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 재능노조 투쟁의 성과를 올바르게 계승하여 노급투쟁을 혁신하자!
1.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재능교육지부(이하 재능노조)의 ‘8.26 합의’가 갖는 운동사적 의미를 보면
1) ‘단체협약 원상회복’으로 사실상 특수고용직의 노동자성 획득을 이루어낸 운동사적 의미를 지닌 현 시기 노동운동의 성과이다.
2) 정리해고 노동자들의 ‘전원 원직복직’을 달성함으로써 노사관계에서 노조의 위상강화와 더불어 정치적 입지를 도모할 수 있는 계기를 구축했다.
3) 재능노조는 향후 현장투쟁으로 노동자의 권익을 향상시켜야 하는 숙제는 남았지만, 그간 장기간 끈질긴 투쟁에 의해 노동자계급의 이념과 임무를 주체적으로 세우는 한편, 노동자의 단결과 연대로 조직적인 투쟁을 전개해 마침내 재능자본 측과의 합의를 도출함으로써, 재능노조투쟁은 노동과 사회의 민주주의를 쟁취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10.5 토론회 결과)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시청환구단 조합원의 항의 내지 분열 행위에 대한 비판이 불가피하다.
1) 환구단쪽은 우선 노조의 의결구조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노조가 주도적으로 쟁취한 8.26 합의 등 결정을 아예 부정하는 행위를 하는 등으로 재능노조와의 분열을 일으켰다. 이는 재능자본의 입지만을 넓혀 주어 결과적으로 자본을 돕는다는 점에서 일종의 변칙적인 반동행위로 규정지을 수밖에 없다.
그들은 물론 그간 재능노조가 수행해 온 반자본 전선을 주도해오며 공동으로 지켜 온 점에서 그것은 노사합의에 대한 항의로도 여겨질 수도 있었지만 노동자민주주의라는 ‘절대선’의 입장에선 반동적인 행태로 규정된다. 이에 환구단은 만약 ‘8.26합의’에 문제가 있다면 노조내로 들어와 민주적으로 처리할 것을 권고한다.
2) 재능노조는 환구단쪽이 회의적으로 재단하는 노사관계를 기본전제로 삼고 있다. 이점은 과학적인 노동운동의 결과로서 지금의 생산관계를 향후 사회를 변혁시킬 토대로 삼은 점을 인정할 수 있다. 이는 다시 말해 재능노조가 현시기 한국사회를 보는 과학적 접근은 자본주의 사회관계를 노사간 상호 연관된 관계로 인정하는 한편 그것을 변화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해 투쟁하는 것을 올바른 노동운동으로 정립한 것이다.
특히 이점은 재능노조가 지난 오랜 세월(거리농성2076일 종탑고공농성202일) 동안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연대 투쟁을 통해 노동운동의 적대적・비타협적 기본 성질을 결코 잃지 않고 농성을 사수해 온 점에서 확인 될 수 있다. 이것은 재능노조가 목적의식적인 실천을 통해 계급투쟁의 객관적 진리를 사수한 것으로 평가된다.
3) 또한 재능노조에 연대한 조직(이하 재능정치조직)은 8.26 노사간 합의를 현시기 어려운 국면에 있는 노동자계급의 승리로까지 비화시킬 토대를 마련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구단쪽 정치조직은 8.26 합의를 주관적이고 개별적인 입장에서 심지어 감성적인 차원에서 왜곡시키고 있다. 이로 인해 그들은 자신의 기본적인 해방운동이기도 한 재능투쟁에 대해 엄정하게 객관적이며 보편적인 차원에서 이성적으로 판단하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은 지난봄부터 환구단쪽 정치조직의 내부문제로 부상되기도 했었다.
이는 한국에서 20세기 말 노동운동이 저질렀던 경험주의적 오류의 폐해를 연상시킨다. 그런 경험주의는 아직도 노동운동에서 망령으로 남아 재능노조를 비롯한 민주노조운동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이에 누구나 환구단쪽의 지난 투쟁과 그 성과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개별적인 경험을 중심에 두는 특수한 사안을 절대시하여 실천에 매달리는 우행(愚行)을 저질러선 안된다. 그것보다는 사안의 본질을 올바르게 인식하여 보편적이고 합법칙적인 운동의 원칙을 살려야 할 것이다.
4) 환구단쪽은 그런 실천적 오류를 과거나 현재에 범한 적이 없다고 강변할지도 모른다. 하나의 사례로 그들은 과거에도 ‘8.26 합의’에서 했던 것처럼 조합원 원직복직이 가능했 던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상 자신의 오류를 은폐하기 위한 주장일 뿐 당시에는 고 이지현 조합원에 대한 복직은 합의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노조에게 유리했던 당시 상황전개를 차치하더라도, 환구단쪽 주장의 본질은 위에서 본 경험주의적 오류의 전철을 엿볼 수 있다.
이번 합의에서 이룬 전원 원직복직은 재능자본의 착취에 대한 노조의 강력한 투쟁의 결과이지 재능자본의 노동자에 대한 심정적 배려에 있지 않다는 노사관계의 합법칙성을 발견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사관계의 모순은 결코 노사간 타협으로 해결될 수 없으며 궁극적으로는 계급투쟁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원칙을 노사 모두가 알고 있다. 이 점은 곧 역사의 필연적 발전 과정이기 때문에 노조의 권익은 자본가계급에 대한 비타협적인 원칙적 투쟁을 통해서만 온전하게 획득될 수 있는 것이다.
