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性인권] 대졸여성보다 고졸여성들이 사랑에 순수 - 마광수

대졸여성, 특히 대학원 이상의 학력을 가지 여성들일수록 눈만 높아지고 여류명사가 되고자 하는 허욕만 강해져, 남편감을 오직 자신의 출세 수단이나 상류 계급 신분유지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그들은 여성의 내조를 남녀평등시대인 요즘에는 가당치도 않은 말이라고 믿으며, 도리어 남편의 외조를 핏대를 올려가며 강조한다..




[마광쉬즘] 한국 여성들의 양다리 걸치기

마광수 (연세대 교수, 국문학)


내가 우리나라 20대 여성들에게 갖고 있는 가장 큰 불만은, 확고한 자기 주장도 없이 어정쩡한 상태에서 ‘양다리 걸치기’식의 가치관을 갖고 산다는 것이다. 아름답게 치장하는 면에서는 그렇고, 결혼관도 , 애정이나 성관에 있어서도 그렇다.

‘미적 치장’에 초점을 맞춰 보면 한국 여성들은 모두 ‘고급’ 병과 ‘유행’병에 걸려 있는 것 같다. 개성적인 옷차림 옷차림이나 관능적인 옷차림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여성들이 무지하다. ‘세련된 옷차림’을 오로지 유행하는 스타일과 일류 메이커의 비싼옷으로만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즐겨 쓰는 ‘야하다’ 의 의미를 그네들은 ‘싸구려 옷에 싸구려 장신구를 주렁주렁 휘감고 다니는 여자의 천박한 아름다움’과 견주어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야하다’는 말은 동물로서의 인간이 갖는 원시적 본능에 솔직한것 이며, 따라서 관능적 상상력에 의한 개성적 매력의 창출로 이어지는 것이다. 여성이건 남성이건 우리는 자기 몸을 아름답게 치장하고자 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이 본능은 곧바로 성욕과 결부되는데, 자기에게 쾌감을 줄 수 있는 우량한 ‘성적 교합’ 대상으로서의 이성을 유혹하고 자 하는 심리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여성들은 ‘고상한 아름다움’과 ‘관능적 아름다움’의 이분법적 흑백 논리의 노예가 되어 있다. 이성에게 예쁘게 보이긴 보이되 ‘성적 교합의 대상’으로서 보여지는 게 아니라 단지 ‘세련되고 고상한 신분’으로만 보여지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 ‘비싼 것’에만 관심을 집중하게 되고 최신 유행의 모드에만 눈독 들이게 된다.

이러한 생각은 곧바로 황금만능의 사고방식으로 이어져 ‘멋있는 여자가 되려면 돈이 많고 봐야한다’는 속물근성을 품게 한다. 성형수술에의 집착도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내가 돈이 한 1억만 있다면 여기저기 마음껏 성형수술해서 미인이 될 수 있을 텐데....’ 하는 여성들이 많다.

돈이 별로 안 드는 야한 화장만으로도 얼마든지 매력 있는 여성이 될 수 있는데도 그들은 화장술을 익힐 생각은 하지 않고 다만 자신의 가난을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아름다움과 돈을 결부시켜 생각하는 버릇은 곧바로 양다리 걸치기식의 결혼관으로 연결된다. ‘사랑’과 ‘조건’ 사이에 어정쩡하게 양다리를 걸치는 것이다. 연애 상대와 결혼 상대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이기주의적 사고방식은 고학력 여성일수록 심하다. 우리의 경우 여자가 대학 다니면서 듣고 배우는 것은 오직 ‘위를 보고 걷자’는 식의 무분별한 신분상승 욕구, 이른바 ‘신데렐라 콤플렉스’가 많다.


