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운동사 읽기]여성,그들의 반역 - 알렉산드라 콜론타이(2)

정인(사회실천연구소)

[실천] ‘인류사를 거스른 반역아’, 알렉산드라 콜론타이(2)
- ‘노동계급을 위해 일한’ 콜론타이



만일 내게 삶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기억할 만한 순간이 언제였냐고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것은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가 자신들의 대표를 통해 도시와 농촌에서 임시정부가 쓰러졌다고 선언한 그 밤이었다고 말이다... 모든 곳에서 모든 권한이 노동자와 농민 대표의 소비에트로 넘어갔다...


그렇다. 그 날은 콜론타이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인간해방을 바란 사람들에게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1908년 콜론타이는 핀란드 독립을 주장하다 경찰에 쫓겨 어쩔 수 없이 독일로 망명했고 러시아에서 2월 혁명이 일어난 1917년까지 10년 동안 그곳에서 살았다. 그곳에서 콜론타이는 반전운동과 좌파 국제주의자들이 뭉칠 것을 호소하는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국제사회주의 운동은 큰 시련을 겪게 된다. 독일 사회주의자들이 제국의회에서 전쟁에 찬성하는 투표를 했다. ‘세계평화’를 외치던 국제주의는 이를 통해 무너졌다. 그러자 레닌은 이렇게 말했다.

제국주의 국가 사이의 전쟁은 노동계급이 정치권력을 얻기 위한 ‘내전’으로 바뀌어야 한다. 제2 인터내셔널은 무너졌으니 제3 인터내셔널을 세우자.

유럽 여러 나라 좌파 지도자들과 정당들이 전쟁을 계기로 계급 같은 이해보다는 국가나 민족의 이익을 선택하는 노선을 좇자 국제 사회주의자들은 전쟁에 대한 반대 원칙을 또렷이 밝힌 레닌을 지지하게 된다. 이때 콜론타이는 침머발트 운동(Zimmerwald Movement : 이 운동은 즉각적인 휴전을 요구했고, 제국주의 전쟁으로 촉발된 민족주의적 적대관계 때문에 산산히 부서진 제2차 인터내셔널을 다시 세우려고 활동했던 유럽 사회주의자들이 이끌고 있었다.)을 전개하다가 레닌에 대한 지지로 돌아섰다.

그녀는 전쟁에 반대하는 강연(“누가 전쟁을 바라는가”)을 유럽과 미국에서 했다. 그녀의 강연은 큰 지지를 받았다. 또한 그녀는 전쟁에 반대하는 좌파 국제주의자를 모아 레닌이 주도하는 제3차 인터내셔널(코민테른)을 지원했다.

1917년 2월 23일, 러시아에서 2월 혁명이 터졌다. 그 혁명으로 드디어 제정 러시아가 무너졌다. 그 자리에는 임시정부가 들어섰다. 콜론타이는 말했다.

“노동자를 대표하는 소비에트가 권력을 잡도록 준비합시다. 케렌스키 임시정부의 온건 사회주의에 협력하지 말고 볼셰비키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앞장서시오. 권력만이 빵과 자유를 줄 수 있습니다.”

1917년 3월 19일 콜론타이는 페테르부르크에 도착했고 곧 이어 소비에트 집행위원이 되었다. 레닌은 4월에 귀국했다. 그는 모든 사회주의자에게 임시정부에 참여하지 말고 소비에트로 권력을 집중시키자고 호소했다. 그러나 소비에트 내에서 수적으로 열세인 볼셰비키 지도자의 말은 비웃음만 샀을 뿐이다. 그를 지지한 사람은 콜론타이 뿐이었다. 그 때문에 한동안 ‘여자 레닌’ ‘미친 여자 볼셰비키’라고 조롱당하기도 했다.

1917년 9월 볼셰비키 제6차당 대회에서 콜론타이는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뽑혔다. 이 대회에서 권력 장악이 결정되었다. 얼마 뒤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전 러시아 소비에트 대회가 새로운 정부의 수립을 선언하는 소리를 들었다. “나의 생애에서 가장 위대한 순간이었고 결코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사실 그랬다. 1917년, 그 해는 그녀의 삶에서 정점이었다. 그녀가 생애 최대의 업적을 남긴 해였고, 볼셰비키 당에 의해 다른 어떤 때보다 높게 평가된 해였다.

