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광수 "로마 멸망은 성윤리 타락 아닌 기독교적 정신우월주의에서 비롯"

마광수(연세대 교수, 국문학)

[성性인권] 모든 병의 원인은 정신과 육체의 괴리이다

역사의 변화는 알 수가 없고, 자연의 변화도 알 수가 없다. 모든 것은 급작스럽게 찾아온다. 그토록 강대했던 로마제국이 하루아침에 망한 것도 그렇고, 폼페이의 베수비오스 화산이 갑자기 터진 것도 그렇다. 그러나 거기에 지구의 운명에 대한 신의 예정(豫定)이나 섭리, 또는 인간이 저지른 죄업이 개입됐는지는 확인할 도리가 없다.

로마의 멸망을 성윤리의 타락 때문이라고 보는 도덕주의자들이 많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로마가 멸망한 것은 육체중심적 사고 또는 현세중심적 사고가 기독교의 국교화(國敎化)에 따른 내세중심주의 또는 정신우월주의로 뒤바뀌었기 때문이다. 쾌락을 당당하게 구가하던 제국 초기의 로마는 오히려 강대하였다.

굳이 도덕이나 윤리 문제를 끌어들인다면, ‘도덕의 타락’보다는 ‘이중적 도덕의 극성’이라고 하면 오히려 더 정답에 가까울 것 같다. 로마에서 기독교가 정치세력화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중세 암흑기가 시작됐으니까 말이다.

마찬가지로 정신과 육체가 상반된 방향타를 가질 때 한 개인의 육체는 급격히 허물어진다. 거듭 설명하자면 정신은 금욕주의적인데 육체는 쾌락주의적 방향타를 가지고 있을 때, 그러한 양가감정(兩價感情, Ambivalence)은 그 사람의 심신을 이원적으로 분리시켜 황폐화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한 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쟁터에 끌려나가 살아남으려면 싸움에만 열중하든지, 어떻게 해서라도 도망을 치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도망을 치자니 비겁한 놈이 될까봐 겁이 나고, 싸움에 열중하자니 전쟁이 증오스러워 미적거리다보면 적군의 총에 맞아 죽는다. 로마의 말기가 그랬고 지금 현대의 인류가 바로 그와 같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반전사상이 대충 당연시되고 세계평화가 끊임없이 외쳐지고 있는데도, 한쪽에서는 지속적인 국지전이 일어나고 있다. ‘세계는 한가족’이라고 하면서도 민족감정이나 자국이기주의를 앞세워 끊임없는 착취와 수탈이 자행되고 있다. 겉으로는 공해박멸을 외치면서도 공해산업은 끊임없이 늘어만 간다. 이럴 때 인류의 집단무의식은 더욱더 양가감정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한국의 말세론 유행과 종교산업의 번창은 그런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다. 당당한 쾌락주의자도 될 수 없게 만들고 진짜 금욕주의자도 될 수 없게 만드는 어정쩡한 양다리 걸치기식(式) 지배이념과 기득권 지식인들의 양비론적 처신에 대한 무의식적 염증이, 말세론의 “너 죽고 나 죽자”와 광신적 내세희구(來世希求)의 “너 죽고 나만 살자” 식의 괴상한 운명관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이중적 양가감정을 버릴 때 개인이든 국가든 건강해진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동물적 본능에 따라 행동하자는 말은 아니다. 인류는 그러한 야수성 정도는 막을 수 있을 만한 문화적 대리배설 장치를 개발해냈다. 내가 강조하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이중적 의식구조는 위험하다는 것이다. 개인의 본능적 욕구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것을 자유롭게 담론화할 수 있을 때, 그때 비로소 진짜 도덕이 이루어진다. 참된 도덕이란 ‘솔직성’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동물적 욕구는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보통이지만, 사실 동물들은 인간들보다 병이 없다. 그들은 이빨을 안 닦는데도 충치에 걸리지 않으며, 패륜적 섹스를 하는데도 성적 노이로제에 걸리지 않는다.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긴 하되 내세 걱정은 안하며, 더더구나 말세 걱정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게다가 동물세계엔 ‘전쟁’이라는 집단적 정신병이 없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말이 맞다. 갈대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며 정신적 쾌락과 육체적 쾌락 사이에서 헷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그 ‘생각’의 진짜 핵심은 경건주의적 도덕률이나 이성주의적 사고에 있는 게 아니라 ‘보다 자유로운 육체적 쾌락’에 있다. 동물은 발정기 때만 섹스를 하는데 인간은 일년 내내. 그리고 피임까지 해가며 섹스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모든 병은 정신적 욕구와 육체적 욕구의 불일치에서 나온다. ‘격노하는 본능’과 ‘위압적인 도덕률’ 사이의 피비린내나는 싸움이 바로 병이다. 도덕을 버리고, 아니 이중적 의식구조를 버리고 본능적 욕구 안에 정직하게 머물 수 있을 때, 병은 더 이상 운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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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권뉴스는 ‘성해방운동’ 실천의 일환으로, 그동안 선진적인 성담론을 주장하다 보수수구세력은 물론 그를 이해하지 못한 진보진영에게도 외면당한 채 제도 권력으로부터 고초를 겪은 바 있는 마광수 교수(홈페이지)와 '웹2.0' 교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의 철학적 세계관이 유교적 성문화에 침윤된 한국사회에 있어 표현의 자유와 진보적 성담론의 공론화로 변혁의 한 축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기사에 대한 반론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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