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개론] 여성문제의 본질과 형태 - 급진주의적 여성운동론 “여성의 적(敵)은 남성”

마르크스주의적 여성운동론에 반발 출발한 '급진주의적 여성운동'



[한국인권뉴스 2008. 10.17]

[편집부]

[사회과학개론] "여성문제를 법적ㆍ제도적 권리확보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이 관점은 자본주의체제에서 여성의 권리는 부분적으로밖에 향상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자본주의사회에서의 법과 제도는 자본가계급의 이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므로 여성의 법적인 권리확보도 일부 지배계급 여성의 법률적 권익의 부분적 확보만 보장할 뿐.."


[책소개] 사회과학개론 '여성문제의 본질과 형태' (백산서당 1987)

이승희

[1] 여성문제를 보는 관점의 정립을 위하여

여성문제란 무엇인가? 우리는 보통 여성문제를 가리켜 여자이기 때문에 무시당하고 천대받고 사회적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것, 즉 여성이 받는 차별과 억압을 뜻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무엇이 가장 본질적인 여성문제이고 무엇 때문에 여성이 차별당하고 있는가, 어떠한 방법으로 여성문제가 사라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어떤 사람은 여성차별적 관습이 가장 문제이며 그것은 교육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고, 또 어떤 사람은 그것이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에 기인하는 것이므로 남녀의 생물학적 성차(性差)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여성문제를 여성의 능력이라는 개인적인 차이라든가 남녀라는 자연적인 차이에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라고 파악하여, 사회구조의 변혁에서 그 해결점을 찾기도 한다.

이와 같이 여성문제의 본질이나 여성문제의 발생원인, 그 해결책 등은 여성문제를 어떠한 관점에서 보는가에 따라 많은 편차가 있다.

어떠한 문제라도 문제의 본질에 대한 정확한 인식 없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올바른 전망을 갖기란 어렵다. 그러나 복잡한 현상을 꿰뚫는 본질을 찾아내는 것은 쉬운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일정한 관점을 갖고 문제를 보게 된다. 관점이라는 이론적 도구가 있어야만 문제의 곁가지들을 쳐내고 근원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점은 여성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우리는 여성문제란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가 하는 구체적인 문제에 들어가기 전에, 여성문제를 보는 기존의 관점들을 정리하면서 우리의 관점을 정립해보기로 하자.


1. 여성문제를 보는 기존의 관점들과 그 비판

여성은 유사 이래 지금의 사회에 이르기까지 억압을 받아 왔다. 그러나 지금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여성문제는 자본주의사회의 등장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여성들이 받고 있는 억압을 체계적으로 인식하고 이에 조직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된 것도 역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등장이라는 객관적 환경에 직면하면서부터이다.

따라서 여성운동이 시작된 것은 이 시기라고 할 수 있는데, 그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서구의 여성운동은 크게 네 가지 흐름을 이루며 진행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즉 자유주의적 여성운동, 마르크스주의적 여성운동, 급진주의적 여성운동, 사회주의적 여성운동이 그것이다. 각 관점의 운동을 뒷받침하고 있는 이론을 살펴보면서, 그 문제점을 지적해 보자.



(1) 자유주의적 여성운동론

자유주의적 관점으로 여성문제를 보는 사람들은 여성문제의 근원이 여성에게 불리한 제도적 불평등과 뿌리깊게 박혀 있는 남성지배적 인식에 있다고 본다.

이들은, 인간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다는 프랑스혁명의 이념을 기초로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자유시민으로서 평등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여성이 평등하지 못한 것은 여성이 정치에 참여할 권리가 없고, 법적으로 평등하지 못하며, 남성과 동등한 교육기회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본 이들은 여성의 참정권 획득, 교육기회의 보장, 여성취업을 보장하는 법률의 확보 등의 제도적 개혁을 요구하였다.

자유주의적 여성운동은 서구에서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에 걸쳐 광범위하게 일어났고 그 결과 여성들은 참정권을 획득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여성들이 법적․제도적으로 권리를 획득하였다고 해도, 그것은 형식적인 것에 그친다는 데 있다. 예를 들면 여성에게 참정권은 확보되었으나 그 일부인 투표권만 행사될 뿐, 정치에 남성과 동등하게 참여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문제를 법적ㆍ제도적 권리확보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이 관점은 자본주의체제에서 여성의 권리는 부분적으로밖에 향상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자본주의사회에서의 법과 제도는 자본가계급의 이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므로 여성의 법적인 권리확보도 일부 지배계급 여성의 법률적 권익의 부분적 확보만 보장할 뿐 대다수 여성들의 불평등 상황은 그대로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 운동론이 준 교훈은 자본주의체제에서는 여성의 법적ㆍ제도적 평등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형식적이거나 부분적인 것에 그쳐 여성은 계속 값싼 노동력으로 착취당하고 가정 내에 갇혀 있으며 성적 대상물로 취급된다는 것, 따라서 자본주의체제 내의 제도적 개혁 이상의 그 무엇이 필요하다는 인식이다.


