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라브 다스, 아비지트 딥케, 아슈토시 랑카/ 온라인에서 퍼진 풍자와 젊은 세대의 분노를 동력으로 급부상한 '바퀴벌레 자나타당(Cockroach Janta Party)'은 서로 다른 능력과 야망, 정치적 이력을 지닌 세 명의 인물이 이끌었다. 이들은 온라인 풍자 캠페인을 전국적인 항의운동으로 키워냈고, 결국 다르멘드라 프라단(Dharmendra Pradhan) 연방 교육부 장관을 사퇴하게 만들었다. 출처: The Hindu
최근 인도를 뒤흔든 학생 봉기를 설명하는 일반적인 해석은 Z세대가 만연한 실업과 시험문제 유출로 대표되는 극심한 부패에 분노했다는 데 초점을 맞춘다. 시험문제 유출은 이미 부족한 일자리마저 얻을 가능성을 훼손한다. 물론 이런 설명은 맞지만 충분하지 않다. 15세 소녀가 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하고 잔타르 만타르(Jantar Mantar)에 왔다고 털어놓았다면, 소녀를 움직인 것은 자신의 취업 전망만이 아니라 훨씬 더 깊은 무엇이다. 마찬가지로 Z세대의 시위가 전국 수많은 도시로 자발적으로 확산했다면, 집권당과 정부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더 근본적인 문제가 걸려 있다는 뜻이다.
이 운동은 분명 정치적 시위가 아니었다. 또한 분명한 '지도자'도 없었다. 바라티야 자나타당(Bharatiya Janata Party)은 '지도자'를 상대하는 데 능숙하다. 지도자들을 분열시키고, 비방하고, 매수하고, 부패시키며, 집행국(Enforcement Directorate)과 외국기부금규제법(Foreign Contribution Regulation Act)을 앞세워 협박한다. 이 운동에도 지도자가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확산하지 못했을 것이다. 집권당은 늘 써왔던 모든 수법을 동원했지만 처참하게 실패했다. 이 운동은 어느 누구의 '지도력'에도 의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남 왕추크(Sonam Wangchuk)가 단식을 중단해도 시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마찬가지로 '바퀴벌레' 자나타당(Cockroach Janata Party) 소속 의원 두 명이 J. P. 나다(J. P. Nadda) 장관의 집을 찾아 협상한 일도 학생들의 환영을 받지 못했다. 학생들이 이를 반대해 사전 조건을 명시하지 않는 한 더 이상의 협상을 막았다는 사실은 이 운동이 얼마나 비전통적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이 운동은 '지도자'가 '추종자'를 대신해 행동하는 통상적인 운동이 아니었다. 학생들은 오히려 '지도자'가 아니라 세 가지 조건을 중심으로 단결했고, 그 조건만큼은 어떤 타협도 허용하지 않았다.
이 운동이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광범위하고 자발적인 지지를 끌어낸 이유는 더 깊은 곳에 있다. 학생들과 청년들이 현 정권의 도덕적 공허함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다. 잔타르 만타르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로 묶은 것은 암울한 취업 전망이나 시험문제 유출이라는 재앙만이 아니었다. 제도 안에 책임지는 사람이 없고, 체제의 끔찍한 실패에 대해 도덕적 책임을 질 사람도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그들이 느낀 도덕적 공허함이었다.
학생들이 다르멘드라 프라단(Dharmendra Pradhan) 교육부 장관의 사퇴를 요구한 이유는 그의 사퇴가 시험문제 유출 문제를 해결하거나 망가진 교육체제를 바로잡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잔타르 만타르에 모인 모든 사람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그의 사퇴를 협상 불가능한 요구로 내세웠다. 그들은 이 도덕적 공허함을 극복하고 싶어 했다. 몇몇 관료나 하급 공무원이 아니라 정치권의 누군가가 시험 파동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래서 모디(Modi) 총리가 시험문제 유출 책임자를 신속재판에 회부하겠다고 약속했을 때도 학생들은 전혀 호응하지 않았다. 결국 이 운동은 윤리적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하나로 묶어냈다. 집을 뛰쳐나온 15세 소녀부터 산탄총과 맞선 용감한 젊은 남녀들까지 모두 그 요구 아래 모였다.
실제로 현 정권의 핵심에는 도덕적 공허함이 자리 잡고 있으며, 그것은 정치권 전반으로 퍼져나갔다. 이 정권은 자신들에게 반대표를 던질 것으로 판단한 수백만 명의 유권자에게 투표권을 박탈했다. 선거관리위원회(Election Commission)조차 본질적으로 총리와 총리가 지명한 인사 한 명이 구성하는 비도덕적인 절차를 통해 꾸렸다. 선거 결과가 나오더라도 당선한 야당 의원들을 매수하거나 협박해 여당으로 옮겨가게 만들면서 선거 결과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사실상 하나의 희극을 연출한 셈이다. 학생들과 청년들은 바로 이 희극에 맞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다. 많은 '고디(godi·권력의 나팔수)' 언론이 이 희극을 찬양했고, 그것을 알고 있는 수많은 사람은 공포에 눌려 침묵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용기를 내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모디 우상화를 풍자한 포스터와 만평은 그 반대의식을 분명하게 드러냈고, 오랫동안 사람들을 마비시켰던 공포에서 많은 이들을 해방했다.
