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식민시대 문화통치는 웃으며 뺨치는 정치
<부제: 문화통치는 친일파 생산수단>
일본은 1910년 한·일합방후
무력(武力)을 앞세워 강압적인 무단통치(武斷統治)하다가
1919년 3·1독립만세 운동 이후
제3대 총독 사이토 마코트가 부임해서
문화통치(文化統治)로 전환했지만
‘웃으며 뺨치는 정치’ 를 했으니 모두 살펴보세
사이토총독은 부임하자마자
헌병경찰제 폐지
조선인의 관리임용대우 및 대우개선
언론 출판 집회의 고려
지방자치시행을 위한 조사착수
조선의 문화와 관습존중 등
시정방침을 밝혔다네
☉문화정치는 세뇌정치
그러나 사이토총독은 그후 다음과 같이
문화통치의 본질을 발표했다네
조선의 문화와 관습을 존중하고
문화적제도의 혁신으로써
조선인을 유도하여
행복과 이익증진을 도모할 것이다. .....
총칼로 지배하려는 것은
그 순간 효과밖에 없다
남을 지배하려면
철학과 종교 교육 그리고 문화를 앞장세워
정신을 지배해야 한다. .....
이 땅의 어린이들을
일본인으로 교육하겠다.
황은(皇恩)에 감읍하도록
조선 민중에게 온정(溫情)을 베풀어야 한다
그들을 세뇌시켜야 한다.
이것이 나의 문화정책이다.
그리고 ‘조선민족운동에 대한 대책’ 이라는 비밀문서는
문화통치의 구체적 전략으로
일본에 충성을 다하는 자를 관리(官吏)로 삼고
친일지식인을 장기적안목에서 양성한다.
친일분자를 귀족 양반 부호 실업가 교육가 종교가 등에
침투시켜 각종 단체를 조직케하더니
일제는 실제로 많은 친일단체를 만들어 적극 지원했다네
1920년 일제의 종교적 사회운동은
각 종교단체를 ‘일본인 유력자’ 및 ‘민간인 유력자’로 하여금
조종하여 어용화(御用化:권력에 아첨하고 자주성이 없도록 하는 것)했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화류계는 식민지 노예로 전락
그뿐만 아니라네
일제의 친일파보호 및 육성 공작은
화류계까지 친일파의 공작대상으로 삼았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더구나 그 당시 요정(料亭)은
조선 엘리트들의 주요 사교(社交)와 담론(談論)의 공간이었다네
그런 결과
①경성시내의 기생 전부를 시내 각 경찰서에 불러 엄중 훈계한다.
②윤치호가 회장인 교풍회와 제휴하여
시내 각 권번의 역원과 경찰간부가 모임을 가져
불량한 음모를 방지하도록 협의한다.
③새로히 권번을 허가하여 기생을 친일화시키도록 노력한다.
④내선(內鮮)) 화류계의 융화를 촉진시킨다 등
그렇지만
3·1독립운동으로 크게 고무된 기생들은
대학생이 요정에 오면
지금이 어느때인데
독립운동할 생각은 않고 유흥이냐고 타이르면서
함께 놀기를 거절했으며
가난한 청년학생에게는 장학금까지 제공하면서
독립투사가 되도록 설득하기도 했다네
그러나 기생은 요리집에서 숙박할 수 없도록 되었지만
일제의 공작후 요리집에 상시 고용되어
성을 팔기도 해서
“과거에는 비록 천한 직업이었지만
염치와 예의를 지켰는데,
이제는 금전만 숭배한다.” 고 한탄했다네
일제는 그런 공작차원에서 성매매사업을 육성해서
더러운 세상을 만들었으니
얼마나 짐승같이 더러운 짓을 했는가
☉일제의 친일화 공작대상과 착취 탄압
일제의 친일화공작은
여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만 대상으로 삼고
농민은 계속 가혹한 착취를 당했으니
얼마나 더러운 흡혈귀같은 행동이었는가
그뿐만 아니라네
일제는 유사시 탄압역량의 강화를 공격적으로 추진하여
1920년과 1921년 각각 2.500명씩 5.000명 늘려서
일본군을 대폭 증강시켰으며
경찰도 종래의 6.000명에서 2만명으로
경찰관주재소는 종래의 730개소에서 2.700개로 늘리고
경찰관서에는 특별고등부라는 비밀경찰부를 설치하고
경찰무장을 강화해서
한·일합방정신에 위반시
무자비하게 탄압했으니
겉으로는 문화통치
속으로는 무력통치로
우리 민족을 짓밟았으니
얼마나 잔인하고 비열한가
그러므로 일본식민지 문화통치는
‘웃으며 뺨치는 정치’ 였다네
2009년 12월 10일 김 만 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