[한국인권뉴스 2008. 10. 20]

[편집부]

[사회과학개론] "급진주의적 여성운동론자들은 사회 내의 어떠한 차별보다도 성차별과 그 억압에 일차적 관심이 있고 이 기준으로 사회를 보기 때문에 이들에게 사회는 성적으로 계급화된 억압구조의 모습으로 비친다. 이 사회는 남성이 하나의 계급으로서 여성이라는 하나의 계급을 지배하고 억압하는 사회라는 것이다. 이들은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 차이, 그중에서도 출산과 육아에 관련된 여성의 생물학적 특성 때문에 남성에 의한 여성억압체제가 유지되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여성의 적(敵)은 남성”이라는 것.."



▲ 미국의 급진주의 여성운동가인 안드레아 드워킨과 글로리아 스테이넘


(2) 마르크스주의적 여성운동론

마르크스주의적 여성운동론은 마르크스주의의 틀 내에서 여성억압의 기원과 본질 모두를 설명할 수 있다고 보는 관점이다. 이들은 여성운동에 새로운 충격을 던져 주었다. 왜냐하면 그 이전까지의 여성해방사상에는 변혁의 이론과 변혁의 주체문제가 빠져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성적 억압의 기원을, 사유재산제를 지탱해 주는 일부일처제적 가족의 발생에서 구한다. 무계급사회인 원시공동체사회에서 계급사회로 넘어가면서 계급의 발생과 동시에 여성억압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는, 여성억압의 폐지는 계급사회가 사라짐과 동시에 사라질 것이며, 자본주의사회에서의 여성억압도 프롤레타리아트를 주체로 한 자본주의체제변혁을 통해서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즉, 프롤레타리아트 속에서 체제변혁의 주체를 발견하고 그로부터 여성해방의 논리와 주체문제를 끌어냈다. 자본주의의 피억압자인 프롤레타리아트의 해방과 여성의 해방을 연결한 것으로 본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적 여성운동론의 그 주장의 기초를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이론에 두고 있다. 엥겔스는 『가족, 사유재산 및 국가의 기원』에서 생산의 발전단계에 따라 가족의 형태가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이론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인류 최초의 사회인 원시공동체사회는 공동으로 생산하고 공동으로 분배하는 모계제사회였다. 혈통이 모계를 따라 계승되었으며 여성은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여성의 ‘생산에서의 지위’ 때문이었다. 원시공동체에서의 성별분업은 지금처럼 여성이 출산과 육아, 가사노동 때문에 생산활동에서 배제된 것과 다른 것이었다. 여자는 식량으로 쓰이는 식물을 경작하고 가사를 돌보는 과정에서 원시농업의 기초를 마련하였고 남성은 수렵을 맡았다. 수렵은, 사냥을 나간다고 항상 동물이 잡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불안정한 식량원이었던 반면 작물경작은 보다 확실하게 생활의 근거를 마련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때 여성은 공동체에서 우월한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성차별이 발생한 것은 그 후 인류가 가축을 사육할 수 있게 되면서 일어난 변화 때문이었다. 가축의 사육, 즉 목축업의 발생은 인류의 생활에 많은 변화를 일으켰는데 그것은 농경과 목축이라는 사회적 분업의 발생과 더불어 새로운 사회관계가 발생하게 되었음을 뜻한다. 가축은 번식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가축군이 빨리 증대하고 그럼으로써 부가 축적되었다. 그러나 새로 발생산 부가 이전과 달리 개별가족의 사적 소유가 되자, 대우혼과 모권 씨족에 기반한 사회에 타격을 주었다.

