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性인권] 여성·성소수자 차별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
[한국인권뉴스 2009. 12. 26]
“차별 없는 사회를 위하여 (1)
- 여성, 장애인, 이주노동자, 성적소수자 차별 철폐를 중심으로”
[책]'일하며 배우는 노동자 교양도서' 중에서. 사노련刊
□ 여 성
초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자는 가정, 남자는 일터’라는 새로운 성별분업이 기본적인 사회적 분업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사랑받는 아내, 성공하는 남편'이라는 대표적 슬로건에 압축되어 있듯이, 여성에게 추구해야 할 제일의 가치는 남성의 사랑을 받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성별분업은 노동시장에서의 성차별적인 성별분업으로 연결된다. 즉 남성은 기술직·관리직 등 상대적인 고임금 분야로 나아가는 데 반해, 여성은 경력과 승진이 인정되지 않거나 일정 한도까지만 허용되는 단순 생산·사무직 등 임금이 낮은 분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가부장적 자본주의 구조 하에서 여성은 가사노동, 노동시장에서의 성차별, 성폭력, 이중적인 성문화로 인한 피해 등과 같은 문제들을 안고 살 수밖에 없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과정에서 기존의 남성·정규직 노동력이 해체되고 여성 노동에 대한 수요가 상대적으로 증가하면서, 여성의 저임금 불안정 노동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가장인 남성노동자의 임금으로 유지되던 기존의 가계경제가 파탄나면서 더 많은 여성이 노동력을 싸게 판매하면서 노동시장으로 진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사회에서 전체 비정규직 가운데 여성이 70%를 차지한다. 같은 비정규직이라도 남성 정규직 임금을 ‘100’이라 했을 때, 남성 비정규직 임금은 ‘56.3’이고 여성 비정규직 임금은 고작 ‘36.9’이다. 그리고 맞벌이 부부 중 여성이 가정관리에 쏟는 시간은 하루 평균 2시간 47분인 반면, 남성은 20분에 불과했다.
최근 주 5일 근무제 도입으로 남녀모두 노동시간이 줄고 여가시간이 늘어나는 듯하지만, 성별로는 여성이 가사노동을 포함해 남성보다 하루 2시간 더 일하고 있다. 결국 한국사회의 취업여성은 남성보다 1년이면 한 달 이상, 12년이면 1년 이상 더 일하고 있다. 그리고 2004년 여성부가 실시한 가정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간 배우자 폭력 경험률은 신체적 폭력(강한 폭력+심한 폭력)을 기준으로 전체 가구의 15.7%, 즉 6가구 가운데 1가구에 이르고 있다. 남성과 동일한 가치의 노동을 하면서도 남성 임금의 50% 안팎 임금을 받는 여성들, 1년이면 남성들보다 가외노동을 1달을 더 일하는 여성들이다. 이러한 여성차별은 한국사회에서 다양한 분야의 여성운동이 등장하는 배경이 되었다.
그러면 여성노동자는 수동적으로 침묵하는 존재일까? 우리는 역사적으로 주요한 계급투쟁의 시기에, 자본과 권력에 대항한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떠올릴 수 있다. ‘근면과 성실’을 좌우명으로 한 박정희 정권의 민족주의 담론과 경제개발에 맞서 1970년대 여성 노동자들이 펼친 ‘민주노조’ 운동은 권력과 자본에게 상당한 타격을 준 바 있다.
1979년 YH 여성노동자들은 187명 집단해고에 대항해 신민당사 점거농성 투쟁을 벌여, 유신정권 몰락의 단초를 마련했다. 제도화된 어용노조와 별개로 여성노동자들은 비공인 파업(wildcat strike) 투쟁을 전개했다. IMF 경제위기 이후 벌어진 자본의 일방적 정리해고 시절에, 우리는 1998년 울산 현대자동차 구내식당 여성 노동자들이 벌인 ‘밥·꽃·양’ 투쟁을 떠올릴 수 있다. 그리고 노무현 정권 시절에 이어, 이명박 정권 등장 이후까지 투쟁을 전개한 KTX 여승무원, 기륭전자 투쟁 등을 들 수 있다.
