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은 독재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부제: 민족과 국가보다 자기를 위한 사람>
1908년3월 일본통감부의 외교고문 스티븐스(Durham w. stevens. 1851-1908)는 일본의 한국지배가 정당함을 홍보하고 미국의 반일감정을 무마하라는 지시를 받고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 3월21일 기자회견에서 ①일본이 한국을 보호국으로 삼아 한국에 유익한 바가 많다
②한국민은 일본의 보호정치를 환영한다고 주장했다.
기자회견내용이 미국신문에 보도되어 재미교포 독립운동가들이 격분하고, 스티븐스가 머문 페어몬드호텔로 찾아가 발언내용의 취소를 요구하며 항의하는 지경이 되었다.
그러나 스티븐스는 ①한국에는 이완용같은 충신이 있고 ②이토히로부미와 같은 통감이 있어 한국인들은 행복하다 등의 망언을 늘어놓자 참지못한 교포가 그를 구타하고 의자를 집어 던지는 육탄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3월23일 스티븐스는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역 구내에서 장인환과 전명운 두 애국지사의 총격을 받았는데, 두 사람은 서로 모른채 각각 거사에 나섰다.
먼저 전명운이 권총을 쏘았으나 불발되자, 장인환이 다시 3발을 쏘아 2발은 스티븐스의 가슴과 허리를 관통했고, 나머지 한 발은 전명운의 어깨에 맞았다.
스티븐스는 병원에 옮겨진 후 사망했는데, 저격후 장인환은
①나는 국민의 이름으로 스티븐스를 쏘았다.
②그는 보호조약을 강제로 맺게 함으로써 나의 강토를 빼았고
③나의 종족을 학살했기에 이를 통분히 여겨서 그를 쏜 것이다고 말했다.
그런데 전명운은 3월27일 병상에 누운채로 살인미수혐의로, 장인환은 계획에 의한 일급모살혐의로 각각 샌프란시스코 경찰법원에 기소되어 전명운은 증거부족으로 석방되고, 장인환은 8개월동안 재판끝에 12월23일 ‘애국적인 발광(發狂)환상에 의한 2급살인죄’ 로 판정되어 극형을 면하고 이듬해 1월2일 열린 언도공판에서 금고 25년형을 선고 받았으며 1919년 1월17일 가출옥으로 석방되어 1924년에 자유의 몸이 되었다.
이와같은 두 의사(義士)의 ‘스티븐스 처단’ 은 국내 민족진영에 활기를 불어넣어 수세에 있던 의병투쟁을 공세로 전환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사건당시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던 이승만은 장인환과 전명운 두의사에 대한 미국변호사의 통역을 맡아 달라는 요청을 거절함으로써 교민사회의 비난을 받았는데, ①학생신분이며 ②기독교도로서 ③살인자를 변호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고 하니 무엇이 더 중요하고 더 큰 것인지도 모르는 졸장부였음을 증명하고 있다. (근거: 한국근대사산책5권 24-29쪽 강준만지음)
이런 인물은 민족과 국가보다 자기만 생각하는 극단적으로 이기적인 인간의 전형으로 독재자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니까 온갖 권모술수와 부정선거로 독재하며 네 번째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지만 1960년 피로 물든 4.19혁명이 폭발하여 쫒겨나서 하와이로 망명가서 죽게 된것이다.
그런데도 부일(附日)세력과 이승만독재세력 박정희와 전두환 노태우 군사독재세력에 뿌리를 둔 한나라당과 이명박정권, 조·중·동 3대신문, 뉴라이트(신보수:자칭)등의 수구반동세력이 이승만을 건국대통령으로 모시는 꼴을 보면 ‘그 밥에 그 나물’ 이라는 생각이 든다.
2008년 11월 27일
김 만 식 (사단법인) 평화통일시민연대 지도위원
(사단법인) 동북아시아역사 네트워크 정책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