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때로 기억난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누렁이가 낳은 새끼를 보러 뒷마당에 갔을 때 누렁이 혼자 쓸쓸히 있는 것을 보고, 엄마에게 이유를 물어봤다. 새끼들까지 키울 수 없어 달라는 사람 줬다는 말씀에 그 날 저녁도 굶고, 몇 날 몇 일 질질 짰는지 모른다. 그러지 않아도 느낌이 이상해 엄마께 강아지 팔지 말라고 당부에 당부를 했고, 그것도 의심스러워 학교를 파하자마자 며칠을 달려오지 않았던가!
옛 기억 속 아주 어렸을 때 외할머니 댁에서 2년 가까이 보냈다. 그때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이라 시골 동내 마을이 다 놀이터 이었지만, 동내에 아이들이 없어 엄마가 키우라고 사다주신 강아지가 유일한 친구 였던 것이다. 하지만 채 몇 개월도 못가 차에 치여 죽어야 했고, 외삼촌을 졸라 무덤을 만들어 십자가를 세워준 기억이 난다. 그 때 누렁이와의 이별은 생과 사의 헤어짐 이었지만 마포에서의 누렁이 새끼와의 이별은 생과 생의 생이별 이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머리가 좀 큰 나이인데도 더욱 슬펐나보다.
어제 저녁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공제회 화장실에서 내복을 꺼내 입고 뒤척이다 선잠을 들어서 그런지 조금 늦게 일어나 바로 앞 농성장에 자리를 깔고 앉자, 집에서 전화가 왔다. 흥분한 둘째 아들의 목소리와 8시가 다 되어서야 일어난다는 아들이 7시부터 전화 한 것을 보니 뭔가 좋은 일이 있음을 감지했다. 아닌 게 아니라 1년전 마당 있는 농가 주택에 세를 들면서 그 댓가로 아이들이 하도 졸라 주하형(시골농부)이 선물해주신 아롱,다롱이가 새끼를 낳았다 한다. 거의 생중계로 “아빠! 두 마리인데 한 마리는 검은색, 한 마리는 흰색이야.” 그리고 잠시 후 “아빠! 한 마리 또 나왔어. 뭐에 씌어 있는데 다롱이가 못배껴줘서 할머니와 내가 배껴줬어” 나도 초등학교 4학년 때처럼 신기함과 기쁨, 흥분에는 못 미치지만 아들의 난리법석은 충분히 이해 할만했고, 같은 마음으로 기뻐해 주었다.
그런데 어쩐다!
어렸을 때 엄마의 고민을 고스란히 내가 안았으니 말이다.
엄마는 동생과 나 2대1 이었고 나는 3대1로 더욱 불리하며, 한 달 후면 큰 딸은 고1, 막내는 초등 4학년으로 논리와 막무가내로 덤벼들게 분명한데 새끼들을 잘 분양할 수 있을까? 미리 약속은 받아 놨지만 막내는 그때도 묵묵부답에 째려보는 눈길이었던 것 같다. 아~ 가지 많은 나무에 가지가 또 피었으니 바람 잘날 없구나.
그래도 나는 얼른 가서 아롱,다롱의 새끼가 보고 싶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