이렇듯 여성노동자들은 투쟁을 통해 자본주의의 구조적 차별에 대항하면서, 계급운동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 성적 소수자
한국에서 성소수자들은 직장에서 자신의 정체성이 알려질 경우 변태로 낙인찍혀 암묵적이고 노골적인 분위기로 더 이상 회사를 다닐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청소년들은 자신의 동성애 정체성을 알기 시작하면서, 사회적 편견에 의해 자살을 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으로 성적 소수자는 노동권, 언론, 교과서에 의한 왜곡, 재산권 행사, 사회보장 등에서 전방위적 차별과 배제를 받고 있다. 성소수자는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모는 사회에서 차별받지 않고 “성소수자로서 살아갈 권리”, 즉 생존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한 바 있다.
날치기 노동악법에 맞서 민주노총이 96~97년 총파업 투쟁을 벌일 당시, 명동성당 집회에서 우리는 동성애자의 ‘무지개 색깔’ 깃발을 볼 수 있었다. 그동안 숨죽여 살아왔던 성적 소수자들이 한 목소리로 노동자투쟁 대열에서 ‘커밍아웃’을 시작한 것이다. 그간 성적 소수자들은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당신 호모 아니야”라는 동성애에 대한 경멸과 차별을 당하면서 살아왔는데, 국가의 억압과 차별, 사회적 멸시에 맞서 자신을 드러내고 싸움을 전개한 것이다.
그러면 성적 소수자는 왜 억압과 차별을 받아왔을까? 섹스(sex)는 생물학적인 성(性)이며 태어날 때 부여받는 천부적인 성이다. 주로 성 염색체에 의해 구분되는데, 남성과 여성이 대부분이다. 이제까지 성 정체성 구분은 주로 이 생물학적 성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 즉 세상의 인간은 남자와 여자 둘로 구분되고, 이 남성과 여성의 결합만을 정상이라 여긴 것이다. 이것을 ‘이성애주의’라 한다.
이러한 이성애주의 밑바탕에는, 자본주의 사회가 필요로 하는 안정적인 노동력 재생산과 핵가족 유지의 논리가 자리 잡고 있다. 종교적 도덕적 성생활의 강조를 통해 ‘가족’의 안정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구성된 가족에 노동력 창출과 재생산을 전적으로 의지해 온 자본주의 사회는 이 가족의 틀에 맞지 않는 미혼모, 독신, 동성애자 등 사회적 소수자들을 끊임없이 비난하고 배제해 왔다.
인간사회에 ‘계급이 출현’하면서 재산권이 등장하자, 사유재산을 소유한 남성들은 그것을 자기 아들에게 물려주려 했다. 누가 자기 자식인지 아는데 필요한 조치가 일부일처제 가족이다. 동성애는 일부일처제 가족이 유일한 생활 방식이라는 생각에 도전한다. 또한 성관계가 오로지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에도 도전한다. 그래서 성적 소수자 운동가들은 근대사회의 가족관을 깨고, ‘다양한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가족을 이루지 않고 살 권리와 동성 간 결혼이나 ‘동반자 관계’를 인정하는 등 동성애자의 법적 권리를 포괄하고 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은 동성애를 금지하는 모든 법안을 폐지했다. 낙태와 이혼이 허용되었고, 혼인연령 규정이 폐지되었다. 러시아 혁명은 사회를 변화시켜 동성애를 수용하고 결국은 동성애라는 말이 없어지게 하였다.
글: 남궁 원
▒ 본문은 사노련에서 발행한 <일하며 배우는 노동자 교양도서> 3권 '노동자, 세상을 움켜쥐어라'에서 “차별 없는 사회를 위하여 - 여성, 장애인, 이주노동자, 성적소수자 차별 철폐를 중심으로”란 제목으로 실린 글 중 여성과 성적소수자 부분을 발췌한 것입니다. 장애인과 이주노동자 부분 등은 2편에 전문 게재됩니다.[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