이 과정은 남성에 의해 주도되었는데, 왜냐하면 남자가 가족 내 성별분업에서 식량획득과 그것에 필요한 노동도구의 획득을 담당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자는 가축의 소유자이자 새로운 노동도구인 노예의 소유주가 되었으나 모계, 모권으로 인하여 자기 자녀에게 재산을 상속할 수 없게 되자, 이에 재산으로 인한 가족 내 지위상승을 이용하여 모권과 모계를 폐지시켜 버렸던 것이다. 이것으로 일부일처제혼이 확립되었고 여성은 가족에서도 지배권을 상실하고 남성의 성적 욕구의 노예 및 자녀출산과 양육의 도구로 전락한 것이다.

정리하면, 성차별이 시작된 것은 목축, 농경, 금속가공의 발당 등으로 생산력이 발전해 부의 축적이 가능해졌고, 따라서 사유재산이 발생하면서부터였다. 이때 생산수단을 장악하고 있던 남성이 지배자로 등장하면서부터 결혼의 형태가 일부일처제로 변화하였는데, 일부일처제는 남자가 자기의 재산을 자기의 자식에게 상속하기 위한 확실한 목적을 갖는 것으로서 이 결혼제도의 확립으로 남성지배와 여성의 종속이 확립되었다.

“역사에 나타난 최초의 계급적 대립은 일부일체제하 남녀간의 적대의 발전과 일치하며 따라서 최초의 계급적 억압은 남성에 의한 여성의 억압이다. 일부일처제는 역사상 일대 진보인 반면 노예제 및 사유재산의 등장에 있어서는 상대적 퇴보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마르크스주의적 여성운동론의 여성억압의 기원이나 해결에 대한 전망을 갖고 여성문제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인 조직을 가진 여성운동으로 뚜렷이 전개되지는 못하였다. 따라서 현재의 운동이 과거의 운동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론적 전수는 원칙론에 그쳐 버린 감이 있다.


(3) 급진주의적 여성운동론

이 관점에서 보는 여성문제는 여성의 생물학적 특수성에서 기인하며, 여성의 억압자는 남성이다. 이들은 자본주의사회의 소멸로 여성문제가 사라질 것이라는 마르크스주의적 여성운동론에 반발하면서 출발하였다.

여성해방을 가족제도로부터 속박 받지 않는 연애와 성을 추구할 자유, 모성적 부담을 경감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온 선진자본주의 각국의 여성들은, 러시아혁명 이후 소련에서 자본주의가 붕괴된 후에도 그러한 여성문제가 계속되고 있다고 보고, 계급의 폐지가 여성해방을 가져올 수 없다고 단정하면서 여성문제와 계급문제를 분리시켜 성의 문제를 보다 근원적인 것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따라서 급진주의적 여성운동론자들은 사회 내의 어떠한 차별보다도 성차별과 그 억압에 일차적 관심이 있고 이 기준으로 사회를 보기 때문에 이들에게 사회는 성적으로 계급화된 억압구조의 모습으로 비친다. 이 사회는 남성이 하나의 계급으로서 여성이라는 하나의 계급을 지배하고 억압하는 사회라는 것이다.

이들은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 차이, 그중에서도 출산과 육아에 관련된 여성의 생물학적 특성 때문에 남성에 의한 여성억압체제가 유지되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여성의 적(敵)은 남성”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여성들은 최초의 피지배계급이었으며 여성억압은 가장 널리 퍼져 있고 실제로 이제까지 알려진 모든 사회에 존재해 왔으며 계급구조가 변화해도 존속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이 여성억압체제를 ‘가부장제(patriarchy)'라고 불렀다. 이들에게 가부장제는 심리적ㆍ문화적 현상으로서 전 역사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것이며, 이 가부장제의 물적 기초는 여성의 성과 출산에 대한 남성의 통제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여성문제의 핵심은 여성이 어머니이기를 강요당하는 것과 남성의 성적 노예라는 것, 그리고 여성의 육체를 남성이 통제한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는 가부장제를 타파하는 것이 여성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며, 따라서 이들의 공격목표는 억압적 성관계와 사회관계를 창출하는 가족이 된다. 이들은 가족의 파괴를 주장하며 여성은 여성을 억압하는 가정에 뛰쳐나와 성관계의 평등을 위해 레즈비언이 된다든가, 출산통제권을 여성이 가진다든가, 나아가 과학의 발전으로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가 없어지는 것이 여성문제 해결의 근본방안이라고 보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인공수정이나 체외수정 등으로 여성의 몸 밖에서 출산이 가능해지면 여성의 해방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여성이 차별당하는 것이 여성의 생물학적 특성 때문이라고 보는 이들의 주장은 그럴 듯하게 들리기도 한다. 피상적으로 볼 때 여성이 출산으로 인해 기동력도 떨어지고 또 육체적 힘도 약하기 때문에 남성에게 예속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여성억압의 근원 자체를 생물학적 차이에 두는 것은 잘못이다.

