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가 참교육의 열정으로 질곡의 20년을 달려오는 동안 교육 현실과 학교 현장도 변화의 물결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초창기 '벌떡교사'로 불리던 전교조 선생님들이 있었기에 학교는 희망을 꿈꿀 수 있는 삶의 공간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교사들은 좀 더 수업에 집중할 수 있었고, 학생들은 좀 더 인간다운 대접을 받게 됐다. 학부모들 역시 불법찬조금을 비롯한 학교의 부당한 요구에 더 이상 속앓이를 하지 않아도 된다. 교사·학생·학부모가 하나로 어우러져 학교를 희망의 교육 공동체로 만들고자 하는 전교조의 노력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교육 희망을 꿈꾸며 전교조가 지난 20년 동안 교육 정책과 학교 현장의 변화를 이루어 낸 수많은 것들 가운데 일부를 정리했다. - 편집자 -
학교를 혁신하다
불법찬조금 없애고 학운위·인사위 설치
전교조는 투명하고 공정한 학교 운영이 절실하다는 인식 아래 교육 주체들과의 토론이나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되던 학교장의 독단과 독선을 막고 이를 통해 학교 운영이 민주적인 절차와 과정에 따르도록 하는 데 노력했다.
초창기의 '촌지 안 받기' 운동을 비롯해, 학교 측이 학급 임원 학생의 학부모에게 반강제적으로 갹출해온 찬조금 또는 부유층 학부모가 학교에 희사하는 등으로 조성되는 불법찬조금운영의 부당성을 폭로하고 찬조금 없애기 운동을 줄기차게 전개하여 불법 찬조금을 거의 뿌리 뽑을 수 있게 되었다.
전교조는 교사·학생·학부모가 참여하는 학교 자치와 교무회의의 의결기구화를 끊임없이 주장해왔는데, 그 가운데 일부가 변형·수용되면서 '학교운영위원회'와 '인사위원회'가 설치되어 교사와 학부모들의 의견이 학교 운영에 반영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었다.
학교 운영 비리 척결의 일환으로 학교 예·결산 공개운동을 전개하여 학교회계가 투명해지고, 전시 행정이 아닌 교육적인 곳에 더욱 많은 예산이 사용될 수 있도록 했다.
'급식네트워크'라는 조직을 만들어 학교에서 급식을 제공하도록 하고, 이를 직영으로 운영하게 하였으며, 지자체에서 급식조례를 제정해 급식 지원을 확대하도록 하고 있다. 소비자 운동 차원에서 시작한 '교복·앨범 공동구매' 가운데 교복공동구매는 지금 정부 차원에서 강력히 권장하는 운동이 되었다.
전교조는 농산어촌 작은 학교 살리기에도 힘을 모았다. 1994년 경기도 두밀리 분교사태를 계기로 부각된 농산어촌의 작은 학교 폐교 반대운동에 동참해 작은학교 폐교를 막아내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으며 '농어촌교육특별법' 제정 운동을 줄기차게 벌여왔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농산어촌 작은 학교를 '좋은 학교'로 만들자는 농산어촌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을 일으켜 새로운 교육 개혁의 바람을 일으켜가고 있다.
지역사회단체와 함께 고교 입시 부활을 반대하고 평준화를 확대하기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평준화의 확대(2000년 군산·익산·울산, 2002년 경기 과천·안양·군포·의왕·부천·고양 등)로 구체화 되었다.
전교조는 각 교과별로 '교과모임'을 창립하고 기존의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모둠수업, 협동수업, 토론수업 등 창의적인 새로운 수업방법과 수업내용을 연구·개발하여 회지를 통해 보급하고, 교과모임이 주최하는 자주연수를 통해 이를 공유하고 확산하여 왔다.
더불어 통일교육·환경교육·양성평등교육·인권교육 등 새로운 가치교육의 창출을 개척하고 발전시켰으며, 생일잔치, 학급회의 정상화, 학습신문, 학급문집이나 학급앨범 제작, 학급문고 운영, 학급공동체 놀이 등을 통해 학급을 아이들의 주체적인 활동 공간으로 바꾸었다.
교원 근무 여건 개선에 나서다
각종 수당 인상·주번교사제·일·숙직 폐지 등
전교조는 단체협약 등을 통해 관행적으로 유지되던 학교의 불합리한 제도와 규정들을 적극 개선·수정할 것을 요구했다. 그 결과 상당한 수준으로 불필요한 교사들의 잡무가 덜어졌고 이로 인해 근무 여건이 개선되는 효과를 얻었다.
