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은 언제 오는가?

1986년 레이건-고르바초프 정상회담을 다룬 새 영화

친구가 공짜 표 두 장을 구해준 덕분에 마이클 러셀 건(Michael Russell Gunn)의 신작 영화 《전쟁의 벼랑》(The Brink of War)을 공식 개봉 며칠 전에 볼 수 있었다. 이 영화는 198610월 레이캬비크에서 로널드 레이건과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가졌던 유명하고도 운명적인 정상회담을 다룬다. 고르바초프는 그보다 1년 앞서 집권했고, 1985년 제네바에서 이미 레이건을 만난 적이 있었다. 당시 그는 글라스노스트(glasnost,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고 정부의 정보 공개와 사회적 토론을 활성화하려는 정책)와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 정치·경제 체제를 개혁하려는 정책)라는 구상을 숙고하고 있었지만, 아직 초기 단계라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외교정책에서는 고르바초프와 그의 핵심 참모 알렉산드르 야코블레프(Aleksander Yakovlev), 외무장관 에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Eduard Shevardnadze·영화에도 등장한다)가 이른바 신사고(New Thinking)’를 내세웠다. 레이캬비크 회담은 이 신사고에 구체적인 내용을 채우거나 그 가능성을 시험하는 자리가 될 예정이었다. 레이건은 대통령 임기 6년째에 접어들어 퇴임까지 2년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따라서 고르바초프가 어떤 의미에서는 임기를 막 시작한 단계였다면, 레이건은 임기 말로 향하고 있었다. 두 지도자의 나이 차이도 상당했다. 레이건이 스무 살 더 많았다.

198610월 레이캬비크에서 로널드 레이건과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만났다. 출처: 레이건도서관

레이캬비크 정상회담의 이야기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영화는 회담 녹취록과 참석자들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이틀 동안 이어진 치열한 회담을 거의 다큐멘터리처럼 재현한다. 레이건과 고르바초프가 단둘이 만나는 회담도 있었고, 양측 대표단이 모두 참석하는 회담도 있었다. 라이사 고르바초바(Raisa Gorbacheva)와 낸시 레이건(Nancy Reagan)도 등장하지만, 실제 상황에서 맡았던 역할에 비하면 영화에서는 비중이 다소 작은 듯하다.

이 정상회담이 유명한 이유는 두 지도자가 핵무기를 단순히 제한하는 수준을 넘어, 양측이 보유한 핵무기의 50%10년 안에 폐기하기로 합의할 뻔했기 때문이다. 이는 고르바초프가 내놓은 제안이었다. 그런데 레이건은 갑자기 한술 더 떠 핵무기를 완전히 없애자고 제안했다. 당연히 그의 참모들은 충격을 받았다. 고르바초프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미 핵무기의 절반을 없애자는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았는데 레이건이 그보다 더 나아가자, 믿기지 않는다는 듯 전부 다?”라고 물었다. 레이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소, 전부 다.” 하지만 결국 두 사람이 도저히 타협할 수 없었던 한 가지 문제 때문에 이 구상은 무산됐다. 바로 전략방위구상(SDI)이었다. 고르바초프가 핵무기를 절반으로 줄이자는 파격적인 제안을 들고 레이캬비크에 온 데에는 소련이 미국과의 군비 경쟁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었다. 소련은 GDP15%를 무기에 계속 쏟아부으면서 동시에 국민의 생활 수준까지 개선할 수는 없었다. 브레즈네프(Brezhnev) 장기 집권기의 정체를 넘어서야 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도 소련의 군산복합체에 아무런 대가도 주지 않을 수는 없었다. 다른 나라의 군산복합체와 마찬가지로 이들도 더 많은 무기와 더 많은 예산을 원했다. 고르바초프는 대규모 핵무기 감축에 동의해주는 대가로 미국이 SDI 개발을 중단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소련의 원수와 장군들은 SDI에 집착하다시피 했다. 따라서 고르바초프에게 SDI 개발 중단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이것이 성사되느냐에 모든 것이 달려 있었다.

