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진보신당 서울시당 제2창당 정치노선 토론회가 있었던 것 같다. 이와 관련된 레디앙 보도내용과 발제문을 보면서, 일반 유권자의 입장에서 볼 때, 변화에 대한 생각도 없고, 집권에 대한 의지도 없다는 점 등에서 몇가지 우려가 된다.
특히, 정종권씨와 김현우씨의 주장이 대체로 “서로 환원되지 않는 사회주의(사민주의), 생태주의, 페미니즘을 정신적 사상적 지향으로 함을 명확히”하는 '사회운동적'인 ‘대중정당’을 진보정당의 정체성으로 생각하고 있는 점에서 그렇다.
흔히 대중정당모델의 핵심이 계급정당, 이념정당, 정파정당으로 규정되듯이, 이것은 전형적인 산업화시대의 정당모델이라는 점에서 요즘과 같은 후기산업화, 지구화, 정보화, 탈냉전화와 같은 사회구조변동과 이것에 따른 유권자의 가치정향과 투표행태가 달라진 시대상황에 부합하지 못하는 시대착오적인 모델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이같은 시대상황에 부합하지 못한 채, 산업화시대의 모델을 계속해서 고집할 경우에 일종의 계급적, 이념적, 정파적인 ‘편향성의 동원’(mobilization of bias)이 작동할 것으로 보인다.
‘편향성의 동원’이라는 말은, 진보-보수의 극한 정파적·이념대결로 유권자들과 따로 노는 현상 즉, ‘정치적 양극화’ 등을 설명할 때, 많이 등장하는 말인데, 즉, 정치엘리트와 정치조직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지지자 동원구도 또는 경쟁구도를 만들기 위해, 사회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갈등구조를 억압하여 숨기거나, 또는 유권자들이 실제로 느끼는 갈등의 정도를 ‘실제’보다 과대로 부풀리거나 또는 과소로 축소하여 특정 갈등을 부각하려는 정치적 의도와 조작행위를 ‘편향성의 동원’이라고 말한다.
원래 ‘편향성의 동원’이라는 말은 샤츠슈나이더(Shattschneider, 1975)에 의해 사용되었으나, 이것의 의미를 민주노동당의 경험에 원용해 볼 때, 민주노동당 엘리트 또는 민주노총 지도부들이 노동자가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조합원과 비노동조합원으로 분화되어 그들간의 사회적 이익분화에 따른 갈등구조가 객관적으로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약자층인 비정규직과 비노동조합원들의 이익을 반영하기 위한 실제적인 노력이 부재한 가운데,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강조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강자층인 정규직과 노동조합원 중심에서 이익이 분배되고, 약자인 비정규직과 비노동조합원의 이익이 소외된다는 점에서, ‘편향성의 동원’이 작동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같은 계급적․이념적․정파적인 대중정당모델을 고집할 경우에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은 크게 다음과 같을 것이다.
첫째, ‘특정 이념에 대한 편향성의 동원’에 따른 지지층의 이탈과 지지율 하락일 것이다.
‘특정 이념에 대한 편향성의 동원’은 민주화와 탈냉전 이후 다양하게 드러나고 있는 유권자들의 다양한 가치정향 및 생활세계에 대한 관심과 배치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결국 이같은 ‘편향성 동원’들은 결과적으로 유권자들의 지지이탈과 지지율하락이라는 정치적 압력속에서 정치적 존립위기를 맞이하거나 아니면 이에 대한 강력한 반작용차원에서, 즉, 유권자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정당개혁에 대한 촉구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둘째로 ‘특정 계급에 대한 편향성의 동원’은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분화, 노동조합원과 비노동조합원간의 분화 등 유권자의 이익이 파편화되는 시대적 상황을 드러내지 못함으로써, 민주노총의 기반이 되고 있는 대기업과 정규직 및 조합원 중심의 이익만을 과잉 대표하고 상대적으로 조직적인 힘이 약한 비정규직과 비노조원을 배척하는 일종의 ‘이데올로기’로 작용할 수 있어 비정규직-비노동조합원 유권자로부터 비난받을 가능성이 크다.