혁명 초기 처절한 경제난과 함께 볼셰비키에게 혁명 뒤 첫 겨울이 다가왔다. 절망감을 느낀 그들은 모든 희망을 ‘국제 혁명’에 걸었다. 그 때문에 1918년 1월 레닌이 러시아를 전쟁에서 보호하려고 제국주의 독일과 단독 강화를 맺고자 했을 때 그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브레스트리토프스크 강화조약’은 그동안 레닌을 지지해 온 이상주의자에게서 거센 반발을 샀다. 분노한 콜론타이는 제7차 당 대회에서 조약 반대파를 이끌면서 레닌을 반역자라고 성토했다.

우리는 조국이 아니라 노동자 공화국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겁니다.

러시아 사회민주당이 명칭을 러시아 공산당으로 바꾼 1918년 3월의 당 대회는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승인했고 아울러 콜론타이를 중앙위원에서 쫓아냈다.

  혁명 뒤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이런 갈등은 이어졌다. 1920년 9월에 열린 소련 공산당 협의회에서 알렉산드라 콜론타이는 당내 언론 자유를 확대할 것을 요구했다. 1917년 혁명 뒤 당 운영이 점차 관료주의로 되고 다양한 목소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쪽으로 흘러들어가 혁명의 순수한 원칙들이 파괴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가진 콜론타이는 21년에 열린 10차 당 대회를 앞두고 ‘노동자반대파’의 한 사람으로 「노동자의 반대」라는 팸플릿을 만들었고, 이 때문에 당 대회에서 레닌과 마지막 충돌을 벌이게 된다. 당과 노동조합의 관계, 노동조합의 역할 등이 겉으로 드러난 쟁점이었다. 콜론타이는 레닌의 경제 정책도 비판했다.

레닌은 혁명 뒤에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경제적 어려움을 벗어나려고 자본가 전문가를 산업체의 경영자로 쓰려고 했다.

그러나 콜론타이는 이런 정책 변화를 ‘국가 자본주의’이며, 사회주의 혁명의 원칙에서 후퇴로 여겼다. 노동조합의 운영에 대해서는 콜론타이와 노동조합주의자들은 노조가 경제 관리를 담당해야 할 뿐만 아니라 당과 국가에서 독립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주체는 바로 노동자뿐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사회에 대한 노동자반대파의 묘사는 적절했다. 그들의 원칙은 노동계급의 자기 조직화를 다룬 것이었다. 그러나 당에서 오랜 토론 뒤 노동자반대파 강령은 패배했다.
(콜론타이가 비정통을 용납하지 않았던 러시아 공산당에서 점점 늘어나는 요소를 비판한 글은 「성 관계와 계급투쟁」이다.)

  1921년 10차 당 대회에서 레닌과 대립했던 사건은 콜론타이에게는 정치 생명을 건 사건이었다. 비록 소수파의 한계 때문에 자기 뜻을 이룰 수는 없었지만 콜론타이에게는 자신의 정치 생명보다는 국제 사회주의자가 지녀야 할 원칙과 여성해방, 민주적인 당 운영 같은 원칙이 더 중요했다. 그 뒤 알렉산드라 콜론타이가 설 자리는 급격히 줄어들고 1922년에는 제노텔의 대표직도 잃고 외무인민위원회로 소속이 바뀌게 된다.

  그 뒤 콜론타이의 공식적인 삶은 외교관 경력으로 채워진다. 그녀는 러시아에서만 아니라 세계 최초의 여성 외교관으로서 1923~1926년 노르웨이 공사(公使), 1926~1927년 멕시코 공사를 거쳐 1930~1943년 스웨덴 공사와 대사를 지냈고, 1946년에는 노벨평화상 후보로도 지명되었다. 콜론타이는 1952년 3월 9일 모스크바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계속>


▒ 출처: 사회실천연구소 발행 '실천' 2007년 11월호

[사회실천연구소의 말] http://spri.jinbo.net/

실천(Praxis)

"일상적으로 자본주의 속에서 살아가고 자본주의와 늘 전면에서 투쟁하면서 자본주의 타도의 길을 만들어 가고자 하는 의욕은 강하나 이론적 천착이 부족하고 현장에서 맨날 투쟁 속에 살다보니 이론적 감각이 무디어졌습니다. 하지만 생각과 실천은 이론적 작업을 요구합니다." (어느 실천활동가의 말)

우리는 지금 여러 '유령'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유주의적 개혁과 신우익의 정치적 우세, 지구적 자본주의의 극적인 전진, 사회주의의 종말 등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겸허하게 이론을 다시 꼼꼼히 살피고 국제정세를 분석하면서 사유를 넓히고 운동의 과제가 무엇인가를 다시금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번역의 시대'를 거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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