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권뉴스 2009. 10. 09
한국인권뉴스, 마광수 교수(홈페이지)와 정보공유 '성해방운동' 펼친다
최덕효 (한국인권뉴스 대표)
전근대적인 유교적 성문화 타파, ‘성(性)인권’ 향상에 도움 되길
한국인권뉴스는 '정보공유라이선스 2.0 영리금지'(웹2.0)를 따르는 진보적 인터넷 인권뉴스 매체로 그간 비정규ㆍ비공식노동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습니다. 특히 우리사회의 금기라 할 수 있는 ‘성(性)노동’과 관련하여 인터넷 언론으로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지난 5년간 성매매 특별법 폐지운동을 전개하면서 ‘성노동운동’에 연대하고 있습니다.
한국인권뉴스는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성소수자를 포함하여 모든 성별(性別)간에 발생하는 억압과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성해방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합니다. 따라서 이 분야의 언론운동을 통해 헌법에 명시된 행복추구권의 주요 내용이랄 수 있는 ‘성(性)인권’의 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다양한 진보적 성담론을 활성화하는데 일익을 담당하고자 합니다.
한국인권뉴스는 ‘성해방운동’ 실천의 일환으로, 그동안 선진적인 성담론을 주장하다 보수수구세력은 물론 그를 이해하지 못한 진보진영에게도 외면당한 채 제도 권력으로부터 고초를 겪은 바 있는 마광수 교수(홈페이지)와 '웹2.0' 교류를 통해 그의 철학적 세계관을 시리즈로 소개합니다.
한국인권뉴스는 이러한 시도가 성(性)과 관련하여 인간의 심신을 황폐화시키는 이 사회의 주요모순인 전근대적인 유교적 성(性)문화를 타파하고 변혁시키게끔 공론화 하는 데 도움이 되길 기대합니다. 아울러, 현 시기 세계 사조에 부합하는 진보적 성담론을 논할 수 있는 유기적인 지식인을 지속적으로 발굴하여 소개할 예정이오니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참고자료] 마광수 교수 <즐거운 사라> 필화사건
1991. 9. 10 : 소설<즐거운 사라> 판매금지
1992. 10. 29 : 외설이라는 이유로 검찰에 의해 전격 구속(외설소설 구속은 세계 최초)
1992. 10. 30 : 문화부에 의해 <즐거운 사라>가 판매금지 처분
1992. 12. 28 : 1심 판결,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1993. 2. 28 : 연세대학교에서 직위해제
1994. 5. 1 : <즐거운 사라> 일본어판 번역 출간, 한국소설로는 일본 최초 베스트셀러
1994. 7. 13 : 2심 판결, 항소 기각
1995. 6. 16 : 3심(대법원) 판결, 상고 기각, 유죄 확정
1995. 6. 17 : 연세대학교에서 해직
1998. 3. 13 : 김대중 정부에 의해 사면 복권
1998. 5. 1 : 연세대학교 교수 복직
2007. 4. 10 : 마광수 홈페이지 <즐거운 사라> 게재 건으로 기소, 벌금 2백만원 형 판결
▒ 마광수 교수 홈페이지 http://www.makwangsoo.com/

몇 가지 생각 / 마광수
공자가 말하는 '군자(君子)'는 사대부 등의 귀족계급이요, '소인(小人)'은 일반 평민이나 노예계급이다. 덕(德)이 있는 자가 군자이고, 덕이 없는 자가 소인이라는 해석은 틀린 것이다. 공자는 철저한 계급주의자였다. 그는 노예경제체제하에서 계급차별을 전제로 하는 정치론을 폈다. 공자 당시에 일반 평민들은 모두 글자를 몰랐다. 글자를 아는 것은 통치계급뿐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논어> 첫 장에서 말한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라는 얘기는 한가한 유한계급에나 해당되는 말이었다.
* 톨스토이는 민중을 위해서 일한다고 그렇게 강조했으면서도, 정작 그의 3대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에서 주인공으로 삼고 있는 것은 귀족들이다.
* 정약용은 일반 백성들을 위한다는 뜻으로 <목민심서(牧民心書)>, <흠흠신서(欽欽新書)> 등의 저술을 했다. 그런데 그가 왜 서민들이 읽을 수 있는 한글(언문)로 된 책을 하나도 안 썼는지 그 이유를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의 저술은 모두 양반 지배층만이 읽을 수 있는 어려운 한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 오늘날 기계화로 인해 많은 가사노동이 줄어들었다. 요즘 중산층 가정의 가사노동을 19세기 중엽의 유럽이나 중국에 적용시키면, 적어도 10명 이상의 하인과 하녀가 필요하다. 옛날에 대한 향수에 빠져들지 말라. 예전의 민중들의 생활은 오직 '귀족들을 위한 봉사'가 전부였다. 우리나라의 옛 문화 역시 '양반'들만의 문화였다. 그래서 나는 '문화사(文化史)'란 개념이 싫다. 오직 지배계급만을 위한 문화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이다.
* '창조적 불복종'을 한 사람들의 예(例)…….
1. 히브리 전설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 (에덴 동산을 '탈출'했다).
2.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메테우스 (제우스의 명을 어기고 인간에게 불의 사용법을 가르쳐주었다).
3. 19세기 중엽의 카를 마르크스 (기존의 자본주의 논리를 뒤집어엎었다).
4. 20세기 초반의 지그문트 프로이트 (인간의 성본능을 '수치스런 영역'으로부터 '당연한 생존의지'로 끌어올렸다).
5. 한국의 전태일 (박정희식 개발독재에 의한 노동착취에 죽음으로써 반기를 들었다).
(마광수 저: <마광쉬즘> 중에서) 2008-01-11
[한국인권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