5) 이런 경험주의와 관련해 과거 노동운동의 오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노동운동은 노동자의 양적 변화를 중심에 두었을 뿐 정리해고 철폐, 비정규직 철폐 등을 정치적으로 실천할 어떤 질적인 변화도 이루지 못했다. 더구나 노동운동은 양적인 증가는커녕 현상 유지도 못한 채 감소하고 퇴락하는 과정을 밟아왔다. 이에 따라 계급투쟁은 수정주의, 패권주의, 심지어 모험주의 등 온갖 패악들이 난무하였다. 이런 결과는 지난 해 대선에서 좌파후보가 분열 혹은 분화되는 등 한계를 노정하였었다.
노동운동의 분열은 재능투쟁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환구단쪽이 분화 발전 보다는 모험주의적 한계를 노정하게 하는 무책임한 사태가 전개된 것이다. 지금까지 대선투쟁이든 재능투쟁이든 여기에 관여한 어떤 정파도 비판과 자기비판, 나아가 화해와 단결을 시도하고 있다는 어떤 소식도 들려오지 않고 있다. 이것이 좌파 분열이 겪는 희극인 동시에 그것이 겪어야 하는 비극이 되고 있는 것이다.
6) 재능투쟁을 위시해 분열되어 있는 노동운동이 통합하기 위해서는 정파들 간 비판과 자 기비판이 선행되어야 한다. 노동자의 갈등과 대립이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해결되지 못하는 근본적 원인은 그들 간 대립이 종래 이른바 ‘비적대적’ 모순으로 가볍게 간주되었던데 기인하는 면도 있다. 과거 맑스레닌주의 전술교과서는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비적대적 모순은 물질적으로 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진 노동자계급이 운동의 방향을 놓고 퉁일되지 못하고 일시적으로 대립하는 경우이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대립되지 않는 까닭에 어떤 강제적인 억압에 의해 해결하는 것은 노동자민주주의에 어긋난다."
그러나 지금의 재능분열이 마치 적대적 모순으로 심화되어 서로 간 합리적인 비판을 통해 해결하기가 난망하다는 것이 조합내에서는 물론 운동권의 일반적인 여론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일반적인 여론과는 무관하게, 자본주의 사회의 보편적 법칙인 어떤 모순도 계급간 투쟁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는 원칙 하에서, 재능사태와 관련된 투쟁도 그것이 노노관계라 하더라도 결국에는 ‘새로운’ 계급질서와 사회건설에 복무하기 위한 차원에서 전형적인 ‘적대적’ 투쟁의 한 형태로 간주코자 한다.
다시 말해, 재능사태는 노동자 동지 간 비적대적인 모순이 아니라 노노 간 대립하는 적대적 관계로 보는 ‘특수한’ 형태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것은 곧 노동자민주주의의 내용도 객관적으로 변화된 사회법칙에 따라 수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7) 재능투쟁처럼 노노 간 비적대적 관계에서 적대적 관계로 변한 경우는 역사적으로 전형적인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자본가계급의 사주와 회유에 의해 동지를 헐뜯거나 노조를 팔아먹는 모순이 발생하는 경우로서 그런 단적인 사례는 프락치에 해당된다. 이런 경우는 민주노조와 정치조직이 공히 강제적인 수단을 통해 그들을 제거해야 한다.
둘째는 민주노조의 지도부가 자신의 노선이나 이념에 맞지 않다고 해 노조에 대한 비난을 공개적으로 자행하는 경우인데 이것은 일종의 반달리즘에 해당된다. 즉 자본가계급의 공작이나 음모 못지않게 그들과 연대하는 정치조직의 패악에 의해 저질러지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이는 잘해 봐야 복수노조 결성으로 어용노조로 전락한 경우가 다반사였다.
마지막은 사회과학 차원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인문학 차원의 품성론에서 제기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간단히 말해 노동운동의 기준도 모르고 그것을 이해하지도 못하는 부류로서 흔히 룸펜프롤레타리아트로 과거에 불리어지기도 했다. 이들은 노동운동을 오히려 후퇴시켜 자본의 독재만 강화 시켜주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다.
위의 모든 사례들은 본성상 적대적 모순으로써 이것들을 비적대적인 모순인양 오해해서는 실천상 오류를 범하기 십상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8) 끝으로, 한국의 노동운동사를 재능투쟁과 관련해 다시 한번 짚어보자. 제1기는 20세기말에 해당된다. 이때는 노동운동의 지도부가 자신의 투쟁 경험만을 절대적 기준으로 보는 경험주의적 오류가 지배적이었다. 또한 노동운동은 개별자본가와의 투쟁만이 유일한 길인 것처럼 여긴 조합주의 내지 경제주의의 오류에 빠진 바 있다.
그러나 제2기인 21세기를 맞이한 지금은 지난 세기의 오류들을 천천히 시정하고 있는 과정으로 보인다. 이에는 신자유주의의 노조파괴, 고용불안 등 영향이 크나큰 역할을 수행했다. 이제 남은 문제는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단결하고 연대하여 정리해고 철폐, 비정규직 철폐 등 노개투를 전체노동자의 힘으로 전개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진보좌파 정당의 재건을 위해 운동이 전면적으로 재편되는 것이 불가피할 것이다. 이에 재능사태로부터 배우는 교훈은 노동운동이 시정해야할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그것은 노사관계든 노노관계든 이제 20세기의 낡은 것은 21세기의 새로운 것으로 수정해야 하며, 예컨대 민주노총의 안일했던 지난 기조가 재능투쟁의 혁신성에 의해 부정됨으로써, 한층 높은 수준의 운동과 투쟁으로 전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실천들이 향후 비록 시행착오를 범한다 하더라도 보편적이고 객관적 세계의 법칙인 노동자의 필연적 요구를 올바르게 파악하여 그것을 세상의 우연적인 요구와 결합시키는 일이 마지막으로 남은 과제가 될 것이다.
2013년 10월 24일
전 국 좌 파 연 대 회 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