경찰의 잔혹한 폭력과 산탄총, 못을 박은 곤봉, 최루가스, 그리고 다르멘드라 프라단을 끝까지 교육부 장관으로 유지하려는 고집은 모두 바로 그 공포를 사람들의 머릿속에 계속 심어놓기 위한 것이었다. 정부는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는 인상을 유지하려 했다. 다시 사람들을 원자화해 각자가 자신의 무력함만 믿도록 만들고, 정부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고 믿게 만들려 했다.
이러한 도덕적 공허함은 모든 파시스트 정권의 특징이기도 하다. 1930년대 독일의 나치 운동은 처음에는 독점자본을 맹렬히 비난했지만, 실제로는 일부 독점자본의 은밀한 지원을 받았다. 권력을 잡은 뒤에는 결국 독점자본과 손을 잡았다. 그 과정에서 에른스트 뢈(Ernst Röhm)이 이끌던 자신의 지지자들까지 '장검의 밤(Night of Long Knives)' 학살로 제거했다. 독점자본에 맞선다는 도덕적 우월성은 독점자본과의 동맹이 낳은 도덕적 공허함으로 바뀌었다. 오늘날의 신파시스트들은 권력을 잡기 전부터 새로운 독점자본 세력과 공개적으로 손을 잡는다. 그리고 독점자본에게 약탈의 면허를 주는 이런 거래는 필연적으로 도덕적 공허함을 낳는다.
파시스트들이 괴벨스식 선전이 필요한 이유도 바로 이 공허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도에서도 정권의 핵심에 도덕적 공허함이 없었다면 볼리우드 배우들에게 "모디가 있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Modi hai to mumkin hai)" 같은 노래를 부르도록 압력을 행사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한 배우는 그런 압력을 받았다고 인정했다.
학생들은 사실 이 도덕적 공허함에 맞서기에 가장 적합한 사회집단이다. 학생들은 순수하고 이상주의적이며, 충분한 정보를 갖추고 사려 깊고 용감하다. 또한 윤리적 행동을 강하게 존중하고 헌신한다. 이런 자질 덕분에 학생들은 괴벨스식 선전으로 사람들을 냉소적으로 조종하며 유지되는 정권의 도덕적 공허함과 맞설 수 있다. 그렇다고 이번처럼 한 차례 윤리적 행동을 관철했다고 해서 체제가 바뀌었다거나 제도가 변화했다는 뜻은 아니다. 표범 한 마리를 잡는다고 해서 표범의 무늬까지 바뀌는 것은 아닌 것과 같다.
학생들의 요구에는 체제 변화나 제도 개혁이 포함되지 않았다. 만약 그런 요구를 내걸었다면 수많은 논쟁이 벌어졌을 것이고, 운동도 이렇게 빠르고 자발적으로 전국으로 확산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운동은 농민운동과 뚜렷하게 대비된다. 농민운동은 기본 계급의 이해관계를 지키기 위한 계급투쟁이었기 때문에 단순히 윤리적 책임을 요구하는 운동과 달리 제도적 요구를 내걸 수밖에 없었다. 신자유주의 질서를 지배하는 제국주의와 긴밀히 결합한 인도 독점자본의 요구에 따라 추진하던 제도 개편을 되돌리는 것이 농민운동의 목표였다. 반면 이번 운동은 제도 변화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래서 신파시스트 정권은 자신의 이미지와 오랫동안 공들여 조성한 공포 분위기에 타격을 입었지만, 앞으로 잃어버린 지위를 되찾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정권은 앞으로 다수 종교 공동체를 겨냥한 종교적 선동을 강화하고, 공동체 간 충돌을 조장하며, 국경에서 국제적 긴장을 유발하려 할 것이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가 남아시아 문제에 개입하려는 성향을 보이면서 마지막 수단은 예전보다 사용하기 어려워졌다. 또한 학생운동의 '지도부'를 포섭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약화하려 할 것이다. 정권은 운동을 오직 '지도자'의 틀에서만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생운동은 신파시즘의 술수를 폭로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 공동체주의를 냉소적으로 이용하는 행태를 드러냈고, '최고지도자'는 절대 틀리지 않는다는 신화를 깨뜨렸으며, 오랫동안 나라를 짓눌렀던 공포 분위기를 허물었다. 학생운동은 이제 신파시즘에 맞서는 정치적 도전을 시작할 길을 열었다.
[출처] The Student Uprising Against Moral Hollowness | Peoples Democracy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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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바트 파트나익(Prabhat Patnaik)은 인도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이자 정치 평론가다. 그는 1974년부터 2010년 은퇴할 때까지 뉴델리의 자와할랄 네루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 연구 및 계획 센터에 몸담았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