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월드컵 참사는 단지 감독의 전술적 실패와 협회의 무능, 혹은 불운으로 벌어진 일이 아니다. 두 명의 못난 중년 남성들의 기괴하고 무리한 ‘자기 증명’이 불러일으킨 파국에 가깝다. 이 못난 중년 남성들의 무리한 ‘자기 증명’ 욕구 이면에는 전형적인 ‘중년의 위기(midlife crisis)’의 징후가 서려 있다. 정신병리학에서 분석하는 ‘중년의 위기’는 단순 생물학적 노화에 대한 슬픔이 아니다. 과거의 영광이 빛을 잃고 미래에 대한 확신이 흐려질 때쯤, 인생 전반기에 쌓아 올린 모든 가치의 의미가 붕괴하며 겪는 정신적 재난이다. 모든 것들이 무너진 폐허 속에서 자신의 유한함과 무력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아는 생존을 위해 병적인 나르시시즘을 발동한다. ‘나는 여전히 유능하다’ ‘내가 아직 통한다’라는 환상에 매달리며 이를 증명하기 위해 애를 쓰면 쓸수록 붕괴는 가속화되고, 결과적으로 자신의 밑천만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출처: 대한축구협회
2022년 축협은 월드컵이 시작하기도 전에 벤투와의 재계약을 ‘쿨하게’ 접었다. 계약기간에 대한 이견이 있었고, 월드컵 직전까지 벤투호의 비판 여론이 만만치 않았으니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 안타깝지만 월드컵에서 벤투호는 역대급이라 불릴 만큼의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줬고, 벤투는 ‘쿨하게’ 떠났다. 월드컵이 끝나고 축협은 신임 감독 물색에 공을 들였다. 벤투 못지않은 훌륭한 외국인 감독을 모셔 오겠다며 전력강화위원장으로 박지성이 추천한 독일 사람을 데려왔지만, 전력강화위원회보다 위대한 협회장이고 싶었던 정몽규는 “아 됐고 그냥 내 말대로 해”를 시전하며 위대한 스트라이커 위르겐 클린스만을 선임했다. 정몽규의 첫 번째 무리한 자기 증명이었다.
클린스만은 아마 세상 가장 유명한 전술 무용론자일 것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그는 선수 시절 7~8번의 이적을 통해 여러 팀 여러 리그를 거치면서 한 시즌 빼고 모두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다. 리그고 팀이고 감독이고 전술이고 뭐고 그냥 자기가 잘나서 잘하는 그런 선수였다. 굳이 그의 선수 이력을 살펴볼 필요 없이 그의 감독 커리어만 봐도 그가 전술 무용론자인 건 너무나 자명했다. 독일 감독을 맡았던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전술은 코치였던 뢰브가 맡았던 것이 당시에도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고, 이후 바이에른 뮌헨 감독 시절엔 훈련센터 여기저기에 선수들의 명상을 위해 불상을 세워 놓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에게 전술보다 중요한 건 선수들의 탐貪 진瞋 치痴 극복을 위한 정신수양이었다. 한국 감독으로 선임되기 전 헤르타 베를린에서는 팬들의 항의에 부임 3달 만에 페이스북으로 사임을 발표하는 등 클린스만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그런 독일 사람이 아니다. 그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유로운 영혼, 70년대 미국 히피에 가까운 인물이다(그의 현재 국적은 미국이다).
당연히 클린스만은 망했다. 아시안컵 4강을 이루었지만, 대한민국 어느 누구도 만족할 수 없었다. 역대 최고라 불리는 스쿼드였지만 전술이 전무한 상태에서 선수들의 탐貪, 골에 대한 욕망이 과했던 건지, 게임을 풀어가야 할 중원은 늘 텅 비어 있었고, 중원 삭제 축구는 축구팬들에게 불안감과 화를 불러일으켰다. 축협은 대회 직후 급한 불을 꺼보겠다며 클린스만을 경질했지만, 연봉과 위약금을 합치면 거의 100억에 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많은 이들에게 화병을 남겼다. 철저하게 정몽규의 무리한 관여로 벌어진 사고였다.
