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강도와 독재자 비교학
<부제: KBS는 왜 이승만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부르는가>
● 살인강도의 사형 판결
부일(附日)세력과 독재세력에 뿌리를 둔 자칭보수(수구세력)와 자칭 뉴 라이트(신 보수 :신 수구세력)는 1. 일본식민지시대(36년)는 일본이 우리나라를 근대화로 발전시켰고, 2. 이승만 독재시대(12년)는 공산주의를 막고 자유민주주의를 지켰으며, 3. 박정희 등의 군사독재시대(32년)는 경제를 발전시켰다고 공적과 과실을 균형 있게 보라고 단답형 궤변으로 국민정신을 마비시키고 있다.
살인강도는 평시에는 보통사람같이 선량한 사람으로 살아가다가 돈이라는 물욕에 눈이 어두워져서 총칼이나 힘으로 짧은 시간에 상대방을 제압하거나 목숨을 해치고 돈을 빼앗아 간다.
그렇다고 살인강도의 사형판결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그러므로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지배와 이승만 독재, 박정희와 전두환 등의 군사독재시대를 살펴보자.
● 일본식민지시대 36년
일본제국주의는 착취하고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해서 한반도에 철도를 건설하고 쌀과 광산물 등을 빼앗아 가고, 심지어 거짓말과 궤변으로 징병과 징용, 군대위안부로 끌어다가 노예같이 부려서 전사하고 탄광에서 죽고 짐승같이 살다가 병들어 죽었는데 어떻게 균형있게 볼 수 있는가. 한반도의 발전이 목적이 아니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착취가 목적이었는데 어떻게 공적과 과실을 함께 말할 수 있는가. 황소가 하도 기가 막혀 하늘을 쳐다보고 웃는다.
● 이승만 독재 12년
특무대(훗날 국군보안사)와 헌병, 경찰이 권력의 앞잡이가 되어 구속과 고문을 밥 먹듯이 하고, 1952년 피난수도인 부산에서 야당의원을 공산당 프락치로 구속하고 헌병과 백골단 딱벌떼 등 유령단체들이 국회를 포위한 속에서 간선제 대통령선거에 자신이 없기 때문에 직선제로 헌법을 개정하여 2대 대통령이 되었으며, 1954년 국회 의결정족수에 1명이 부족한데도 사사오입(四捨五入)이라는 수학공식으로 초대 대통령만 영구 대통령하도록 중임제한헌법규정을 개정했다.
심지어 이승만 대통령은 초대 농림부장관으로 발탁했던 조봉암 진보당 당수를 정적(政敵)이기 때문에 간첩으로 몰아 억울하게 사법살인(司法殺人)했는데, 그 당시 수사관중 마지막 생존자가 기회를 노리다가 김대중 정권 때 조봉암 간첩사건은 조작된 것이라고 폭로해서 신문에 기사화되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그것도 모자라 1960년 3월 15일 정․부통령선거 때 여러 가지 부정선거로 네 번째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민심이 폭발하여 4․19혁명이 발생했는데, 경찰의 총탄에 수백 명이 죽고 수천 명이 부상당하고 불구자가 되어 피의 화요일로 이름이 붙여질 정도가 된 결과 이승만은 하와이로 망명가서 죽어야 했다.
그런데도 요새 KBS방송에서 이승만이 미국에서 독립 운동하던 것을 용비어천가로 미화하는 것을 보면 이명박 정권이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이 건국한 날로 둔갑시키더니,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을 했기 때문에 건국 대통령으로 둔갑시키는 작전으로 보일 뿐이다.
용비어천가는 조선 세종 27년(서기 1445년) 세종대왕의 명을 받아 만든 악장(樂章:나라의 제전이나 연례 때 연주하던 주악(奏樂)의 가사)으로, 조선건국의 위업과 선대(先代), 육조(六祖)의 덕을 칭송한 서사시를 말한다.
그리고 헌법전문에도 대한민국은 1919년 3․1 독립운동으로 그 해 4월 13일 건국했다고 되어있는데, 헌법위반을 해도 되는지 묻는다. 아무리 별짓을 다해도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군사독재 32년
더구나 박정희와 전두환, 노태우 등의 군사 독재자들은 무장 병력과 거짓말과 궤변 등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강탈하고서도, 권력을 오래 지키려고 구속과 고문 사법살인은 물론 민주화시위대를 폭도로 몰아 학살까지 저질러 수백 명이 죽고 수천 명이 부상당하고 불구자가 되었는데, 이런 망나니들을 무엇이라고 표현해야 될까.
경제 발전 시켰다고 망나니라는 죄가 사라지는가.
● 우리의 힘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하지 안했으면 우리 힘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1894년 5월 폭정에 시달리던 백성들은 전봉준 장군이 주동이 되어 전북 정읍 고부에서 동학혁명을 일으켰는데, 그 당시 발표한 폐정개혁 13개요강중에 동학교도와 정부의 협력, 탐관오리 엄징, 횡포한 부호 엄징, 부랑한 유림과 양반은 징습(懲習), 노비문서 불태울 것, 무명잡세는 거두지 말 것, 관리의 채용을 지벌(地閥)을 타파하고 인재등용, 토지는 평균하게 나누어 경작하게 할 것 등은 그대로 실천되었으면 발전의 기반이 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동학혁명군은 타도되었다.
그런 결과 우리나라에서 청․일 전쟁(1894년과 1895년)과 러․일 전쟁(1904년과 1905년)의 결과 일본이 승리한 후 우리나라는 국방의 힘이 없어서 일본의 식민지로 된 것이다.
그러므로 종합적으로 생각하면 일본식민지시대와 독재시대는 아무리 생각을 곱씹어 보아도 살인강도보다 더 악랄하고 오랜 세월 백성들의 피를 빨아 먹은 시대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그런 망나니들이 아니었으면 자유와 인권을 누리며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등 각 분야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었던 증거가 있다.
1961년 5월 16일 새벽 박정희 소장 등이 총칼로 장면민주정권을 강탈할 때 장면정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만들어 놓았으며, 한․일 회담에서 식민지 배상금은 한국이 18억 달러를 주장하고, 일본이 12억 달러를 주장했으므로 중간 타협만 해도 15억 달러를 받아 경제개발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그 당시 국고에 1억 달러도 없었고, 1964년 우리나라의 수출 실적이 1억 달러이었으므로 15억 달러는 큰 자금이었다.
그런데도 쿠데타에 성공한 박정희 세력은 장면정부를 무능하다고 선전하며 한․일 회담에서 경제협력자금으로 겨우 3억 달라 받고, 자기들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웠다고 거짓말까지 했으며, 베트남전쟁에 자청해서 국군전사자 5천명 이상과 부상자 1만 6천명 이상 및 지금도 고엽제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만들면서 월남 전쟁 특수로 10억 달러를 벌어 경제 발전시켜 보릿고개를 넘었다고 선전과 노래를 했다.
2008년 9월 10일 김만식
(사단법인) 평화통일 시민연대 지도위원
(사단법인) 동아시아역사 시민네트워크 정책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