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늘고 길게 살아라.
“이의용 동지 좀 쉬어 가면서 해요”부산지하철 노동조합 선배들은 나를 보면 이 말을 자주 한다. “예? 할 만 합니다.”라고 대답하면 “가늘고 길게 가야지, 짧고 굵게 하면 안 돼”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나는 이럴 때 마다‘과연 나는 얼마나 힘든가’하는 생각과 함께,‘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짧고 굵게 하고 떠나갔으면.....’하는 생각도 든다.
반론이 좀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가늘게’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다. 바쁘게 조합 활동을 하다가 느긋한 일상에 젖어 들 때면‘힘든 길로 잘못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은 나로 인해 기뻐할 사람들의 얼굴이다.
함께 웃는 것이 바로 노동조합 활동이다.
내가 생각하는 노동조합 활동은 조합원을 웃게 만드는 것이다. 싸우고 반목하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전투적인 것이 아니라‘어떻게 하면 우리가 함께 웃을 수 있을 것인가’하는 고민이 내겐 우선이다.
노동조합이 힘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더 나아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희망을 보여 주기 시작하면서, 노동조합을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고자 하는 다툼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새로운 세상이 어떤 모습인가에 대한 많은 말들이 있다. 특히 “사회주의”에 대해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하는가!
그런데 우리가 몸담고 있는 노동조합의 현실은 어떠한지 떠올려보자.
아래로부터 요구를 수용하고 모든 조합원의 뜻을 모아 움직이는, 우리가 듣고 있는 사회주의의 모습과 닮았는가?
노동조합은 현실에서 새로운 세상의 새 정치를 보여 줘야 함에도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노동조합이 이야기 하는 그 세상을 믿을 수 있겠는가?
나는 노동조합이 조합원이 함께 웃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노조 집행부가 만들고 싶은 세상을 만들려한다고 생각한다. 즉 정파마다 세상에 대한 자기 그림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 서로가 그렇게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부엌칼도 살인자의 무기로 변한다.
바꾸고 싶다. 함께 웃는 노조, 함께 웃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구체적이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마음’을 심어 주고 싶다. 그 무엇이든 칼처럼 이용하기 나름이라고 본다. 세상의 모든 제도를 바꾼다고 한들 제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면 그 제도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요즘 현장이 힘들다고 말을 많이 한다. 그렇지만 이런 변화는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다.
노조활동을 하는 많은 분들이 “노동자는 하나다.”, “우리는 어쩔 수 없는 노동자”라고 말한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면 자식들을 자신과 같은 노동자로 키우지 않기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 이미 우리 노동자들의 머릿속에 패배의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세상을 바꿀 수는 없으니 내 자식만은 노동자로 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동자여 함께 웃자.
이런 현실이지만, 즐겁다. 당장 세상을 바꾸지 못해도 노동자가 함께 웃을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웃다보면 언젠가 세상은 바뀔 것 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