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민주노조운동의 지역, 산별 노조사 정리 작업이 여럿 출간되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1996년 민주노총이 출범하면서 산별노조 지향을 명확히 했고, 소산별, 대산별 논쟁을 거치면서 여러 산별연맹으로 출범했었다. 그리고 각 산별마다 다양한 경로를 거쳐 현재의 산별 체제로 이어져왔다. 산별마다 출범 후 기간이 길게는 40여 년, 짧게는 20여 년에 달할 정도로 시간이 흘렀다. 각 산별의 역사와 흐름이 정리되었음직한 때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노총 출범 후 각 지역본부가 만들어졌는데, 초기에는 예산과 권한, 상근 인력 배치 문제 등을 두고 여러 이견도 있었고 지역본부마다 조직력과 사정이 조금씩 달랐던 것 같다. 이제 한 30여 년이 지났고, 최근에는 몇몇 민주노총 지역본부사도 정리되어 책으로 묶여 나왔다.
이 글에서는 지역, 산별 역사 정리 과정을 간추려 보고자 한다.
민주노조운동의 지역과 산별 노조사 책들
지역 노동운동사
지역 노동운동사가 정리된 곳으로는 충북, 인천, 울산, 전북 등을 들 수 있다. 각 책의 특징이나 눈여겨 볼 점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충북은 지역 중에 제일 처음으로 책을 펴냈다. 『우리 함께 어깨 걸고』(충북노동운동사, 2016)가 그것이다. 이 책은 정식 출판을 하지 않고 지역 내에서만 배포를 했다. 민주노총 충북본부의 역사를 정리하기는 했지만 마지막 부록에 충북지역 민중운동사를 실음으로써 4.19부터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 1970~1980년대, 1987년 노동자대투쟁, 전노협 시기를 덧붙여 두었다. 또 부록에는 충북지역본부 전현직 지도부 명단과 단위노조 현황을 모두 실었다.
전북은 『민주노총 전북본부 20년사』(2021, 흐름)와 『민주노총 전북본부 20년 연표』를 냈다. 책은 전북대학교에 있는 연구자들과 지역 노동연구위원 등 외부 필진이 썼다는 특징이 있다. (남춘호, 이성호, 차유미, 강문식, 노중기) 2008~2009년에 출간되었던 전북지역 노동운동사와 관련된 연구서 3종을 바탕으로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 『...20년사』는 1부에서 민주노총 전북본부의 활동을 시기별로 서술하고 2부에서는 지역 사회운동과의 관계, 지역 내 한일노동자연대, 사라져 간 지역 내 민주노조 사업장 등 전북지역 노동운동사와 관련된 주제를 서술했다. 또 맨앞에는 민주노총 건설 이전인 1970~80년대, 1987년 노동자대투쟁, 전북노련 시기를 간략하게 요약해 민주노총 전북본부의 전사를 서술했다.
인천은 『인천, 노동자가 살고 있다』(2023) 총 2권이 출간되었는데 이 중 부록인 2권은 연표집이다. 인천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지역인 만큼 시기적으로 가장 긴 시간을 망라한다. 1권은 개항에서 일제 강점기까지도 소략하게나마 담아냈고, 또 인천노협 시기 7년의 역사도 포괄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그 후 민주노총 인천본부 25년사를 총 5부에 걸쳐 서술했다.
울산은 『울산 노동운동사』(2025)로 총 2권의 책을 펴냈는데 판형이 크라운판으로 다소 크다. 여러 사람으로 집필진을 구성해 원고를 나눠 썼고 한 명의 ‘대표 집필자’를 둬서 다듬고 보완했다. 제목이 ‘울산 노동운동사’인 만큼 시기적으로 일제강점기까지 출발 시기가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2권은 사진 화보, 각 소속 조직별 연혁, 울산노동운동사 연표를 넣었다. 울산 지역 노동열사 19인의 약전을 실었다는 점도 특기해 둘 만하다.