전력강화위원회는 또다시 훌륭한 외국인 감독 선임을 위해 애썼다. 제시 마치(현 캐나다 감독)가 물망에 올랐고 축구팬들은 흥분했다. 하지만 한국 거주 기간에 대한 이견으로 계약 실패. 이후 자신의 구상을 ppt로 만들어오는 성의를 보여준 다비트 바그너, 선더랜드에서 기성용을 지도한 바 있는 거스 포옛이 물망에 올랐으나 느닷없이 홍명보가 감독 후보로 급부상했다. 여론의 반발은 무시무시했고, 홍명보는 강하게 거절 의사를 밝히며, 자신이 축협에 재직하며 만든 국가대표 감독 선임 시스템(벤투 선임 당시 만들었던)을 협회가 박살 냈다며 맹비난했다. 하지만 기술총괄이사 예쓰맨 이임생과의 2시간에 걸친 빵집 회동 이후 홍명보는 돌변한다. 울산 현대의 감독으로 팀의 2연속 리그 우승을 이끌었던 홍명보는 시즌 중 ‘쿨하게’ 감독직을 던지고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다. 정몽규가 왜 갑자기 국내 지도자로 마음을 바꾼 것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통제 불가능한 외국인 감독의 리스크를 피하고 계속해서 축협을 자기 통제하에 두고 싶은 정몽규와, ‘외국인이 역대급 스쿼드를 망쳐 놓은 지금이 적기’라 판단한 국내 축구인 카르텔의 이해관계가 적절히 맞물린 결과일 것이라 추측할 뿐이다. 정몽규의 통제 욕구에서 비롯된 두 번째 무리한 자기 증명이었다.
대체 그날 밤 11시 빵집에서는 무슨 얘기가 오갔던 것인가. 이임생이 말한 대체 뭔지 알 수 없는 한국형 축구 모델MIK(Made In Korea)은 왜 홍명보로부터 시작되어야 했을까. 라볼피아나니 비대칭 3백이니 뭐니, 그 많고 많은 국내 감독 중 왜 하필 또 홍명보였을까. 홍명보는 대체 무슨 정신으로 시즌 중에 울산 현대와 팬들을 헌신짝처럼 ‘쿨하게’ 버리고 국대 감독에 부임할 수 있었을까. 이임생의 어떤 말이 홍명보의 회귀본능을 깨웠을까. 이회창에 이끌려 정치권으로 들어온 박근혜가 청와대로의 귀환을 이룬 것처럼, 홍명보는 예쓰맨 이임생에 이끌려 국가대표 감독 자리에 앉았고, 다시금 월드컵으로의 귀환을 이뤘다.
박근혜에게 청와대가 그랬던 것처럼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에게 월드컵은 인생 가장 찬란했던 ‘나의 살던 고향’이다. 영원한 리베로에게 축구 불모지는 너무나도 좁았다. 그의 해외 이력은 J리그와 미국MLS가 전부였지만, 그는 월드컵 4강 신화를 쓴 대표팀의 캡틴이었고, 대회 브론즈볼의 주인공이었다. 그에게 월드컵은 자신의 위대함을 좁은 한국 땅을 넘어 드넓은 세계에 보여준 진짜 무대였다. 그의 다시 돌아가고픈 ‘나의 살던 고향’은 그냥 국가대표팀이 아닌 월드컵 국가대표팀이다.
항명과 하극상은 꿈도 못 꾸던 20세기에도 감독과 종종 불화를 일으키며 팀보다 위대한 선수가 있다는 걸 몸소 증명했던 영원한 리베로는 감독이 된 이후에는 팀(나)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애썼다. 그는 언제나 ‘니들이 축구를 얼마나 안다고’를 시전하며 당연히 뽑힐 만한 선수 하나둘쯤은 ‘쿨하게’ 제외했다. 2012년 올림픽 때 손흥민을 ‘쿨하게’ 제외하고도 보란 듯이 와일드카드 박주영과 함께 동메달의 위업을 달성했다. 2014년 월드컵 땐 독일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던 박주호를 제외하고 올림픽 동메달을 함께 했던, QPR과 아스날에서 사실상 연습생 신분이었던 윤석영과 박주영을 선발한다(박주호는 김진규의 부상으로 대회 직전 합류한다). ‘소속팀 활약이 우선’이라는 홍명보의 원칙은 윤석영이 세 경기 모두 주전으로, 박주영이 두 경기를 주전으로 뛰며 보기 좋게 깨졌다. 딱히 원칙도 없고 전술도 없는 홍명보호는 완벽하게 망했다. 귀국 기자회견에서 엿 세례를 받아야 했다. 모두가 티키타카, 게겐프레싱에 열광할 때 홍명보의 축구는 ‘의리축구’가 되었고, 홍명보는 대회 직전 분당에 땅을 매입한 것이 알려져 ‘땅명보’가 되었다.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대표팀의 캡틴, 국민영웅 영원한 리베로라는 자아는 치욕스러운 추락과 함께 그의 마음속에서 죽었다.