레이건에게 SDI는 미국 국민의 안전을 위해 자신이 남길 유산이었다. 물론 그가 고르바초프에게 인정했듯이 소련이 핵무기를 모두 폐기한다면 미국은 더 이상 소련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다른 불량세력이 여전히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도 있었다. 1986년 당시 핵무기를 보유한 이런 불량세력이 대체 누구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당시 핵무기 보유국을 살펴보면 전체 핵무기의 90% 이상을 보유한 두 초강대국 외에는 영국, 프랑스, 중국, 인도, 그리고 아마도 이스라엘 정도밖에 없었다. 레이건은 영국과 프랑스도 대규모 핵무기 감축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고르바초프에게 장담했다. 자신이 그렇게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두 지도자 모두 중국을 언급하지 않았고, 인도와 이스라엘도 거론하지 않았다. 따라서 레이건이 SDI 포기를 고려하지 못했던 것은 아마도 미국 국민에게 완벽한 불가침의 안전을 보장했다는 확실한 유산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SDI 개발을 실험실 안에서만 진행하자는 제안을 거부했다. 실제 환경에서 SDI를 시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후 믿기 힘든 반전이 벌어졌다. 레이건은 소련도 자체적인 SDI를 구축할 수 있도록 관련 기술의 모든 비밀을 소련에 넘겨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렇소. SDI 전체를 당신들에게 주겠소.” 그러자 영화에서 가장 격렬한 설전이 벌어진다. 고르바초프는 미국이 젖소용 착유기같은 저급 기술 제품조차 소련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는 사실을 레이건에게 상기시키며 따져 묻는다. “그런데 이제 와서 역사상 가장 첨단인 군사기술을 내게 주겠다는 겁니까? 그게 말이 됩니까? 의회와 국방부, 심지어 당신 행정부가 과연 이를 승인하겠습니까?”

영화도, 정상회담도 바로 이 암초에 걸려 끝난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이후 미국과 소련은 전략미사일과 중거리미사일을 제한하고 감축하는 작업을 계속했다. 이는 두 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 커다란 성공이었다. 아마 역사상 처음으로 무기 개발을 어느 정도 통제하고 일정한 규칙에 따르게 만들었으며, 불과 몇 분 만에 문명을 끝장낼 수 있는 공격용 무기 수천 기를 폐기했다. 레이캬비크 회담 자체가 당장 구체적인 성과를 내지는 못했더라도 핵군축으로 가는 길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됐다.

고르바초프와 레이건은 둘 다 이상주의자였다. 레이건은 자유로운 기업 활동과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미국 체제가 지닌 장점을 진심으로 믿었다. 고르바초프 역시 소련식 사회주의가 물질적 평등을 실현하고, 모두에게 비슷한 성공의 기회를 제공하며, 계층 상승의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진심으로 믿었다. 실제로 고르바초프 자신이 이 세 가지를 모두 보여주는 사례였으며, 마찬가지로 레이건의 경력도 아메리칸드림이 지닌 장점을 잘 보여줬다. 두 사람의 이념은 서로 달랐지만, 상대방에게서 일종의 이상주의를 발견했다고 생각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물론 서로 다른 이상주의였지만 그래도 이상주의였으며, 단순한 실용주의나 마키아벨리식 권모술수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출처: 레이건도서관

영화에서는 고르바초프 역을 맡은 재러드 해리스(Jared Harris)의 연기가 훨씬 돋보인다. 다양한 표정과 탁자를 내리치며 분노를 터뜨리는 모습, 때로는 깊은 생각에 잠기거나 향수 어린 부드러운 표정을 짓는 모습을 통해 고르바초프라는 인물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반면 실제 레이건은 친근한 아저씨 같은 이미지로 유명했고, 가장 호전적인 발언을 내뱉고도 곧 특유의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곤 했지만, 제프 대니얼스(Jeff Daniels)가 연기한 레이건은 딱딱하고 경직된, 거의 종이 인형 같은 인물로 보인다. 따라서 거의 전적으로 두 지도자의 대화로 이루어진 영화의 3분의 2가량을 고르바초프가 장악한다. 분위기의 주도권도 확실히 그의 편에 있다.