산별노조사
민주노조운동 진영의 산별노조사 전에 한국노총 계열의 산별사를 보면 『금속노동운동 50년사』(2014), 『금속노동운동 60년』(2022), 『체신노조 50년사』(2008) 등을 펴낸 바 있다. 금속노련의 금속노동운동사의 경우 50년사는 40년사에 10년을 덧붙여 내고, 60년사는 50년사에 10년을 덧붙여내는 식으로 증보를 해왔다. 한국노총 계열의 여러 노조사가 이렇게 쓰여지기는 하는데, 근본적인 과거 재평가를 할 때는 전면 개고를 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노총 50년사』(2000)가 대표적이다.
민주노조운동 진영에서는 가장 큰 산별노조인 전국공공운수노조와 전국금속노조가 아직 ‘공식적인 노조사’를 펴내지 못했다. 노조의 규모나 그간 축적된 경험의 양이 방대해 이를 담아내는 노조사를 쓰기 쉽지 않은 탓으로 보인다.
그래도 공공의 경우 활동가이자 연구자인 박용석 전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이 『1987년 이후 공공부문 노동운동사』(2023, 진인진)를 펴냄으로써 그 공백을 메웠다. 이 책은 비록 ‘1987년 이후’로 서술 범위를 한정했지만, 2장에서 1945~1980 공공부문 노동운동과 관련된 내용을 축약함으로써 앞선 시기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시기를 구분하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1987년 이후, IMF와 신자유주의 시기,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 시기를 다루고 윤석열 정부 시기부터는 ‘부활한 시장근본주의 시대’로 다루고 있다.
금속과 공공을 제외하고는 공무원노조, 언론노조, 전국교직원노조, 화섬식품노조, 보건의료노조가 자기 역사를 정리해냈다. 차례대로 살펴보도록 한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2013년 김영수, 박재범이 총 4권의 자료집과 1권의 『공무원노동운동사』(한내)를 펴내면서 10년사를 정리했다. 비교적 짧은 시기를 다루지만 공무원노조 출범 당시 격렬했던 투쟁을 떠올려보면 그 10년이 가장 치열했던 만큼 내용이 방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공무원노조는 그 이후 더 이상 증보판을 내지 못했다. 하지만 산하 지부인 동해시지부와 부여군지부가 각각 지부 역사 20년사를 정리해냈다. (『선언에서 변혁으로』(2022, 한내), 『공무원노조 부여군지부 노동운동 20년사』(2023, 한내))
전국언론노조는 『언론노조 30년사』의 3권을 2021년 출간했다. 3권이 다루고 있는 시기적 범위는 2008~2017년으로 주로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기이다. 특징적인 것은 언론노조는 10여 년에 한번씩 10년사 비슷한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그래서 2021년에 출간된 책에 『...30년사』의 ‘3권’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었던 것이다. 즉 따로 증보된 원고를 덧붙여서 증보판을 내지 않고 대략 10여 년마다 10년사를 따로 냈다는 것이다. (1권은 『언론노련 10년사』(2000), 2권은 두 종으로 『현장기록, 방송노조 민주화운동 20년』(2008), 『현장기록, 신문노조 민주화운동 20년』(2009)이다.)
전국교직원노조는 1989년 출범 이후에 총 2권의 노조사를 펴냈다. 먼저 『참교육 한길로』(2011)는 법외노조 시기를 다루고 있고, 『참교육, 교육노동운동으로 꽃피다』(2016)는 합법노조 시기를 다루고 있다. 그후 본조는 노동조합사를 못 쓰고 있지만 전교조 지부 중에는 지부의 역사를 정리한 경우가 있다. (『전교조 전북지부 30년사』(2020)) 그 외에 전교조 초기 역사를 이끌었던 윤영규, 신용길 등 12명의 노조 활동가들의 인물 열전인 『교육열전』(2019, 이주영, 우리교육)이 출간되기도 해 사건사, 조직사를 넘어 인물사까지도 정리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최근에는 3권짜리로 『교육민주화운동 관련 해직교사 백서』(2022~2024, 우리교육)가 나오기도 해 1989년 1,500여 명 해고 이후의 시대에 대해 상세한 기록이 모아지기도 했다.
