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촛불로 잠시 멈칫했던 영리병원 설립 허용이 최근 관계 정부부처에 의해 강력히 추진되고 있다. 윤증현 장관을 비롯한 기획재정부 관료들이 물꼬를 트고, 보수 신문들이 든든한 지원사격을 하는 가운데 자본 증식을 위한 먹잇감만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자본가들은 그 판만 열리면 언제든 달려들 태세를 갖추고 있다. 그리고 이제 그 판이 벌여지려 하고 있다.
3월 13일 보건복지부와 한국개발연구원 주최의 ‘의료서비스산업 선진화를 위한 공개토론회’가 보건사회연구원에서 열렸다. 이 날 토론회는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가족부 등 8개 관계부처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진행하고 있는 '서비스산업 선진화를 위한 공개토론회' 일환으로 개최됐다. 이날 공개토론회에는 보건의료업계 관계자와 정부관료 등 300여명의 이해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해 그들의 영리병원에 대한 부푼 기대를 충분히 짐작케 하였다. 공개토론회에 앞서 건강세상네트워크, 보건의료단체연합, 공공서비스노조, 보건의료노조 등의 80여명의 노동자, 건강권 운동단체 회원들은 영리병원 허용정책이 가져올 의료비폭등과 건강보험붕괴를 우려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토론회에서 영리법인 도입 찬성측 인사로 나온 전국병의원네트워크 박인출 회장은 “국내 병원들 실제로는 이미 다 영리를 추구하고 있는 영리병원이다. ‘영리’라는 말 사람들이 별로 안 좋아한다. ‘영리병원’이라는 말보다 ‘투자개방병원’이라는 용어를 쓰자. 나도 의사지만 의사들의 독점권 문제 있다”라며 “지금과 달라질건 폐쇄적인 구조가 아닌 개방적 구조로 바꾸는 것일 뿐”이라 말했다. 또 다른 찬성론자 이기효 인제대 교수는 “영리병원이 도입돼도 우리나라는 건강보험이 있어서 총칼로 집권해도 무너뜨리기 어렵다. 대체형 민간의료보험 도입하자는게 왜 건강보험붕괴냐, 음모론에 입각해서 보니까 그런거다”라며 건강보험붕괴론에 황당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서울의대 의료정책실 권용진연구원은 “영리병원은 서로 경쟁하니 의료비가 더 비싸지지는 않는다. 경쟁하면 의료비는 싸지는 법이다”며 의료비 폭등 우려를 일축했다.
☞ ‘투자개방병원’. 박인출 회장의 말대로 정확한 용어다. 병원을 자본 증식을 위한 자본가들의 투자처로 만들기 위해 병원 설립과 운영의 권한을 달라하고 의료행위를 자본증식을 위한 도구로 이용하자는 것이니 말이다. 박인출 회장은 자신들의 추악한 의도가 ‘영리’라는 용어를 쓰면 자신들의 본질에 더 가깝게 드러나게 될까 우려했었나보다. 그래서 ‘투자개방병원’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신들의 흉악한 모습을 감추려 하는 것이다. 병원 그리고 의료행위는 ‘영리’ 추구와 ‘자본증식’을 위한 대상이 되어선 안된다. ‘공공의 이해’에 종속되어야 한다.
‘영리병원’, ‘투자개방병원’이 도입되면 건강보험은 온전할 수 있을까? 보다 많은 이윤을 남겨야 하는 영리병원은 현재의 건강보험의 통제된 수가를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영리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영리병원을 허용한 정부는 결국 그들의 요구를 적극 수용하게 될 것이다. 그 결과 건강보험 수가를 그들의 이윤추구욕이 충족될 때까지 대폭 인상하여 건강보험재정이 파탄에 이르던지, 파탄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건강보험을 대체할 수 있는 민간의료보험 도입을 적극 추진하던지 그 어느 쪽도 이윤추구를 최고의 선으로 치는 자들에게 현재의 건강보험 붕괴는 다만 시간 문제일 뿐일 것이다.
투자자의 경제적 이해가 최우선시되는 병원경영의 구조속에서, 최대주주 자본가가 병원 최고경영자가 되는 구조속에서 국민들이 부담해야 하는 의료비는 어떻게 될까? 지금보다 더 많은 이윤창출을 위해서 국민들의 호주머니를 훨씬 더 많이 털어야 하겠지. 병원 수입에서 입원환자로부터 얻는 수입의 비중이 크니까 어떻게 해서든 입원비도 당연 더 비싸질테고, 고가의 검사, 남발되는 검사들 등등. 병원의 이윤창출에 비협조적인 양심적인 의사들이나 보건의료 노동자들은 온전치 못하겠지. 어떤 이들은 병원자본에 기생해서 살거나, 어떤 이들은 언제 짤릴지 모르는 불안속에서 숨죽이며 살겠지.
이명박정부는 모든 사회공공서비스 분야를 자본의 증식을 위한 투자처로 만들려 한다. 의료서비스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민간의료보험이 일부 도입되어 있는 현재 상황에서 병원의 영리추구를 합법화 하는 것은 의료서비스시장 전체를 자본에 넘겨주기 위해 필요한 핵심적 지점이다. 그들이 내세우는 여러 가지 이데올로기 공세를 무너뜨릴 수 있는 힘은 의료와 건강은 공공의 이해의 문제라는 인식과 이와 함께 공공의료체계를 건설하려는 우리의 활동일 것이다. [일 터]
한노보연 선전위원 송홍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