실제로도 그랬을까? 영화를 보고 나면 이런 의문이 남는다. 영화 속 고르바초프는 뛰어난 협상가일 뿐 아니라 숫자를 정확히 꿰고 있고, 소련과 미국의 핵전력 3축을 구성하는 각 요소의 역할까지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다. 반면 레이건은 훨씬 자신 없어 보인다. 다른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듯 당시 레이건에게 이미 어느 정도 노쇠 증상이 나타났을 수도 있고, 원래 숫자에 강한 사람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러 다른 자료를 보면 고르바초프는 미국, 독일, 프랑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등과 수차례 협상하면서 순진하고 다소 무능한 협상가의 모습을 보였는데, 이 영화에서는 어떻게 이렇게 유능한 협상가로 보이는 것일까? 그의 협상 능력이 가장 명백하게 문제가 된 사례는 소련군의 동독 철수와 NATO의 비확대 보장을 둘러싼 협상이었다. 사후적으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당시 상황에서 보더라도, 웬만큼 유능한 협상가라면 소련이 당시 손에 쥐고 있던 를 활용해 더 나은 조건과 향후 관계에 관한 서면 약속을 받아낼 수 있었을 것 같다. 당시 아무도 이런 문제를 생각하지 못했던 것도 아니다. 고르바초프의 측근들 사이에서도 이런 생각이 있었다. 그렇다면 고르바초프는 1989년보다 1986년에 훨씬 뛰어난 협상가였던 것일까? 나는 모르겠다. 이 문제를 잘 아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고, 적어도 나름의 가설을 세워 글을 쓴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블라디슬라프 주보크(Vladislav Zubok)는 《붕괴》(Collapse)에서 중요한 해외 방문에 나설 때마다 예술가, 작가, 음악가, 작곡가가 대부분인 대표단을 데리고 다닌 고르바초프를 당연하다는 듯 조롱한다(내 서평은 여기에서 볼 수 있다)군비통제와 국경, 금융처럼 중대한 사안을 놓고 협상하는 자리에 이렇게 잡다한 인사들로 대표단을 꾸리는 데 고르바초프의 부인 라이사가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씁쓸한 상념이 남는다. 레이캬비크 정상회담으로부터 40년이 지난 지금, 그리고 민주주의가 승리한 뒤에도―영화 마지막에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장면을 비롯한 익숙한 영상으로 그 승리를 짤막하게 보여준다―세계에는 새로운 핵무기 배치를 통제할 장치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미국과 소련, 그리고 이후 러시아가 맺었던 네 건의 군비통제 협정도 모두 효력을 잃었다. 이제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는 아홉 곳에 이르며, 아마 그만큼 많은 나라가 핵무기 보유를 계획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날마다 핵무기 사용 위협을 듣는다. 두 초강대국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던 암울한 시절과 비교해도 오늘날 세계는 종말에 훨씬 더 가까이 다가가 있다. 대체 어쩌다 우리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일까?

추신. 거의 다큐멘터리를 지향하는 영화라면 사실관계 검증 담당자가 라이사 고르바초바가 남편을 두 차례나 소련 총리(Soviet Premier)’라고 부르는 장면을 그냥 두지는 않았어야 한다. 고르바초프는 소련 총리를 지낸 적이 한 번도 없다. 적어도 그의 아내라면 남편의 직함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보는 게 당연하다.

[출처Apocalypse, When?

[번역] 이꽃맘

덧붙이는 말

브랑코 밀라노비치(Branko Milanovic)는 경제학자로 불평등과 경제정의 문제를 연구한다. 룩셈부르크 소득연구센터(LIS)의 선임 학자이며 뉴욕시립대학교(CUNY) 대학원의 객원석좌교수다. 세계은행(World Bank) 연구소 수석 경제학자로 활동한 바 있으며, 메릴랜드대학과 존스홉킨스대학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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