왜냐하면 생물학적 차이는 단순한 차이일 뿐이지 그 자체로 사회적 차별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인류 최초의 사회인 원시사회에서는 여성이 추산기능 때문에 차별받지 않았고 오히려 여성이 주도하는 모권제사회가 있었다. 이 사회에서 생물학적 차이에 근거한 성적 분업은 단순한 분업이었을 뿐 차별을 발생시킨 것은 아니었다.

이 차이가 차별화한 데에는 사회적 원인이 있다. 급진주의적 여성운동론자들은 이 원인을 찾지 않고 여성문제의 현상만 보았기 때문에 여성억압의 근원을 잘못 파악했고 그들이 제시한 해결방법도 잘못되었다. 가령 가족제도가 여성을 억압하는 것은 사실이나, 남성과 결혼하지 않고 레즈비언이 된다고 해서 그 억압이 해소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몇몇 개인이 현재의 가족제도를 거부한다고 해서 가족 그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의 가족제도를 유지시키는 보다 근본적인 매카니즘이 무엇인지 규명되어야 한다.


(4) 사회주의적 여성운동론

사회주의적 여성운동론은 많은 부분 급진주의적 이론의 줄기를 잇고 있다. 사회주의적 여성운동론자들의 의도는 성차별과 게급차별을 서로 분리시키지 않고 통합하여 양자 모두에 대해서 동시에 투쟁해야할 당위성을 부여하는 새로운 이론을 수립하고자 한 것이었다. 따라서 급진주의적 여성운동론과 마르크스주의적 여성운동론의 장단점을 비판하여 단점을 극복하는 입장에서 사회변혁을 지향하는 새로운 여성운동론을 구축하려 하였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이들의 비판은 마르크스주의가 무엇보다도 성에 무심한 이론이며 성적 편견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인간을 계급에 관련시켜 구분할 뿐 성에 의해 구분하지 않음으로써 여성노동자는 여성이라는 측면이 사장되어 남성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취급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여성이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 범주에 포착되지 않는 특수한 억압을 당하고 있으며, 이 억압은 모든 여성들이 계급에 관계없이 공통적으로 당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들은 여성이 모두 공통적으로 당하고 있는 그와 같은 차별과 억압을 급진주의적 이론에서 사용하였던 ‘가부장제’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설명하려 하였다.

남성지배체제 = 여성억압체제를 의미하는 가부장제는 계급억압체제인 자본주의와 별개로 물적 기반을 갖고 별도로 존재하면서, 상호 일정하게 연관되어 가부장적 자본주의체제를 이루며 여성을 억압한다는 것이다. 다만 이들은 급진주의적 여성운동론이 가부장제를 역사적으로 존재하는 상부구조로만 파악한 점을 비판하면서 가부장제의 물적 기초를 규명하려 함으로써, 가부장제 개념을 세련화하였다.

사회주의적 여성운동론자들은 이와 같이 마르크스주의적 여성운동론과 급진주의적 여성운동론을 상호 결합하려 하였는데, 이들이 가장 강조하는 바는 여성문제가 자본주의체제의 소멸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본주의의 소멸은 여성억압의 자본주의적 형태가 사라지는 것일 뿐이며 그 다음 단계에서도 새로운 형태의 가부장제는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여성억압의 근원을 자본주의에 두면서 동시에 가부장제도 중요한 여성억압의 근원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쥴리엣 미첼에 의해 대표되는 초기 사회주의적 여성운동론은 가부장제를 이념적ㆍ심리적 구조로 파악하고 생산의 사회적 관계에 대해 상대적 자율성을 갖는다고 보았다. 즉, 무의식 속에 있는 가부장제와 가부장제적 관계는 자본주의 사회구성체에 대해 상대적으로 자율적이며, 또한 보편적으로 전 역사를 통해 변호하지 않고 여성억압을 규정한다는 것이다.

