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들여다보기는 했는지
기획을 시작하며 나름의 야심찬 계획이 있었다.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주장도 중요하지만 실제 현장에서의 활동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 나의 현장뿐 아니라 다른 사업장의 활동은 어떠한지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고 또 중요한 시기라고 판단했다. 90년 초반부터 따지더라도 근 20년 가까운 노동안전보건운동은 적지 않은 성과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부문임은 틀림없다. 노동안전보건운동은 전국적인 동력을 만들어낸 활동이었으며 이는 제도로, 때로는 활동으로 현장에 적용되고 수렴되어온 활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노동안전보건운동에 대한 성과와 가능성을 서로 공유하고 모범을 수용하는 것에 대해 인색하기도 하였고, 특히나 지금과 같은 공황적 위기는 지금껏 쌓아온 성과와 가능성이 사장되어 버릴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해서 ‘현장 노동안전보건활동 들여다보기’라는 기획을 통해 노안 활동을 공유해보고 재확인해보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연속적으로 기획이 이어지지 못했고(이것은 전적으로 집필자의 게으름 탓이다) 다양한 사업장의 사례를 제시하겠다는 애초의 기획 의도를 따라가기에는 부족함이 너무 컸기에 아쉬움 또한 크다. 매회 마다 3-4개의 사업장의 사례를 소개하려 하였으나 섭외도 만만치 않았고 또 섭외가 되었다 하더라도 취재하는 과정에서 예상되는 난관에 대해 넘어서고자 하는 노력도 충분치 못했고 본다. 또한 보다 구체적인 현장 활동을 소개하려하였으나 그 활동에 대한 관련 간부, 활동가, 조합원의 다각적인 평가나 종합적인 의견 제시가 부재하여 ‘실제 현장을 제대로 들여다보기는 했는지’ 하는 반성과 순전히 우리 연구소의 역량 사정으로 더 이상 이 기획을 지속할 없음이 안타깝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주장에 익숙한 [노동자가 만드는-일터]에 있어서 그 동안의 주장을 평가하고 향후 방안에 대한 고민을 하는데 있어 이 기획(취재)은 의미 있는 과정이었음은 분명하다. 더불어 이 과정을 통해 현장에서 필요한 내용을 우리 운동에서 생산하고 있지 못하다는 반성도 해보고 노안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사업장들을 관통하는 그 흐름이 무엇인지,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게 되었다.
관건은 감수성과 현장 대응력
그동안의 취재는 안전보건조직, 교육, 건강검진, 물질안전보건자료 활용 등이었다. 안전보건의 영역의 일부에 대한 취재였지만 이를 통해 전체 안전보건 활동의 대강을 알 수 있었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취재하더라도 이것은 나머지 모든 현장 사안들과 연결되어 있었고, 특히나 안전보건조직을 통해 전체의 활동을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취재를 통한 몇 가지 시사점은 아래와 같다.
첫째, 안전보건활동에 승패는 감수성이다.
안전보건활동에 있어 활발하거나 모범적인 사업장은 관련 투쟁의 경험을 소중히 생각하고, 이에 대한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즉 안전보건에 대한 감수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이다. 이러한 감수성의 기반은 현장의 건강권이 노동권이고, 노동권이 생존권이라는 인식이다. 이것이 간부의 수준이건, 조합원의 수준이건 일정하게 형성되어 있음으로 인해 현장 노동자의 요구를 지속적으로 취합하거나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러한 경험은 지속적인 현장의 정서나 활동을 높이는 주요한 근거가 되고 있었다.
둘째, 현장 장악력에 기반하고 있다.
노동안전보건 활동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에 현장 장악력이 어느 정도인가 따라 노동안전보건 활동의 양상은 사뭇 달라진다. 물론 현장 장악력의 기준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저마다 다른 기준이 있을 것이다. 그 기준이 어찌되었건 현장의 노동자들이 가지는 현장장악력(대응력)은 노동안전보건 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노동자의 현장 대응력이 높다는 것이 곧바로 활발한 노안활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노동안전보건의 감수성이 동반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노안활동이 현장의 대응력을 향상시키는 것에 일조하고, 전체 대응력이 다시금 안전보건 활동을 촉진시키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셋째, 법 ․ 제도를 활용하나 이에 속박되지 않는다.
노력하는 사업장의 공통점 중 하나는 법 ․ 제도를 활용하나 그에 속박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안전보건관련 법 ․ 제도는 상대적으로 활용할 부분이 많은 것은 분명하지만 이것에 만족하거나 법 ․ 제도에 갇혀서 노안활동을 사고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쟁취해낸 근거들을 활용하되 중요하게 판단해야할 것은 ‘현장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이다. 법 ․ 제도적으로 미비한 부분에 대해서는 현장의 필요와 상황을 고려하여 개선을 제기하면서 현장의 규범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현장의 감수성과 대응력은 현장의 요구를 제대로 수렴하고 제기하는 힘이 되어 현장 노안활동의 폭을 확장시켜 나가게 될 것이다.
제대로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제대로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과제다. 제대로 하기위해서는 우선 ‘제대로’의 기준이 필요하다. 현장안전보건활동의 ‘제대로’는 ‘건강권=노동권=생존권=노동권=건강권’의 인식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즉 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건강권은 존재할 수 없다는 기본 전제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활동의 궁극적 목적은 현장의 대응력과 통제권을 노동자의 것으로 만드는 일이 되어야 한다. 건강한 노동환경은 노동자의 거침없는 요구와 거부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제를 가졌다면 마지막으로는 그에 부합하는 활동인지 ‘제대로 들여다 보아야’ 한다. 예컨대 안전보건활동이 ‘건강권’에만 갇혀있는 것은 아닌지, 독자적인 영역으로 방치되거나 오히려 그를 선호하는 것은 아닌지, 기술적 개선 조치만으로 만족하고 있지는 않은지, 욕구와 필요를 스스로 제한하고 있지는 않은지 등에 대해서 점검해보아야 한다.
취재를 하다보면 종종 조합원과 활동가의 무관심, 현장 노동자의 이기심을 안타깝게 토로하는 활동가를 만나게 된다. 필자도 이에 대한 뚜렷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긴 세월, 꾸준한 활동을 당해내는 것은 없다는 진리를 믿고 가끔은 지치더라도 우리의 건강함을 잃지말고 활동하시기를, 기획을 마치며 응원드린다.
한노보연 선전위원 김재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