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 .c. d 담뱃대(대). (대)대다리 큰놈 중국 놈~~’ 유년시절 필자도 요즘 어린애들의 끝말잇기를 하듯 이런 이상한 놀이(?)를 하면서 대체 '그 친구(?)들의 대가리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라는 의구심을 품어 왔었다. 세계 각국의 손님을 불러 놓고 정해진 룰에 따라 게임을 하는 마당에 야유를 보내고 호루라기를 불어대는 돼먹지 못한 꼬락서니를 지켜보며 ‘대륙인의 기질이 저 정도밖에 안된다는 말인가?’ 그 때의 기억을 더듬으며 괘씸하다는 생각을 해봤다.
올림픽에서의 금메달이라고 하면 그런 것들까지도 감내하고 거머쥔 영광이기에 최고인 그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전이 아닌가 싶다. 금메달을 입에 대고 시상대에 오른 대한의 장한 아들딸들에게 찬사와 박수를 보낸다. 그러면서 ‘최고가 아니면 안 되고 일등이 아니면 안 된다.’ 라는 목표와 생활철학이 그들의 의식을 지배했을 것이고, 그런 속에서 보낸 지난 과정은 과연 어떠했을까?‘ 자랑스럽고 대견스럽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승자가 있으면 패자가 있는 법. 단 1점 차이로 차점자로 밀려야 하고, 아차 하는 순간에 좌절을 맛 봐야 하는 처절하기만 한 세계가 또한 올림픽이기도 하다. 필자는 금메달을 목에 건채 공중파 3사 방송사의 카메라 앞에서 특유의 세리모니를 선보이는 장한 1등 선수보다는 은메달, 동메달 앞에 아쉬운 감정을 감추지 못하는 선수들에게 나아가 대표선수 선발전 탈락으로 국제무대에 서 보지도 못하고 짐을 꾸려 선수촌 건물을 뒤로해야 했던 보이지 않은 이들에게 더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2008년 8월. 4,000만의 시선이 대륙의 땅 베이징을 주시하고 있을 때, 우리 주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조계사 경내 흰 천막에서는 광우병 촛불의 열기를 꺼뜨리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삼복더위를 잊게 했고, 1,080여일이 넘게 원직복직과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외치던 기륭전자 누이들이 식음을 전폐하며 싸우다 병원으로 실려 나갔다.
어디 그뿐인가? 초록은 동색이라고! 친 기업정책을 표방한 2mb 정부는 악덕재벌 총수들의 刑期(형기)가 끝나기도 전에 ‘나라경제’와 ‘경제주체’를 운운하며 건국(?) 60년을 기념한다고 면죄부를 주는 자상함도 잊지 않았다. 또, 때는 이 때다 싶었는지! ‘미국 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적시한 방송에 대해 재갈을 물리고, 방송의 중립성과 객관성을 확보한다는 미명하에 공영방송 장악을 위한 프로젝트는 그들의 의도대로 진행되고 있다.
또, 출범 초부터 공언해 왔던 공기업에 대한 민영화를 ‘공공부분 선진화방안’ 이라는 이름으로 포문도 열었다. 물론 ‘민영화로 공공서비스가 급격히 위축되고 공공요금도 크게 올라갈 것’이라는 시민단체의 반대여론에 밀리긴 했지만, 간과해서는 안 되겠기에 ‘재벌을 위한 민영화 방안’이 아니길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교육의 전당인 대학의 교단에서 교재로 채택 읽혀지는 베스트셀러 까지도 ‘북한 찬양, 반정부·반미, 반자본주의’ 라는 가늠할 수도 없는 구시대적 잣대를 들이대 兵營(병영)내 반입을 막고, 읽지도 보지도 못하게 하는 웃기지도 않는 국방부의 ‘불온도서 선정’은 또 어떤가? 코미디 같은 일이 7-80년대도 아닌 2008년 여름 8월에 일어났다. 덕분에 베스트셀러(?)들은 날개를 단 듯 팔려 나갔고 그러는 과정에서 실컷 웃음도 선사했다. 또, ‘귀족교육’ 운운하며 약육강식의 경쟁에서 남과 싸워 이기는 능력은 초등학교 때부터 기르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라고 강조하는 서울시 교육감의 교육철학은 언제 불어 닥칠지 모르는 교육의 양극화를 점쳐보게 했다.
하지만, 필자에게는 이런 얘기들은 별로 와 닿지가 않는다. 마치 바다건너 이역만리 먼 나라의 얘기처럼 들리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한우 1마리를 키우면 100만원이 손해다.’라는 모 농업전문지 머리기사의 제목을 접하면서 ‘과연 그럴까?’라는 의구심을 품었는데, 그것이 무모하다는 것을 금세 알았다. 품목별 소득분석을 비교해 보니 과연 그러했기 때문이다. 또, 채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소를 키우던 농민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브루셀라 검사신청’ 을 하러 온 것이다. 천정부지로 뛰고 있는 사료 값에 사료가 소를 먹는 웃기지도 않는 현실 앞에 산지 소 값이 더 떨어지기 전에 처분하겠다는 것이다. 이 노릇을 어찌하나! 눈이 번쩍 뜨인다.
머리가 희끗희끗 새기 시작한 그래도 젊은 층에 속한다는 그런 사람이 애꿎은 담배연기만 연거푸 품어대며 ‘일팔일팔’을 되뇌는 모습이란 그냥 보고 있기가 민망할 정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