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쌍용자동차에서 희망퇴직했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4일 숨진 황모(38세)는 쌍용차에 특채되었던 중증장애인으로 작년 구조조정에서 희망퇴직했지만 취업이 안 돼 크게 비관한 상태였다고 한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에 의하면, 쌍용차 사태와 관련하여 숨진 사람은 지금까지 노동자만 5명이고 가족을 포함할 경우 11명에 달한다.
우리는 황 씨의 죽음에 대한 단서 중, 고인이 한 달 전 법원으로부터 벌금고지서를 통보받았다는 사실과 이 벌금의 근거가 작년 쌍용차 정리해고 반대투쟁과 관련한 쌍용차 사측의 ‘퇴거 불응’ 고소 건이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늘 그랬듯이, 노동자들의 투쟁이 막을 내릴 때 사측은 마치 화합하는 듯한 제스츄어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고소’로 화답했고, 법원은 노동자들의 생존권은 아랑곳 않은 채 사측의 손을 들어주며 노동자들에 대한 엄청난 민형사 처벌로 일관했다. ‘희망’이 없는 희망퇴직자들을 비롯해 타의로 회사를 나온 노동자들은 가족과 함께 그렇게 벼랑에 서게 된다. 더욱이 중증장애인인 황 씨야 말할 나위가 없다.
대중언론에서는 국민소득이 올해 2만불에 복귀했다고 떠들썩하게 소식을 전하지만, OECD 회원국 중 최고수준의 노동시간과 자살률을 자랑(?)하는 이 땅의 고단한 노동자민중들의 삶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황 씨와 같은 자살이 줄을 잇는 것은 그들에게 일할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 사회는 노동의 기회를 잃은 서민에게 생존권을 배려하는 제도도 전무할 실정이다. 황 씨의 죽음은 바로 고용 없는 성장을 자화자찬하는 그들만의 리그가 얼마나 헛된 것인지 적나라하게 반증한다.
이윤추구에 혈안이 된 기업들이 노동자들을 쓰고 버리는 폐품처럼 함부로 대할 때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할까. 사익을 만능으로 여기는 자본의 전횡을 공익의 이름으로 강력하게 제재해 그 사회의 구성원들을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이지만 현실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오히려 국가를 운영하는 정부와 공평해야 할 사법부는 자본의 편이 되어 노동자들을 압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경우가 다반사니 기가 막힐 일이다.
우리는 황 씨의 죽음에서 오늘 이 사회 곳곳에서 스러져가는 노동자민중들의 현 주소를 읽는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자본과 권력이 굳게 한 몸이 돼 노동자들과 맞서는 불온한 동맹체를 목도한다. 이제 황 씨와 같은 이들의 죽음이 바로 자본과 권력에 의한 타살임을 주지한다면 이 땅의 노동자민중들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변치 않는 굳건한 연대로 하나가 되어 저들의 행진을 저지할 때만이 희망은 살아난다. 새로운기독교운동연대(준)는 노동자민중들이 가는 그 길에 기꺼이 함께 할 것이다.
2010. 12. 15
새로운기독교운동연대(준) / 새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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