셋째, ‘특정 정파에 대한 편향성의 동원’은 같은 정당 소속의 당원이라고 하더라도 이념적․정파적 성향의 차이를 드러내지 못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이념적․정파적 성향이 강한 소수 정파활동가들의 이익만이 과잉 대표됨으로써 비민주적인 운영이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이것은 민주노동당에서 경험했듯이, 이른바, ‘진성당원제’의 폐쇄성이란 문제점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다. ‘진성당원제’는 명분적으로는 ‘당원이 중심이 되는 정당’을 지향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당내 이념적․정파적인 편향성이 강한 소수의 정파활동가들에 의해 당과 당원들이 포획되어 있기 때문에, 정당의 유연성을 떨어뜨리고 유권자들의 평균적인 선호와 요구를 대변할 수 없는 왜곡된 후보선출이나 정책결정을 함으로써 유권자로부터 비난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시대상황에 부합하는 정당모델은 무엇이 될까? 필자는 추상적인 이념과 편향적인 정파가 지배하는 무늬만 대중정당이 아닌 생활속의 진보를 구현하는 원내정당모델이라고 생각한다.
원내정당모델은 1970년대 이후 크로티(W. Crotty) 및 달톤과 와텐버그(Dalton & Wattenberg) 그리고 띠스(Thies, M F)와 알드리치(Aldrich)의 의해 제기된 대중정당모델의 한계에 대한 문제제기와 더불어 그 대안으로 ‘조직으로서의 정당’(parties as organization)은 약화시키는 대신 ‘유권자 마음속의 정당’(party-in-the electorate)이나 ‘정부 내 정당’(party-in-government)의 기능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한국적 상황에 적용시키고자 한 정진민과 임성호 등에 의해서 정식화된 모델이다.
이 원내정당모델의 특징은 원내 의원들이 원외 중앙당의 조직과 이념 및 정파에 구속에서 벗어나 자신의 주 활동무대를 의회로 옮기고, 그곳에서 자신들의 자율적인 판단력 그리고 유권자들의 선호와 요구에 대한 반응성으로 획득된 구체적인 정책 및 소통능력을 기반으로 하여, 당원뿐만 아니라 일반지지자간에 커뮤니케이션과 거버넌스를 추구하는 것을 이상으로 한다.
따라서, 당의 주요 정책결정과정과 후보선출과정을 당원만이 아닌 일반 지지자에 까지 개방하는 것을 목표로 함으로써, 당의 지지기반을 넓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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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당 제2창당 토론 (정치노선) 토론문
김현우
제2창당은 말 그대로 당을 다시 만드는 것이며, 토론을 이를 위한 주요한 사항을 합의하기 위함이다. 물론 여기서 중요한 논점은 대체 왜 만든 당인지, 무엇을 하고자 하는 당인지, 그리고 어떻게 하고자 당인지 하는 것이다. 그게 확인되면 당의 사업 원칙과 조직 체계도 도출되고 또 함께 할 세력도 자연스레 나온다.
제2창당 토론의 공백과 관련하여 <레디앙>에도 기고한 바 있지만, 이 토론문에서는 정치노선에 국한하여 주장하고픈 몇가지 결론들을 다소 용감하게 이야기하고자 한다.
O 가치와 깃발의 문제
'평등 생태 평화 연대'의 가치는 소중하고 제법 적절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진보신당의 정체성과 지향을 설명하는데 충분치 않다. 한 편으로는 더 집약적인 모토가 필요하고(당명과 수식문), 다른 한 편으로는 보다 맥락적인 설명으로 엮어져서(아마도 강령 전문) 진보신당의 존재 이유를 웅변해야 한다. 아래는 참고할만한 수식문들이다.
-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 (민주노동당)
- 평등세상 앞당기는 (전노협)
- 100% 좌파 (프랑스 LCR)
- 민생이 바뀝니다 (총선시기 진보신당)
- 보다 적색으로, 보다 녹색으로 (새로운진보정당운동준비모임)
지금 우리에게라면 “풍부한 진보와 폭넓은 연대를 위한” 또는 “새로운 진보를 위한 성찰과 도전” 정도가 어떨지 싶은데, 너무 구 운동권스럽다면 “세상을 바꾸는 칼라진보”도 가능하겠다. 그런데 제2창당 토론은 수식문 만들기로 그칠 수 없으며, 강령적 시대인식과 주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4대 가치 역시 요동치는 금융 자본주의의 폭력과 위태로운 지구 행성, 다양한 형태로 약자를 강타하는 전쟁, 그리고 인간들 사이의 고리가 파괴된 피폐한 사회라는 치열한 상황 인식 속에 재구성되어야 한다. 이 속에서 진보신당은 이러한 세계를 어떻게 규정하며, 진보신당이 바꿀 세계는 무엇이라는 것, 이를 위해 진보신당의 역할은 무엇이라는 것이 입장과 의지로 밝혀져야 한다. 이는 몇 가지 가치로 분해되지 않는 정치 철학과 노선, 즉 깃발의 문제다.
