역사발전이 짓밟히고 있는가를 똑바로 알려면 독일한테 4년간 지배받고 역사청산을 철저히 한 프랑스와 일본한테 36년간 지배받고서도 역사청산을 하지않은 우리나라를 비교해 보아야 한다.

o. 4년간 독일의 지배받은 프랑스
영국에 망명했던 프랑스 드골임시정부는 ‘애국자는 상을 받고 반역자는 벌을 받아야 사회정의가 서게된다’는 드골장군의 신념에 따라 나찌에 협력한 민족반역자에 대한 역사청산을 철저히 했다.
악질적인 나찌협력자는 사형집행이 1만2천명, 고위나찌협력자는 종신형이 3천명, 적극적인 나찌협력자는 징역형1만명이나 된다.
특히 언론은 전파력이 강하고 영향이 크기 때문에 언론에 대한 처벌은 더욱 엄격하여 독일점령기간중 15일이상 발행한 신문은 직접이든 간접이든 모두 나찌에 협력한 것으로 간주해 폐간시키고, 신문사재산은 모두 국고로 몰수했다. 이와같이 프랑스는 잘못된 역사청산을 철저히 해서 역사정의를 바로 세운 결과 사회정의가 바로 세워져서 오늘날 정의가 살아 숨쉬는 문화국가로 발전했다.

o. 36년간 일본의 식민지로 착취된 우리나라
그러나 우리나라는 프랑스와 반대의 길로 달려왔다. 1948년8월15일 대한민국이 건국되자마자 1948년9월10일 국회에서 반민족행위처벌법이 제정되었는데도 이승만대통령이 반대하고, 친일파들은 ‘반공구국총궐기대회’ 를 열어 민족을 분열시키는 법이라며 국회내에 있는 공산당프락치들이 음모한 것이라고 공격했다.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약칭;반민특위)가 구성되자 반민특위 관련자15명을 암살하려다가 발각되고, 고등계형사로 애국지사들을 체포해 잔인하게 고문하던 노덕술을 구속하자 이승만대통령이 석방을 요구했다.
그뿐만 아니라 반민법에 적극적이었던 소장파국회의원 두명이 남조선노동당(남노당)에 접촉했다며 국가보안법위반혐의로 구속되고, 이승만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1949년6월6일새벽 무장경찰이 반민특위사무실을 습격하여 반민특위직원과 특별경찰들을 모두 체포하고, 6월21일 국회프락치사건 2차검거로 소장파 핵심국회의원들이 구속되고, 6월26일 김구선생이 암살되는 공포분위기속에서 반민특위를 없애는 반민특위개정안을 또다시 국회에 제출하여 통과된 결과 이로써 친일역사청산의 길이 막히게 되었다.

o. 친일역사를 청산하지 않은 결과
그리고 국회프락치사건은 국가보안법으로 구속한 용공(容共造作)의 첫사례이지만 군사독재32년간 국가보안법이 용공조작하는 도깨비방망이로 많은 국민을 희생시켰다.

또한 정권욕에 불타는 이승만대통령은 정략적으로 친일파와 손잡고 12년간 독재한 결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대 언론 등 각분야에 친일파세상이 되다보니 1961년5월16일 친일파 박정희소장 등이 총칼로 정권을 강탈하게 되었으며, 1920년대초 발행한 조선일보(사장; 친일파 방응모)와 동아일보(사장; 친일파 김성수), 1965년 발행한 중앙일보(사장; 친일파 홍진기) 등의 수구신문은 군사독재를 찬양하고 기생하더니, 국민이 세운 김대중과 노무현의 민주평화개혁정권을 흠집내는 역할을 했다.
그런 결과 신문구독율70%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조·중·동 3대수구신문에 국민들은 포로가 되어 민주평화개혁세력이 선거에 참패하고 친일파와 군사독재세력에 뿌리를 둔 정당이 정권을 잡게 된 것을 국민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친일역사청산을 하지않은 결과 역사정의가 세워지지 않아서 역사의식과 사회정의가 시들어버린 증거라고 하겠다.
그래서 늦었지만 친일진상규명 등 잘못된 과거역사청산과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서 역사정의와 사회정의를 세우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친일파를 색출하여 명단을 공개하고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하는 일은 역사정의와 사회정의를 세우는데 크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이런 역사적인 일을 반대하는 사람은 누구나 역사의 반역자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과거역사를 잘 알뿐만 아니라 역사의식이 철저한 지도자를 선택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알 것이다. 역사의식이 없는 지도자는 역사의 방향을 거꾸로 가기 때문이다.

2008년 5월 1일 김 만 식 (사)평화통일시민연대 지도위원
(사)동아시아 시민네트워크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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