홍명보는 이후 축협의 전무이사를 역임하며 나름 훌륭한 행정가임을 증명했다. 국가대표 감독 선임위원장이었던 김판곤을 훌륭하게 서포트했고 그 결과 파울루 벤투를 선임할 수 있었다. 파울루 벤투 선임은 보기 드문 체계적이고 투명한 절차로 진행됐다고 호평받았다. 2022월드컵에서 벤투호가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줬고, 홍명보는 이후 울산 현대 감독으로 리그 2연패를 달성했으니 나름 명예를 회복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울산의 이미 훌륭했던 스쿼드, 전북의 추락 등의 행운이 따라준 결과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2연패가 흔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홍명보에게는 단지 그 정도 명예 회복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훨씬 더 커다란 자기 증명이 남아 있었다. 연어가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듯, 박근혜가 청와대로 돌아가듯, 홍명보는 다시금 월드컵에 입성해야 했다.
연봉 20억짜리 ‘마지막 봉사’라는 언어도단보다 중요한 건 ‘나는 나를 버렸다’라는 그의 선언이었다. 당시엔 필사즉생의 각오 정도의 상투적인 표현으로 받아들였지만, 이는 영원한 리베로라는 인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나온 오역이다. “결과적으로 내 안의 무언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다시 도전해보고 싶다’라는 강한 승리욕이 생겼다”라는 그의 말을 미루어보면 ‘내 안에 나오기 시작한 무언가’는 다시금 부활한 대한민국의 캡틴 영원한 리베로라는 자아다. 울산 감독으로서 이룬 2연패라는 나름의 업적을 ‘쿨하게’ 버리고 나니 그의 마음속에 죽었던 국민 영웅이 되살아난 것이다. 이 몹쓸 과거의 자아에게 월드컵은 ‘강한 승리욕’을 일으키는 멋진 도전이다. 4강 신화를 이룩한 국민 영웅이 자기를 버리고,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을 위해 다시금 월드컵을 도전하기로 했으니 이 얼마나 고결한 자기희생이며 숭고한 ‘마지막 봉사’인가. 그의 비장한 도전은 성공, 실패 여부와 상관없이 영원한 리베로에 걸맞는 훌륭한 서사를 부여한다. 성공하면 구국의 성공 신화, 실패하면 그 역시 꽤나 드라마틱한 비극이다. 무시무시한 비판 여론을 마주하며 느끼는 공포 속에서 한국 축구라는 십자가를 짊어진 순교자라 믿는 자기연민적 환상, 그리고 ‘나(울산 리그2연패)를 버리고’ 파국으로 돌진하며 폭주하는 파멸적 황홀경, 아리스토텔레스와 니체가 말하는 카타르시스가 결합한 비극, 이것이 홍명보가 직접 연출하고 영원한 리베로가 주인공으로 분하는 영웅 서사의 진면목이다.
위기의 빠진 중년 남성이 무리하게 ‘자기 증명’을 하다가 실수하는 건 흔한 일이지만, 정몽규와 홍명보는 자신의 것이 아닌 자산들을 ‘쿨하게’ 소진했다. 팬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 훌륭한 선수들의 전성기, 그리고 축구협회의 거대한 행정 시스템이라는 ‘공적 자산’이 못난 중년 남성들의 ‘자기 증명’을 위한 판돈으로 날아갔다. 이들의 병적인 나르시시즘이 두 개인의 추락과 파멸로도 모자라 축구협회 조직을 넘어 한국 축구 그 자체를 벼랑 끝 위기로 내몰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축구협회의 시스템과 절차를 박살낸 정몽규의 ‘전능함’은 클린스만과 홍명보라는 2타석 연속 병살타로 자부심이어야 할 축구 국가대표팀을 전국민 화병의 근원으로 만들었다. 세계적 수준의 훌륭한 재능을 빌려 자신의 유능함으로 포장하려 했던 국내 축구인 카르텔, 그리고 아직도 국민 영웅의 자아로 살아가는 홍명보는 대한민국 축구 역사 가장 찬란한 황금기를 처참하게 도려낸 역적이 되었다. 자기 그릇의 크기를 가늠하지 못하는 ‘중년의 위기midlife crisis’는 이렇게나 위험하다. 여기서 비롯된 무리한 통제 욕구, 자기 증명의 욕구는 자신의 파국은 물론이고 주변 많은 것들의 파국을 불러온다.
정몽규, 홍명보를 비롯하여, ‘중년의 위기(midlife crisis)’를 겪고 있는 이들에게 이 노래를 바친다.
Faith no more - Midlife crisis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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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내현은 밴드 로큰롤라디오에서 보컬과 기타를 맡고 있다. 가끔 글도 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