O 체제지향 : 반자본주의의 입장을 명확히
당의 정체성과 노선을 확립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당연히 이념 논쟁이나 색깔 논쟁까지 해야 한다. 그것은 우선 체제지향이다. 진보신당은 현 사회 체제의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체제가 필요/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예컨대 아래의 선택지가 진보신당이 취할 수 있는 스탠스일 것이다. 특징을 편의적으로 정리한 것이고, 상충 또는 교차되는 측면도 있지만 논의 스펙트럼은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 국가사회주의 : 노동계급 중심 1당 정치, 국유화 및 국가 기구 중심 사회 운용
- 민주적 사회주의 : 다당제 인정하고 대의제 통한 이행 존중하나 국가 제도 변형 강조
- 북유럽형 사민주의 : 노동계급 통제력 통한 사회적 시장경제, 강력하고 큰 복지국가
- 서유럽형 사민주의 : 조직노동에 기반하지만 catch-all party 지향하며 시장에 대한 부분 제어 추구
- 인간적인(?) 시장자본주의 : 시장 경제 원리 하에 사회안전망 강화
- 생태 사회주의 : 국가 못지않게 풀뿌리 수준 지역 경제 및 정치 대안 중시
이 중 하나 아니면 이를 다 인정하는 열린 체제 지향이 입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 되든 냉혹한 현실 인식과 논쟁 속에 나온 결론이어야 한다. 당원여론조사 결과 57%가 사민주의 지향으로 나왔다고 한다. 설문 구성이 적절치 않았다고 보지만 향후 논쟁 속에서 재확인된다면 진보신당은 사민주의 깃발을 내거는 것이 옳으며, 다른 의견을 가진 개인과 그룹은 토론과 선전을 통해 경합할 일이다.
기실 좌파 사민주의, 유로코뮤니즘 좌파, 민주적 사회주의 등은 지금 유의미한 차이를 갖기 어렵다. 다만 확인할 것은 자본주의적 시장에 입장과 의회 바깥의 대중운동에 대한 입장이다. 현재 한국의 자칭 사민주의 그룹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존중과 부르주아 의회 정치 유일론 -- 그리고 대한민국 국가의 정통성 인정 -- 을 주장하고 있는 바, 진보신당이 이에 동의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평등, 생태, 평화, 연대의 가치를 위협하고 불가능하게 만드는 자본주의 동학에 대한 분명한 극복의 의지 천명이 당연하다.
그런데 공허한 깃발 이상의 사회주의 이행 프로그램이 있기나 하는가? 진보적 구조개혁, 사회국가, 기본소득 보장 등 이미 진전된 고민들이 존재하고 여기부터 출발하면 충분하다.
O 주체 구성 : 노동계급의 재형성 추구
당의 성격과 주체 전략의 문제다. 쉽게 말해 당은 계급 전위정당, 대중적 계급정당, 피해대중 연합당, 현대적 국민정당 중 무엇을 택할 것인가. 동시에 주체 전략과 연관하여, 당은 과거와 같은 노동계급 중심성을 인정하는가, 아니면 그 중심성은 재구성되거나 부인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해명되어야 한다. 이 문제는 예컨대 노건추가 결정하도록 맡길 부분이 아니다.
계급 전위정당은 진리를 담지한 소수의 전위를 상정하며 그것이 노동계급의 전위라 주장한다. 이에 비해 대중적 계급정당은 노동계급이 현 체제의 피해자이자 미래 사회의 주역으로서 유의미하다고 간주하지만 그 실현은 대중적이고 계급연합적이어야 한다고 보는 쪽이다. 피해대중 연합당이나 현대적 국민정당은 노동계급에 별다른 유의성을 두지 않으며, 전자가 상대적으로 반자본주의적이라는 차이가 있을 듯싶다.
