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性인권] 성적 금욕주의는 지배 엘리트들의 심술 혹은 통제수단 - 마광수

[편집부]

성적 죄의식에 바탕을 둔 금욕주의적 인식이 국민 개개인의 마음 속에 자리잡을 때 거기서 반드시 '복종의 미덕'이 생겨나고, 아울러 '인내심의 함양'이 최고의 덕목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소수의 지배계층은 이성우월주의에 바탕한 '엘리트 독재'를 합법적으로 자행할 수 있게 된다..





[성性인권] 에로스를 옹호함

마광수(연세대 교수, 국문학)


권력이 겉으로는 성을 금기시하는 체하며 국민들을 훈도(訓導)해 나가려는 사회에서는 자연히 성과 관련된, 혹은 그런 분위기를 환기시킬 수 있는 단어들을 비속어화(卑俗語化)시킨다. 그리고 그런 범주의 담론이나 창작물에 대해 어쩐지 고상하지 못하고 천박한 것 같은, 심지어 죄스러운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만든다. 또한 성에 대해 무지하거나 관심이 없는 척 하는 것이 마치 교양의 척도가 되는 것처럼 인식되게끔 은근한 압력을 가한다.

그런 사회일수록 지도층 문화인들은 스스로 완벽하게 도덕적이지도 못하면서 사회구성원들에게는 완벽하게 도덕적으로 살기를 강요한다. 그들이 강요하는 삶은 육체적이지 않고 정신적인, 즐겁지 않고 무미건조한, 솔직하지 못하고 내숭스러운, 개인주의적이지 않고 전체주의적인 삶이다.

어쩌면 이것은 기득권 지배 엘리트들이 이미 육체적으로 노쇠해 버렸거나 '품위의 꼭두각시'가 되어버려 젊음의 열정을 시샘한 끝에 강구해낸, 현진건의 단편소설『B사감과 러브레터』에 나오는 노처녀 'B사감'같은 심술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국민들을 획일적 통제에 길들여지도록 하기 위한 의도적 수단일 수도 있다.

성적 죄의식에 바탕을 둔 금욕주의적 인식이 국민 개개인의 마음 속에 자리잡을 때 거기서 반드시 '복종의 미덕'이 생겨나고, 아울러 '인내심의 함양'이 최고의 덕목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소수의 지배계층은 이성우월주의에 바탕한 '엘리트 독재'를 합법적으로 자행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개인적 쾌락의 추구'라는 시대적 대세는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쾌락'이란 말 자체가 무조건 부정적으로 인식되어서도 안 된다. 우리가 그토록 피땀 흘려 경제를 성장시킨 것도 따지고 보면 '쾌락'을 위한 것이 아니었던가. 동유럽이나 구소련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것도, 결국 따지고 보면 개인의 실제적 쾌락을 억제하고 전체의 이데올로기적 쾌락만을 중시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이념 또는 이데올로기는 인간의 머릿속에 들어앉아 '고상하게' 육체를 지배할 수 없다. 그것은 가슴으로 배로, 또는 그 아래로 내려가 인간의 갖가지 관능적 쾌락의 주체가 되는 육체적 감각들과 통합돼가고 있다. 인류는 이제 중세기 1천년간의 암흑시대,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 되고 있는 끊임없는 '종교 (또는 이데올로기) 전쟁'들이,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는 다르게 갖고 있는 '정신적 가치에 대한 환상'에서 비롯된 추악한 부산물이라는 사실을 서서히 깨달아가고 있다. 그래서 문화적 선진국의 지성인들은 닥쳐온 21세기를 주도해 갈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몸의 철학'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성을 합리성이나 인권과 관련시켜 논의해야만 하는 사회는 문화적 촌티에서 미처 벗어나지 못한 사회이다. 그런 사회에서는 불합리한 억압과 자유권의 침해가 도처에 깔려 있기 때문에, 성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이 자칫 사치스러운 넋두리로 몰릴 위험마저 있다. 이념이 팽배하고 군사독재문화의 척결과 민주화가 부르짖어지던 우리나라 1980년대 시절, 이른바 진보적 지식인들조차 성을 '3 S 정책'의 부산물 정도로 간주하여 천시했던 것은 그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에 대한 표현의 자유나 성적 쾌락 추구의 자유가 보장될수록 민주적 사회 분위기와 개개인의 인권 역시 차츰 보장돼 간 것이 문화적 선진국들의 역사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새삼 상기할 필요가 있다. 물론 문화적 선진국에서 미국은 제외된다. 미국은 결벽증적 퓨리터니즘에 의한 위선적 이중문화가 발달한 나라이고 종교국가에서 미처 벗어나지 못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성범죄 발생률이 스웨덴의 5배라는 사실은 위선적 이중문화의 실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나라는 조선조식 유교윤리에 미국식 청교도주의가 가세하여 더욱 더 이중적 성문화를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한국의 성범죄 발생율이 야한 나라 일본의 10 배나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성에 대한 죄의식과 편견의 제거가, 신통하게도 합리성의 회복과 인권 및 자유권의 신장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우리 사회 곳곳에는 광신적이고 비이성적인 구시대적 가치관의 잣대들이 너무도 깊숙이 뿌리내려 있다. 비단 사이비 종교나 점술의 난무뿐만이 아니라 편향된 도덕주의나 국수주의적 전체주의 그리고 수구적 봉건윤리 등에 나타나는 광신적 현상은, 다원주의를 인정하지 않고 개개인의 자유로운 생각을 억제하려는 데서 나온다.

참된 민주주의는 자유와 다원(多元) 없이는 이룩될 수 없다. 그리고 당연한 인권으로 보장되는 '성적 자유'는 자유와 다원의 실현을 위한 촉매제가 되는 것이다. 이젠 성의 자유가 무조건 방종이나 범죄로 간주돼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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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권뉴스는 ‘성해방운동’ 실천의 일환으로, 그동안 선진적인 성담론을 주장하다 보수수구세력은 물론 그를 이해하지 못한 진보진영에게도 외면당한 채 제도 권력으로부터 고초를 겪은 바 있는 마광수 교수(홈페이지)와 '웹2.0' 교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의 철학적 세계관이 유교적 성문화에 침윤된 한국사회에 있어 표현의 자유와 진보적 성담론의 공론화로 변혁의 한 축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기사에 대한 반론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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