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이데올로기로부터의 해방은 '혁명적 과업'
- 노동해방 이념은, 자본으로부터의 해방과 노동시간의 단축
대량정리해고, 비정규직 문제, 청년실업문제 등 산적한 국내 노동운동의 위기 징후가 80년대 한국에 뿌리내린 전통적 노동해방이념에만 의존한 결과와 유관하다는 담론이 제기됐다.
진보평론(46호)에서 이성백 편집위원은,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려면 “(노동운동이) 노동변화에 대한 여러 입론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노동해방론을 재구성하고, 이에 근거하여 노동해방의 실천을 선도적이고 공세적으로 전환해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 기존의 노동운동이 “맑스의 노동해방의 이념의 의거하여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이를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성백은 맑스의 노동해방이념의 재해석을 위해, 먼저 ‘노동은 신성한가?’라는 물음에서, 맑스와 맑스주의자들은 “노동이 근본적으로 신성하다는 견해에 서있다고 믿어왔”지만,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이 착취와 소외의 상태에 처해있기 때문에 이 왜곡된 상태만 지양되면 노동의 신성함이 실현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온 것으로 “정말 맑스도 노동을 근본적으로 신성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인가”에 대해서는 재해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노동의 신성성에 대하여 “재화생산의 증대를 위해 노동을 신성한 것으로 미화하는 이데올로기”며 “노동자에게 노동을 강제하기 위해 생산한 노동동원의 이데올로기”라고 비판하고, 이는 “서구 자본주의 사회 뿐만 아니라, 소련을 위시한 현존사회주의 사회에서도 동일한 노동의 신성성이 고취되었다.”고 지적했다.
맑스의 노동개념과 관련하여서는 “청년 맑스의 시기에서부터 「자본」의 맑스시기에 이르기까지 맑스의 노동 개념은 하나의 의미로 통일성을 갖고 있지 않으며 상충되게 보일 정도로까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면서 그러나 “그런 맑스의 노동 개념이 이후 대체적으로 20세기 전반기까지 혁명적 노동해방 전략의 관점에서만 수용되어왔”을 뿐 “맑스가 그의 저작 여기저기에서 언급하고 있는 다른 노동해방의 개념들은 관심으로부터 벗어나 있었다.”고 말했다.
예컨대, 맑스가 청년기에 쓴 「경제학-철학 초고」에 의하면, 두 가지 측면 즉 “현실론적 측면에서는 노동을 생존유지를 위한 물질적 재화의 생산활동으로, 이상론적 수준에서는 인간의 전인적인 자기실현을 위한 활동의 규정”되고 있다며, 오늘날 노동해방의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이 둘을 “노동과 생활향유활동으로 분명하게 분절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다음, 전자만 노동으로 규정하고 후자(자기실현)는 “노동 개념으로부터 제외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성백은, 맑스의 「경제학-철학 초고」에는 “노동은 인간의 전인적인 자기실현 활동으로서 본래 신성한 것이고 즐겁고 보람 있는 것인데, 자본주의에서 그 본래적 상태로부터 소외됨으로써 하기 싫지만 해야만 하는 생존유지의 활동으로 전락되었다.”고 노동의 신성성을 대전제로 하고 있긴 하지만, 다른 한편, 「자본론」 3권에는 노동을 부정적인 것으로 보는 구절이 있다고 지적했다.
즉, 「자본론」 3권(828)에는 “자유의 왕국은 실제로는 필요와 외적 합목적성에 의해 결정되는 노동이 끝나는 곳에서 비로소 시작한다. 그것은 사물의 본성상 본래적인 물질적 생산의 영역 너머에 존재한다.. 이것은 여전히 필연성의 왕국일 뿐이다. 이 필연성의 왕국 너머에서 자기 목적으로 간주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계발, 즉 참된 자유의 왕국이 시작된다. 그러나 자유의 왕국은 필연성의 왕국 위에서 이것을 기초로 하여서만 번성할 수 있다. 노동시간의 단축이 기본조건이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이성백은 이 구절이 “노동 개념을 혁신적으로 재규정하는 데에 있어서 그 실마리가 된다고 할 수 있다.”면서 맑스의 노동 개념에 대한 재구성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1. (자본주의를 넘어서) 자본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자유로운 활동이 되었더라도, 이 노동이 긍정적인 자기실현활동과 동일한 것이 될 수 있을까? 여전히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2. (따라서) 무엇보다도 노동사회와 경제사회로부터 현대 사회의 노동동원 이데올로기인 ‘노동의 신성성’의 관념으로부터의 해방(노동해방의 한 측면으로서의 노동관념의 해방)될 필요가 있다.
3. 노동의 신성성의 관념에서 출발했던 노동해방의 프로그램은 노동에 대한 <현실적인 이해>에서 다시 출발하여 현실론적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소외 상태를 지양하더라도 물질적 재화를 생산하는 활동으로서의 노동은 불가피, ‘생존을 위한 전제조건’에 불과)
4. 생존을 위한 노동만이 노동 개념의 엄밀한 규정으로 제한되어야 하고, 신성한 것으로 제시된 생활영위활동으로서의 노동은 ‘노동이 아닌 다른 것’, 즉 <문화적 활동>으로 규정되어야 한다.
5.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면, <노동시간의 단축>이 있어야,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으며 그것이 ‘자유의 왕국’이고 ‘문화적 활동의 시공간’이다. 그간 미처 눈여겨보지 못했던 노동해방의 이념은 바로 이것이다. 노동시간의 단축은 노동해방의 궁극적인 과제인 <자본으로부터의 해방>과 상충하지 않는다.
6. 가능한 한, 생존노동은 덜 힘들고, 덜 하기 싫은 상태로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작업 방식과 작업 결정 과정의 개선, 임금 상승, 고용 안정성의 확보 등 노동을 더 인간적인 방향으로 개선하는 것이다.
이성백은, “21세기 노동해방의 이념을 재구성하는 첫 출발점은 노동 신성성의 이데올로기를 떨쳐버리는 데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노동의 신성성은 생산과정에 더 효과적으로 노동력을 동원하기 위해 창출된 ‘동원이데올로기’임에도 불구하고 맑스를 비롯하여 사회주의도 이를 당연시해왔던 것이 사실”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노동이데올로기로부터의 해방은 이데올로기 수준에서의 ‘혁명적 과업’일 할 만큼 관념상의 근본적인 전환을 요하는 일”이라고 재삼 강조했다.
심은경(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