대표적 사례로 '주번교사제'와 매일 아침 날인하던 '출근부를 폐지'한 것을 들 수 있다.
매달 강제적으로 교장·교감의 결재를 받던 '수업지도안과 학급경영록' 역시 교사들의 자율적 활동으로 바꾸었다.
고질적인 병폐 가운데 하나로 지적되던 교사들의 '일직·숙직'을 없앤 것도 전교조의 몫이었다.
전교조는 1990년 초반부터 일·숙직 폐지투쟁을 벌여 90년대 중반 대부분의 학교에서 폐지하도록 하였으며, 전교조 합법화 후 단체협약을 통해 일·숙직을 완전히 없앴다.
또한 1급 정교사 연수 시 일정한 기준 없이 출장비를 임의대로 지급하던 관행을 없애고 '공무원 여비 지급 규정'에 따라 지급하도록 하였다. 여교사와 육아 여건 개선을 위해 기존 60일이던 '출산휴가를 90일'로 확대하도록 함으로써 모자보건 환경 개선에도 기여했다.
이밖에 전보로 인해 이주할 경우 공무원 여비규정에 의해 이주비를 받을 수 있게 하였으며, 교사의 자율연수경비의 전부 또는 일부를 학교 예산으로 지원하도록 함으로써 교사의 연수비 부담을 줄였다.
1990년부터 1991년까지는 초등 수업시수 경감투쟁을 전개하여 1992년 교육부로 하여금 교과전담제를 도입하게 했다.
각종 수당을 신설하고 기존 수당의 인상을 요구해, 담임수당 인상(2000년 6만원에서 8만원으로, 2002년 11만원으로), 보직수당 인상(2000년 3만원에서 6만원으로, 2002년 10만원으로), 교통비 인상(2000년 10만원에서 12만원으로, 2002년 13만원으로), 보건교사 수당 신설 (2000년 3만원) 및 인상 (2002년 5만원으로 인상), 교직수당의 본봉화, 초·중등 수당 차이 해소 (2000년 단협)등으로 결실을 맺었다.
학생 인권과 복지를 개선하다
학생·학부모 부담 해소 위한 노력
전교조는 학생들에게 부담을 주는 각종 준비물 비용과 소년신문 강매 행위 등을 줄이거나 없애고, 다양한 수업 모델을 개발해 학생들의 인권 향상과 복지 증진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담임이 개인 부담하거나 학생들에게 반강제 징수하여 운영되던 학급운영비를 단체협약을 통해 학교 예산에서 직접 지원토록 하였으며, 초등학생들의 학습준비물을 학교예산으로 편성·지급하게 함으로써 학부모들의 준비물 부담을 줄이는 데 기여했다. 학생에게 부담시키거나 폐휴지 판매 대금 등으로 지출하던 학교안전공제회비를 학교교비로 지급하도록 함으로써 학생·학부모의 부담을 덜었다.
11월 3일을 전후한 시기를 학생주간으로 선포하고, '학생의 날' 기념식을 끈질기게 추진하여 학생주간 행사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CA반을 넘어서는 풍물반, 노래반, 신문반, 영상반 등의 활성화를 꾀하여 자율적인 학생 동아리 활동의 폭과 내용을 크게 넓혀 놓았으며 학급회장과 학생회장의 직선제를 추진하여 이를 일반화하기도 했다.
교육관련 단체와 함께 왜곡된 기존의 어린이 날 행사를 어린이들 스스로 주인이 되어 즐겁게 놀 수 있는 '어린이 잔치 마당'으로 변화시켜 지역 사회의 작은 축제로 정착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노력들
이 밖에도 1995년부터 만 5세아 유치원 무상교육의 법제화운동을 전개, 2004년 유아교육을 공교육화하는 '유아교육법'을 제정하게 했으며, 장애인 교육을 활성화하기 위해 조직 내 '특수교육위원회'를 설치하고, 장애인 단체와 함께 '장애인교육권연대'를 구성하여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과 '장애인교육지원법' 제정을 위해 줄기차게 노력해온 결과 마침내 이 법을 제정(2007년)하는 데 기여하였다.
최근에는 성과급 차등 지급 폭 확대의 제한과 균등분배의 확산을 도모하는 등 교사·학생·학부모 등의 교육 주체가 더불어 함께 행복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 '제2의 참교육 실천 운동'을 선언하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