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덕효 (한국인권뉴스 대표겸기자)
7월 24일부터 시행되는 ‘성폭력 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화학적 거세법)에 대해 진보운동 진영의 대다수가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화학적 거세법은 조두순 사건, 김수철 사건, 김길태 사건 등 국민적 공분을 산 아동·청소년 성폭행 사건이 연이어 발생한 것과 관련, 2008년 발의돼 2010년 6월 국회를 통과했다. 이 법은 입법 과정에서 당시 들끓는 여론에 힘입어 치료가 아닌 처벌의 개념으로 법안 내용이 바뀌어 인권침해 및 위헌 등의 우려가 많다는 게 관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책 당국은 화학적 거세가 미국 캘리포니아 주 등 10여개 주와 북유럽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이 법을 합리화하지만 실제 내용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 독일,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 등 국가에서는 화학적 거세와 관련하여 성범죄자가 약물치료위원회에 약물치료를 신청하면 위원회의 진단 절차를 거쳐 국가부담으로 약물치료를 진행한다. 즉 ‘치료’의 개념인 것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화학적 거세는 본인의 동의를 거부한다. 재범위험이 큰 성도착증 환자로부터 사회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정신과 전문의의 감정절차를 거쳐 법원 판결에 따라 강제 시행한다는 게 법무부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법조계 일각에서는 본인의 동의가 없는 강제적인 약물 투여는 인권침해의 소지가 클 뿐만 아니라 형벌에 준하는 처벌이기 때문에 위헌적 요소도 강하다는 견해가 제출될 정도로 화학적 거세법은 문제점이 많은 게 사실이다. 특히 한 범죄심리학자는 “성폭행범 처벌이 강화되고 화학적 거세를 실시하면 화성 연쇄 성폭행 살인사건과 같은 강력범죄가 늘어날 것”이며 이는 “성범죄자들의 특성상 법을 두려워하기보다는 법망을 피하기 위해 완전범죄를 추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우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이 발의·통과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에서는 사회적 합의를 위한 이렇다 할 절차가 원천 봉쇄되었다. 더욱이 공론화를 주도해야 할 진보운동 진영은 지난 성性관련법 제정과 시행에서도 그랬듯이 별 다른 대안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2004년 9월 23일: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및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성매매방지법) 시행
2008년 9월 1일: 특정 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에 관한 법률(전자발찌법) 시행
2011년 7월 24일: 성폭력 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화학적 거세법) 시행.
여야는 물론 진보운동 진영의 동의(혹은 무관심) 아래 대한민국은 바야흐로 가장 견고한 성도덕적인 법치국가의 틀을 갖춰가고 있다. 품위 있는 인간사회를 위해 모든 이들이 성범죄로부터 안전해야 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성범죄를 포함한 각종 범죄의 발생 원인이 개인의 문제 못지않게 사회구조와 깊이 관련 있음을 인지한다면, 진보운동 진영은 빅토리아 왕조식 성도덕을 통치기제로 즐기는 우파들과 달리 ‘예방적’인 구조적 대안마련을 세심하게 모색해야 할 의무가 있다.
성매매방지법 시행 이후 지금 전국 도처는 음성 성매매(매춘) 시장으로 번지고 더욱이 그 여파가 해외까지 확대되고 있다. 게다가 성범죄는 줄기는커녕 오히려 증가추세다. 그리고 이제 전자발찌에 이어 화학적 거세라는 강제 주사기까지 등장했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이른바 선진국에서 채택한 치료 성격의 유용한 제도가 왜 이 사회에 오면 처벌 위주의 ‘괴물’로 변해야만 하는가.
우파들은 원래 그런 집단이니 논외고, 이 모든 것이 여성운동 등 부문운동의 늪에 빠진 남한사회 진보운동 진영과 진보권 오피니언 리더들이 나름 권력과 제 앞가림에 급급한 사이에 벌어진 자승자박적인 역사적 반동 현상이 아니면 대체 뭔가. 인간의 몸과 관련된 첨예한 사회적 이슈 앞에서 한사코 묵묵부답인 진보, 설명조차 하지 못하는 진보라면 그건 진보가 아니다. [한국인권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