노동계급의 유의미성은 유지되어야 하는가? 신비화된 노동계급의 당파성이 아닌 한 그래야 한다. 그러나 그 노동계급은 현실의 단초에서 미래의 구체로, 당과 같이 성장해야 한다. 이러한 의미로 진보신당은 지금 당장 노동계급의 당이라기 보다는 ‘노동계급 재형성’을 추구하는 동지이나 조직자가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고 재형성된 노동계급은 보다 보편적 평등 지향적이고 연대적인 (보다 적색인) 노동계급이자, 생태적 지속가능성 고려와 지역 수준의 대안에 함께 하는 (보다 녹색인) 노동계급일 것이다. 이는 현실의 조직노동이 당장 진보신당과 큰 덩어리로 함께 하기 어렵다는 매우 아픈 인정을 수반한다.
그러나 노동계급이 곧 조직화된 노동이 아니며, 노동정치의 주체가 오로지 진보정당만도 아니다 -- 이 주장은 사실 예전부터 사회당, 노동자의 힘 등에서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에 대해 해온 지적이다. 그들의 부족함과 별개로 이 대목에서 진보신당은 인정할 부분이 있다.
문제는 미래다. 한국사회에서 10%에 불과한 조직력이라는 현상 보다, 노동 구성과 성격의 다양화와 복잡화에 주목해야 한다. 현재의 민주노총이 노동계급의 재형성과 정치화에 긍정적 역할을 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있다면 좀더 솔직하고 과감해야 한다. 진보신당이 비정규직을 포함한 모든 불안정 노동집단의 우산을 만들거나 우산의 일부가 될 제안을 던져야 한다. 기존 조직과 크게 충돌하지 않으면서 공공/비정규 부문을 조직한 프랑스의 SUD 노조의 사례를 살펴봄직 하다.
O 운동 전략 : 사회운동적 대중정당
당이 운동을 풀어가는 방식이다. 의회진출 중심인가, 기성제도 활용 중심인가, 사회운동적 정당인가 등등. 이는 당의 성장 전략 및 연대 전략과도 연관되는 것으로, 의회도 중요하지만 사회운동도 존중한다는 식의 절충 이상이어야 한다. 과거 민주노동당 의회전략 실패를 의원과 당 조직의 대응을 가지고 평가하기 이전에, 의회를 통해 무엇을 한다는 전략이 합의된 바 없었음을 지적해둔다.
사회운동적 대중정당이란 의회와 선거를 통한 집권을 고집하지 않는(?) 정당이다. 의회와 선거를 적극 활용하지만, 그것만으로 체제가 바뀌지 않음을 선전하며, 현재와 같은 국가와 의회의 작동방식을 상대화하는 노선이다. 이는 브라질노동자당의 참여예산제 같은 지역 프로그램으로 나올 수도 있고, 가두의 발언과 직접행동을 정치과정의 일부로 인정하는 관행이나 합의로 구현될 수도 있다. 훈련된 기성정치인으로 상징되는 대의자를 고정시키지 않고, 의회를 통한 과정 외의 -- 중앙 국가기구를 변형시키고 상대화하는 -- 정치과정을 활성화하는 노선이다.
이것이 혹 국회 의석이 없다는 진보신당의 처지 때문에 나온 발상은 아닌가? 그러나 서구식 정상적(?) 정당정치를 유일한 모델로 삼을 필요는 전혀 없으며, 이미 세계적 현상이 변하고 있다. 중남미의 사례들은 말할 것도 없고, 특히 유럽 지역에서 기존 사민당, 노동당의 왼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련의 그룹핑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네덜란드 사회당, 독일 좌파당(Die Linke), 프랑스의 LCR, 영국의 Repect, 이탈리아의 재건공산당-무지개연합 등은 선거 상으로도 일부 성과를 내고 있을 뿐 아니라 당의 운동 방식도 과거와 다르다. 이들은 보편적 평등주의 프로그램과 함께 여성주의, 생태주의 지향을 자연스레 담고 있으며, 대중운동에 적극 결합할 뿐 아니라 당 자체가 사회운동적 스타일로 운영된다.
자신의 당이 집권해야만 세상을 제대로 바꿀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오만이고 억측이다. 집권 이전에 사회와 국가를 변화시킬 수 있는 노선, 혼자만의 집권이 아니라 사회운동과 대안 적 정치블럭의 전반적 형성과 변화 속에 자신의 역할을 자리매김하는 노선이 필요하다. 물론 더 춥고 배고플 수 있는 길이겠지만, 이미 21세기의 세계 진보정치 지형은 새롭게 구성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