화섬식품노조는 『우리 같이 노조 해요』(2024, 신정임, 오월의봄)를 펴냈다. 이 책은 노조 20년의 역사 중 20장면을 추려 정리했고 외부 필진에게 의뢰해 완성했다. ‘본격 노조사'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대중적으로 읽기에 어려움이 없고 술술 잘 읽힌다는 장점이 있다. 20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장 아래 절을 세어 보면 총 53절에 이르는데, 각 장은 2~4년의 시기로 구분하고 그 시기에 있는 주요 투쟁과 주제를 하나로 묶어내는 식으로 20장을 구성했다. 이 책은 각 절마다 해당 투쟁 관련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덧붙인 점은 가독성도 높이고 이해도 높이는 효과가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민주노조운동 진영에서 가장 오래된 산별노조인 만큼 2018년에도 20년사로 『돈보다 생명을』(2018, 박미경, 매일노동뉴스)을 펴낸 적이 있다. 이 책은 위에서 언급한 화섬식품노조 『우리 같이 노조 해요』처럼 20장면을 추려서 외부 필진이 서술했다. 그후 보건의료노조는 다시 새로운 책을 기획했는데 이는 ‘본격 노조사 + 대중서’로 기획되어 출간되었다. 『보건의료노조 37년사』(2024, 왕의조, 전누리, 정경원, 한내)는 내용이 충실하고 본격 노조사라 할 만하고, 크라운판에 920쪽에 달할 정도로 방대하다. 이를 바탕 삼아 낸 『키워드로 보는 보건의료노조 37년사』(왕의조, 전누리)는 화섬노조의 책처럼 대중적으로 접근하기 좋은 책이다.
노조사를 낸다면
지역과 산별마다 아직 노동운동사를 정리하지 않은 곳들도 많이 있다. 일상 활동과 기본 사업을 해내는 것만으로도 힘들고 고달플 수 있다. 그러면서도 다른 곳에서 노조사를 펴냈다는 소식을 들으면 ‘아, 우리도 해야 하는데’ 생각이 들면서 부담감이 밀려들 수 있다.
두껍고 방대하게 내는 것만이 능사도 아니고, 대중적으로 읽혀야 한다는 생각에 지나치게 소략하게 내는 것도 좋지는 않다. 백과사전도, 요약본도 모두 저마다의 쓰임을 가진다. 저마다의 노조사는 저마다의 모양과 형식을 갖고 적당한 분량과 내용을 담고 있으면 된다. 그것을 위해 다른 지역, 산별의 노조사를 참고하는 것이니 부담을 가질 이유는 없다.
여러 담당자들과 관련한 회의를 가지면서 강조하거나 덧붙였던 말들을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혹여 관련된 사업을 기획하는 조직이 있다면, 부디 이 요약이 거칠게나마 약도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역시 필자가 가장 중요하다. 한 명이 쓸 건지, 여러 명이 나누어 쓸 건지, 내부 혹은 외부에서 필진을 구성할 건지 구상해야 한다.
○ 전사(前史)를 포괄해내는 것은 노조의 역사를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다만, 서술의 범위와 밀도는 적절하게 조정되어야 한다.
○ 글을 쓰는 사람 외에 편집위원회 혹은 편찬위원회를 구성할 수도 있다. 노조사 집필과 취재, 녹취, 조사 등을 협의하고 실무적으로 지원해주거나 원고 검토와 수정, 보완 등 역할을 나누어 거들 단위가 필요할 수 있다.
○ 출판을 하고자 하는 책이 어떤 컨셉의 책인지, 즉 노동조합사인지 축약본(대중서)인지, 화보집인지, 쟁점사인지, 20장면 혹은 30장면 식으로 쓸 건지를 명확히 해볼 것.
○ 노조가 출판까지 할 건지, 아니면 외부 출판사에서 출판할 건지 등도 검토하고 정해야 한다.
○ 노조사의 본문 외에도 부록 구성에 다양한 내용이 담길 수 있다. 역대 임원 및 집행부 명단, 조직도, 연표 등도 있을 수 있고 단위노조의 경우 조합원 명단과 사진을 넣기도 하니 좀 더 큰 조직은 사진 화보집을 구성할 수도 있겠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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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돌규는 노동자역사 한내의 운영위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