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여 만세>

... 노래모임 '새벽' / 19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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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소개]

유연함 속의 투지와 격정

 

혜화동 시절의 새벽

노래모임 '새벽'은 84년 결성되었다. 우린 보통 처음 창립시의 '새벽'을 '혜화동 시절'이라고 부른다. 혜화동 안쪽 당시 보성고 (지금의 서울과고) 아래에 있던 극단 '연우무대' 사무실에 얹혀서 남의 집 살이를 하던 시절이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전업적인 노래 활동가로서 첫 사회 생활을 내딛던 초기 대학 노래패 (서울대 메아리, 이화여대 한소리, 고려대 노래얼, 성균관대 소리사랑) 선배들이 다 모여 있었다. 이런 음악적 작업의 중심에는 역시 문승현 (현 경희대 음대 교수) 선배가 있었다. 여기에 연합 메아리의 김광석과 메아리의 김삼연이 선배들의 총애 속에 객원가수 형식(?)으로 많은 작업에 참여하곤 했다.

노래모임 '새벽'의 첫 출발은 84년 봄 아현동 '애오개 소극장'에서 공연했던 '가지꽃'이라는 노래극 공연이 아니었던가 한다. 기독교 청년운동 노래팀에서 활동하고 있던 나는 이 때 선배들에게 가끔씩 불려 가서는 이런 저런 심부름으로 땜빵이나 열심히 해 주곤 했다.


운동권 히트상품, '민주주의여 만세'

혜화동 시절의 '새벽'이 민중문화운동협의회 이름으로 제작하여 판매한 첫 테이프가 바로 85년 제작된 '민주주의여 만세'라는 테이프이다. 민중문화운동협의회는 이러한 테이프의 판매로 당시 운동단체 치고는 꽤 괜찮은 수익을 올렸던 것으로 안다. 당시 이 단체의 사무국장은 지금 현재 영화 제작자로 열심히 활동 중이신 유인택(현 기획시대 대표) 선배였다. 내 기억에 이런 음악 테이프의 제작은 유인택 선배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되었다. 이후로도 '또다시 들을 빼앗겨', '그날이 오면', '해방의 노래', '선언'등 노래모임 새벽이 제작하는 테이프는 계속 민중문화운동협의회의 히트 상품이 된다.


서정성과 격정의 조화, 문승현의 탁월한 감각 돋보여

'민주주의여 만세' 제작 모임에도 문승현 선배의 호출이 있었다. 하지만 테이프 제작에는 직접 참여하진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테이프 전체에서 개인적으로 인상에 강하게 남은 부분은 문승현 선배가 부른 '까치길'과 당시 서울음대 작곡과에 재학 중이던 박연선이 불렀던 '묶인 손들의 기도'라는 노래이다. 아직은 대학에서 많이 불리워 지던 포크의 여운이 가득히 남아 있던 창법과 따스함이 새삼스럽다. 박연선의 호소력 있는 찬송가 연출도 이 테이프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독특한 느낌을 더한다.

전체 음악적인 구성에서 멜로디 라인이 강한 포크나 찬송가류의 유연함이 김삼연이 부른 '타는 목마름으로' 같은 강한 격정과 함께 서정성이라는 틀 안에서 어우러지고 있다. 음악적으로 이러한 서정을 함께 어우르면서 붙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으리라.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음악감독 문승현 선배의 탁월한 감각이 돋보인다.
 
 

85년 '미문화원 농성' 등 격정적 정치상황, 노래운동도 예외일 수 없었다

테이프가 제작된 85년은 '삼민투', '서울대 민추위 조직검거', '미문화원 농성'으로 대변되는 격정적인 정치적 소용돌이의 중심으로 진입하는 시기였다. 이렇듯 8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소위 진보적이라는 모든 영역에서 격정은 유연함을 넘어선다. 이러한 시류에 노래운동도 예외는 아니었다. '민주주의여 만세' 이후 제작된 어떠한 음악적 작업의 성과에서도 이러한 유연함과 넉넉함이 함께 하는 투지와 격정을 찾아보기란 매우 힘들다. 이 지점부터 아마 우린 뒤돌아보지도 여유 있게 스스로를 바라보지도 못하면서 그저 앞으로만 뛰어 달려오기만 했던 것은 아닌지.

'민주주의여 만세'에는 음악적 정서의 풍만함이 배어 있다. 진정성이 가득한 서정적 선율이 있고 가창에는 아련함의 미학이 가득하다. 과거란 언제나 아쉬움을 남기는 법. 이러한 넉넉함과 유연함을 향한 회한이 스피커에서 나오는 노래의 선율과 함께 온 몸에 감기어 옴을 느낀다.

 

이창학 (메아리 81학번..'벗이여 해방이온다' 작사, 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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