△ 마광수 작 '애수의 소야곡'


대졸여성보다 고졸여성들이 오히려 사랑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사랑하는 남자를 위한 모성애적 내조와 관능적 치장에 인색하지 않다. 그러나 대졸여성, 특히 대학원 이상의 학력을 가지 여성들일수록 눈만 높아지고 여류명사가 되고자 하는 허욕만 강해져, 남편감을 오직 자신의 출세 수단이나 상류 계급 신분유지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그들은 여성의 내조를 남녀평등시대인 요즘에는 가당치도 않은 말이라고 믿으며, 도리어 남편의 외조를 핏대를 올려가며 강조한다.

문제는 그렇게 양다리 걸치기식의 정략결혼이 이루어진 다음이다. 처음 의도대로 남편과 일종의 동업자로만 살아가면 별탈이 없을텐데, 여자의 성욕이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하는 40세 전후의 나이가 되면 그들은 갑자기 사랑 타령을 늘어놓으며 이미 관능적 열정이 식은 남편을 원망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자기자신이 이미 남자의 관능적 열정을 전혀 유발시키지 못하는 ‘기가 센’ 여자가 되어버린 것을 모르고서 말이다.

남편이 자기와의 성생활에 불성실하다고 야단치면서 동시에 그들은 ‘야한’ 여자가 되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는다. 다만 뻔뻔스럽게 남자가 변강쇠 같은 정력을 발휘하는 ‘성교용 로봇 역할’을 해주기만 바란다고나 할까.

성과 사랑, 그리고 아름다움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교양미니 세련미니 하는 것도 사실 ‘관능미’를 전제로 할 때 가능해지는 것이다.

또한 사회적 출세나 성공도 성과 무관하지 않다. 나는 ‘마음의 힘’ 또는 ‘정신력’이 우리의 운명을 이끌어나간다고 믿는다. 마음의 힘이란 결국 ‘기분’이나 ‘컨디션’을 가리키는 것인데, 좋은 컨디션은 ‘성적 만족감’이나 ‘관능적 상상력의 활용’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성욕에 솔직하면 아름답고 진지한 사랑을 하게 되고, 사랑이 이루어지면 원기백백하게 되어 성공적인 가정생활이나 사회활동도 가능해진다. 성적 기아에 시달리면서도 그것을 ‘솔직한 탐식’, 즉 야하다고 관능적인 치장이나 자유로운 관능적 상상력으로 연결시키지 못한채, 보수적 도덕주의와 진보적 쾌락주의사이에 어정쩡하게 양다리를 걸치다가 결국 스스로의 불행을 자초하고 마는 것, 이것이 요즘 대부분의 고학력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밟아나가는 인생항로인 것 같다.

나는 인간의 운명은 오직 스스로의 마음에 따라 결정된다고 본다.

마음이 분열되어 있을 때, 즉 겉마음과 속마음(또는 표면의식과 잠재의식)이 서로 다른 가치관과 양다리를 걸치고 있을 때 그 사람의 인생은 행복해지기 어렵다. 전공이나 직업을 이리저리 바꿔가며 방황을 거듭하는 사람이 성공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자연의 본성인 식욕과 성욕, 그리고 성욕에 부수되는 미에의 욕구에 솔직해질 때, 거기에 인위적인 윤리나 지적 허영심에 의한 계산이 개입하지 않을 때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다. 게다가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욕구를 마음껏 충족시킬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고 있지 않는가.

(에세이집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 중에서)


▒ 한국인권뉴스는 ‘성해방운동’ 실천의 일환으로, 그동안 선진적인 성담론을 주장하다 보수수구세력은 물론 그를 이해하지 못한 진보진영에게도 외면당한 채 제도 권력으로부터 고초를 겪은 바 있는 마광수 교수(홈페이지)와 '웹2.0' 교류를 진행중입니다. 그의 철학적 세계관이 유교적 성문화에 침윤된 한국사회에 있어 표현의 자유와 진보적 성담론의 공론화로 변혁의 한 축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기사에 대한 반론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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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리있는 주장이기는 하나, 여성의 존재를 '아름다움'에 국한시킨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