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무당이 사람잡고 반풍수가 집안 망친다더니 바로 그 꼴이구나
<부제: 칼든 놈은 칼로 망한다네>
o. 친일파와 군사독재세력의 뿌리가 발광(發狂)한다
6월29일 새벽 시위대와 경찰의 대치로 400여명 (시위대300여명, 경찰112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네
50일 넘게 이어진 촛불시위 가운데 가장 많은 부상자가 발생하여
‘아비규환’ 이었다고 하니
국민을 섬기겠다는 약속은 잊어버리고 미쳐버렸는가
전경10여명이 24세(여)회사원을 둘러싸고 머리를 짓밟고,
33세(남) 의료지원단 의사가 전경을 치료중인데 뒤에서 곤봉으로 마구 때리고
인권침해감시단 37세 여성이 감시단 야광쪼끼를 입었는데도
긴 곤봉으로 마구 때렸으니
이게 미쳐버린 증거가 아니고 무엇인가
곤봉으로 치고, 방패로 찍고, 머리를 짓밟고, 무차별 연행했으니
확실하게 미쳐버렸네
이승만독재와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로 돌아간 이명박정권의
말기증상같이 보이는구나
그래서 옛날부터 전해오는 속담중에 이런 것들이 있다네
칼든 놈은 칼로 망한다
칼든 놈이 먼저 죽는다
죽으려면 마음부터 변한다
죽으려면 사람부터 변한다
민심(民心)이 천심(天心)이라
이렇게 역사속에서 만들어진 속담들은
정의(正義)와 순리(順理)에 거역하면
안된다고 가르쳐 주고 있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우리나라의 현대역사가 증명하고 있는 것을
친일파와 군사독재세력에 뿌리를 두고 있는
한나라당과 이명박정권 조선·중앙·동아 3대신문 등
수구세력에게 알려주네
o. 우리나라 현대역사가 증명한다
이승만대통령은 친일파와 손잡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누리다보니
헌법개정 종족수인 국회의석 3분2에 1명이 부족한데도
수학공식 사사오입을 도입하여
초대 대통령만 중임제한(4년임기 2회가능)을 폐지했다네
경찰 헌병 특무대(훗날 국군보안사) 등 권력기관의 세상이 되어
국민을 탄압하더니
드디어 1960년3월15일 정·부통령선거시
온갖 부정선거로
네 번째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민심이 폭발하여
중·고생 대학생들이 앞장서서
이승만은 물러가라며 민주화시위하면서
이승만독재의 나팔수 서울신문사에 불을 질러 태웠다네
그런 속에서 경찰의 총탄에 184명이 죽고, 6천여명이 부상당하였으며,
이승만독재자는 하와이로 망명가서 돌아가셨네
박정희소장 등은 장면민주정권을 총칼로 강탈하더니
중앙정보부와 국군보안사 경찰 등 권력기관이
살벌한 세상을 만들었으며
검찰은 물론 사법부까지 장악하여
엿장수 마음대로 했다네
전무후무한 유신체제 만들어
영구집권 총통 노름에 살벌한 세상이 되었지만
대학생들과 민주화인사들은
군사독재타도를 위하여
여기 저기서 불끈거리다가
구속되어 고문당하고 죽어갔으니
그 한을 누가 달래주나
그런 속에서도 1979년10월 부산과 마산에서 부마사태라는
반정부시위가 일어났을 때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슬그머니 현지사정을 둘러 본후
차지철경호실장이 동석한 자리에서
박대통령에게 사실대로 민의를 보고하니까
차실장이 “캄보디아는 3백만명을 죽였다고 하는데
일·이백만명 죽인다고 문제가 되겠습니까” 라고 했다 하니
권력만 보이고 국민은 보이지 안했다네
그후 김부장은 12월26일밤 청와대근처인 궁정동 안가에서
평시에 하던대로 박대통령과 차실장이 어느 여인 등과 파티하던 중
권총으로 두 권력자를 사살했으니
두 권력자는 권력을 너무 탐하다가 죽은 꼴이 되었네
또한 박통의 그늘에서 성장한 전두환 국군보안사령관과 노태우사단장 등이
12월12일밤 군대를 동원하여 반란을 일으켜 실권을 잡고
전두환소장은 중앙정보부장도 겸직하더니
1980년5월18일 광주민주화시위대를 폭도로 몰아
수백명을 학살하고 수천명이 부상당하였다네
전두환은 체육관선거로 대통령이 된후 박통이상의 강권통치로
1987년6월10일 드디어 민중항쟁이 일어나
민주화의 숨통이 트이고
그해 12월 대통령선거에서 노태우가 당선되었지만
전두환은 강원도 깊은 산속에 있는 백담사로 귀향갔다네
지은 죄에 비교하면 너무 가벼운 것이었네
o. 이명박정권이 가야할 길
앞에서 본바와 같이
정의와 순리를 거역하면 망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국민을 섬긴다”고 이명박대통령이 여러번 말한대로
국민의 뜻대로 해야 한다
광우병위험 쇠고기 재협상을 하고
경쟁교육, 수도물.전기·가스·건강보험민영화, 그밖에 국공기업 민영화 등도
하지 말아야 한다.
왜 대기업과 부자에 유리하고 중소기업과 서민들에게
불리한 정책을 추진하려는가.
시대와 그나라의 여건과 환경에 맞는 정책을
추진해야 옳은 것이 아닌가
o. 어느 소녀의 마지막 편지
그리고 우리나라 역사의 구비마다 어린소녀들이 앞장서서
싸운 것을 살펴보면
1919년 3·1독립운동때는
유관순열사가 있었고,
1960년4·19혁명때는
한성여중 2학년 진영숙(14) 등 여학생도 있었으며,
2008년5월
한·미광우병위험쇠고기협상타결을 반대하며 재협상하라고
맨먼저 앞장선 것은 촛불소녀들이었으니
어찌 어린 아이라고 또 여린 여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1960년4·19혁명때 당시 한성여중2학년
진영숙이 다음과 같이 부모에게 편지를 써놓고 시위에 참여했다가
목숨을 잃어서 가슴을 더 아프게 한다
<어머니에게>
시간이 없는 관계로 어머니를 뵙지 못하고 떠납니다. ...
어머니, 데모에 나간 저를 책망하지 마시옵소서.
우리들이 아니면 누가 데모를 하겠습니까.
저는 아직 철이 없는 줄 압니다.
그러나 민족과 국가를 위하는 길이 어떻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생명을 바쳐 싸우려고 합니다. 데모하다가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어머니, 저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무척 비통하게 생각하시겠지만
온 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광복을 위하여 기뻐해 구세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의 목숨은 이미 바치려고 결심하였습니다.
어린 소녀의 편지가 큰 화살이 되어 내 가슴속 깊이 박혀서 옮긴 것이다.
2008년7월1일 김 만 식
(사)평화통일시민연대 지도위원
(사)동아시아역사시민네트워크 정책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