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똥 저 똥 모두 치우자
<부제: 역사의 수구반동(守舊反動)세력이 평화와 정의를 파괴한다>
일본은 1910년8월29일 무력을 동원하여 강제로 한·일 합방을 하더니 1939년10월 전쟁에 투입하려고 ‘징용령’을 내렸다.
그뿐만 아니라 1939년11월10일 창씨개명(創氏改名)을 법령화하고 12월에는 창씨개명령(令)을 공포해서 조선의 이름을 버리고 새로 일본식 이름을 가지도록 강제조치를 하였다.
그런 결과 1940년2월11일부터 창씨개명접수를 받기 시작했으며 8월11일까지 6개월동안 완료하도록 했다.
접수 이틀만에 87건이 접수되었는데, 그 속에는 이광수(소설가)가 포함되어 비난이 심했다고 한다.
그런결과 창씨개명한 후 1,000통 이상의 편지를 받았는데 욕설을 퍼붓거나 가만 놔두지 않겠다고 협박하는 내용이었다
심지어 이광수의 창씨개명을 비난한 ‘문인투서사건’ 도 일어나 정지용 최영수 계용묵 정비석 4명이 혐의를 받아 각각 1주일에서 1개월에 이르기까지 구류되어 문초를 받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개성 송도중학교 교사 이영철은 훈민정음의 ‘가나다(加那多)’로 창씨를 해서 저항을 시도한 결과 교도소 신세까지 치렀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태분창위(太糞倉衛:이노쿠소구라에)로 이름을 지었다가 일본경찰에게 곤욕을 치른 사람도 있었다.
그뜻은 “개 같은 놈 똥이나 먹어라” 였기 때문이라네
연희전문과 이화여전의 학생들이 연희전문교장 윤치호(尹致昊)가 ‘이동치호(伊東致昊:이토치키우)’로 창씨개명한 걸 가리켜서 “이 똥 치워라” 라는 발음으로 조롱했다네
윤치호는 1940년5월1일자 일기에서 오전11시 미나미총독을 면담해 “전 내선일체(內鮮一體)를 완성하는 수단으로 조선인들의 창씨개명을 찬성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정책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개진하는 세가지 이유를 총독각하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라고 했을 정도이니 전문학교 학생들이 오죽하면 “이 똥 치워라” 고 조롱했을까 짐작이 간다.(한국근대사산책 10권11~15쪽 강준만지음)
그러고 보니 나의 어린시절 본명은 돌림 자(字)가 터 기(基)라서 金萬基인데, 1944년 국민학교 입학때부터 ‘가내바이야시 만샤꾸(金萬植)’으로 호명되었으니 누가 이런 못된 짓을 저질렀을까를 이제 겨우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결과 1945년 8·15해방후에도 계속 김만식으로 살아가게 되어 이름이 두개나 되었다.
그리고 일본식민지시대 전문학교 학생들이 부일(附日)세력을 “이 똥 치워라”고 했으므로 이승만독재시대와 군사독재시대 독재를 찬양하며 기생한 수구반동세력(守舊反動勢力:자칭보수)을 “저 똥 치워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그렇다
평화와 정의가 가득하게 역사가 발전하는 세상을 혼탁하게 하는 수구반동 세력을 대상으로 우리 모두 “ 이 똥 저 똥 모두 치워라”고 큰 소리치며 앞장서자.
2010년1월27일 김 만 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