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동지들의 투쟁을 보면 가슴 한켠의 응어리가 느껴진다. 그 응어리는 이천의 반도체 공장에서 14년 동안 공조운영업무에 종사했던 노동자의 사망 사건이다. 2007년 7월 중순 고인은 복수가 가득 찬 몸을 이끌고, 숨을 헐떡이며 병원 응급실을 찾았고, 그 후 1달 만에 사망하였다.
1994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H전자에 입사해 여러 차례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사망할 때까지 회사만 바뀌었을 뿐 공조업무만 해왔다. 공조업무는 외부 공기의 오염물을 정화시켜 클린룸에 공급하고, 클린룸의 온도, 습도를 유지하며, 반도체 생산과정에서 발생한 오염물질과 유기미스트 등을 정화시켜 다시 외부로 배출하는 업무이며, 이밖에 반도체 설비 전반에 대한 유지․보수를 담당했다. 고인이 직접 반도체를 생산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반도체 생산 과정에서 응축된 오염물질에 직․간접적으로 항상 노출되는 업무를 수행한 것이다.
고인은 2004, 2005년경부터 ‘중등도의 구속성 폐기능 저하’ 등의 호흡기계통에 이상 증상, 심장비대 소견 등이 있었던 상태였고, 만성기관지염에 대한 치료는 입사이후 줄곧 받아왔던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2007년 6월 말경부터 ‘가래가 많이 나온다. 작업 중 가슴이 뛴다. 피로를 자주 느낀다’는 증상을 호소하였고, 2007년7월 중순경 응급실을 찾았을 때, “확장성심근병증”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수술을 하였지만 결국 사망하였다. 주치의는 “과도한 정신적 또는 육체적 스트레스로 인한 바이러스성 질환의 심장 침범이 원인이 될 것으로 사료됩니다.”라는 소견을 밝혔다.
유족보상 청구를 위해 회사를 방문하기로 했다. 물론 회사측 관계자는 협조할 수 없다고 하였고, 노동조합 부위원장을 만나 그나마 얘기라도 들어보기 위해 이천의 공장을 방문했지만 정문에서 막혔다. 고인과 절친했던 동료와 노동조합 부위원장이 함께 정문으로 나왔고, 정문 옆에 있던 사무실에서 1시간 가량 대화를 나눴다. 대화를 나누는 사이 나의 질문에 집중하기 보다는 오가는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는 게 그들의 모습이었다.
그나마 노동조합측에서 작업공정이나 업무일지 등 몇 가지 자료를 제공했지만, 실질적으로 근로복지공단이 원하는 핵심적인 내용은 확인할 길이 없었다. 14년 이상 일했던 고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보여주지 않는 반도체 회사의 염치없음에 분노했다. 또한 근로복지공단은 상병명의 생소함으로 유족보상 접수 단계부터 특유의 태도를 보이다 결국 유족보상에 대해 불승인처분을 내렸고 심사청구, 재심사청구를 거쳐 현재는 행정소송 중에 있다.
이 때부터 가슴 한 켠에 응어리가 맺혀 있다. 도대체 반도체 공장안에서, 도대체 공조작업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물질로 인해 만33세의 젊고 건장한 남성 노동자가 급사했는지 알고 싶다. 반올림 동지들의 투쟁을 통해 반도체 산업 전반에 둘러쳐진 장막을 열어 젖히고,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쟁취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일 터
노무법인 필 유상철 노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