후기 사회주의적 여성운동론은 미첼의 가부장제 개념을 비판하고 보완하여 가부장제 개념을 더 발전시켰다. 이들은 가부장제를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물적 토대를 가진 일련의 체계로 본다. 또한 이것은 보편적으로 변화하지 않고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생산양식과 변증법적 관계를 맺으며 변화한다고 본다. 따라서 이들은 무엇보다 가부장제의 물적 토대를 규명해 내려는 시도를 하였는데 이 시도는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가부장제의 물적 기반을 여성노동력에 대한 통제에 있다고 보는 입장이며, 또 하나는 물적 기반을 여성의 재생산능력에 대한 통제에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첫 번째 입장을 대표하는 하트만(Heidi Hartman, 「자본주의, 가부장제, 성별분업」,「제3세계의 여성노동」, 여성평우회 편)은 가부장제를 “여성노동력을 통제할 수 있도록 남성들 간에 위계결속이 나타나는 일련의 사회적 관계”로 본다.

그녀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위계적 성별분업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여성이 가정 내에 고착되는 성별분업과 노동시장에서의 성별 직업분리가 여성문제의 핵심이며, 이것은 자본주의 때문만이 아니라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연합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물질적ㆍ이념적 토대가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부장적 자본주의체제 때문에 가장 이득을 보는 것은 자본가 남성이지만 노동자 남성도 역시 이득을 본다는 것이 하트만의 가부장제 개념의 특징이다. 남성노동자계급과 남성자본가계급은 자본과 노동의 관계에 관한 한 적대적이지만 여성에 대한 자신의 특권적 지위를 유지하는 데 대해서는 우호적이라는 것이다.

가부장제와자본주의가 각각 별개의 물적 기반을 갖고 자율적으로 존재하면서 상호연합하여 가부장적 자본주의체제를 이루며 이 체제는 가정 내 성별분업과 노동시장 내 직업분리를 초래한다. 이것으로 여성은 가정에 무보수로 가사노동을 전담하게 되어 자본가는 이윤을 얻고 남성노동자는 가사노동의 면제와 부인의 정서적, 심리적, 성적 서비스를 받는 이득을 얻는다. 또 노동시장에서의 성별 직업분리라는 면에서도 여성들은 성별로 분업화된 일들을 남성보다 적은 임금으로 수행하게 되기 때문에 남성노동자는 여성노동자와 경쟁하지 않고 여성보다 나은 일자리를 차지하고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이득을 보며, 자본가는 여성에게 저임금을 줄 수 있음으로써 이윤을 얻는다. 따라서 남성자본가와 남성노동자는 연합하여 위계체계를 이루어 여성을 억압한다.

두 번째로, 여성이 전역사적으로 종속되어 온 것을 여성의 출산능력이라고 보는 입장에서는, 가부장제를 여성의 출산이나 정조에 대한 통제라는 개념을 포함하여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로이신 맥도나우, 레이첼 해리슨, 「가부장제와 생산관계」,「여성의 생산양식」, 한겨레 1986).

이들이 급진주의적 여성운동론과 다른 점은 가부장제를 두 개념, 즉 일부일처제 가족 내의 여성의 출산 및 성관계에 대한 통제와 성별분업 및 재산을 통한 여성의 경제적 종속을 합친 것으로 보는 점이다. 이때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가부장제는 계급관계를 통해 작용하면서 한편 생산양식에 대해서는 상대적 자율성을 갖는다.


이상에서 자유주의적, 마르크스주의적, 급진주의적, 사회주의적 여성운동론의 이론구조를 보았다. 우리는 그중에서도 사회주의적 여성운동론을 좀더 세밀히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첫째, 사회주의적 여성운동론은 그 이전까지의 여성운동론의 이론적 성과를 모두 흡수하고 비판하면서 무엇보다도 '여성‘의 관점에서 이론을 구성하려 한 점에서 우리에게 자극을 주었고 둘째, 여성문제를 보는 우리의 시각에 어느 운동론보다도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셋째, 따라서 이론 자체가 갖고 있는 결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사회의 여성문제를 분석하는 데 여러 가지 혼란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어짐)

[한국인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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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별 , 페미니즘 , 여성운동 , 여성주의 , 가부장제 , 일부일처 , 계급차별 , 모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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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허

    이런 쓰레기 같은 것들을 봤나.

    소개된 책 내용은 좋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체제를 어떻게 연관시켜 바라봐야 하나 평소 의문이었는데 (4) 사회주의적 여성운동론의 내용 소개 덕분에 스스로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근데 왜 글 제목은 (3)급진주의적 여성운동론을, 그것도 "여성의 적은 남성"이라는 자극적인 카피로 뽑냐?

    뻔히 들여다보이는 의도가 정말 저열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