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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가 하루 빨리 어른 조직이 되기를 바란다. 세상을 제대로 아는 조직, 소통이 잘 되는 조직이 되기를 바란다. 정파적으로 현실 문제를 인식하지 말고 교육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20년 전부터 전교조 선생님들 만나면 당부했던 것이다. 정파 이익에 따라 일부만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버려서는 안 된다. 일교조를 반면 교사로 삼아야 한다” 유영민기자 |
전교조는 지난 28일 창립 20돌을 맞아 기념식을 열었다. 이날 행사에서 전교조와 함께 20년의 시간을 보낸 이들에게 공로패와 감사패가 전달됐다.
김광남 재일 한국연구소 소장 역시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감사패 수상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위와 같이 말하고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전교조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묻어나는 말이라는 게 금새 느껴진다.
김 소장은 재일교포(국적은 한국)로 전교조 비합법 시절부터 지금까지 일본교원노조(JTU, 일교조)와 전교조의 가교 역할은 물론 전교조의 EI(세계교원단체총연맹) 가입에도 영향력을 미쳤으며 아시아 · 태평양지역을 비롯 교원노조의 국제연대에 큰 역할을 해 왔다. 전교조의 역사를 꿰뚫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그와 전교조의 인연이 시작된 건 1989년으로 거슬러 간다. “전교조 결성 직후 한 선생님이 일본에 있는 프로그램에 참석차 왔다가 ‘전교조 합법화를 하루 빨리 이루어야 하는데 국제적 지원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하고 물어서 당시 일정한 자리를 잡고 역할을 하고 있던 일교조에 소개해 준 것이 인연의 시작”이 됐다.
스스로를 재일교포 2.5세 말하는 그는 일본에서 조선인으로 차별을 받으며 학교를 다니던 시절 ‘윤리’교사로부터 큰 영향을 받고 그 때부터 교육운동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자신의 삶의 이정표를 제시해 준 사람이 바로 ‘선생님’이었던 것이다.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일본 국적을 취득하지 않고 ‘한국인’으로 살아가게 된 결정적 힘이 바로 그의 윤리선생님이었다.
그는 “모두가 공부만 잘하면 다 학자가 되나? 그럼 나라는 어떻게 운영 되는가?”하고 지적하면서 모두가 일등이 되기를 바라는 한국의 교육시스템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일본도 한국처럼 일등을 위한 경쟁교육 시스템이었으나 일교조가 앞장서서 차별을 없애고 인권을 존중하는 교육을 하면서 나아졌다는 말도 덧붙였다. 전교조 역시 그러한 차별을 없애고 학생들의 인권을 더욱 소중히 다루는 일에 나서달라는 주문이다.
학력 위주의 교육을 반대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진보 진영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일본에서는 명함 교환을 하면 대학 교수도 ‘○○박사’라고 거의 안 적는다. 그러나 한국에서 명함을 교환하면 틀림없이 ‘○○박사’라고 적혀있다.
또 일본 노동운동 진영에서는 대학시절 운운하는 말을 거의 안 하는데 한국에서는 모이면 대학 시절 얘기만 한다. 학력 위주의 사회 풍토가 한국이 훨씬 심하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간판을 내세우는 왜곡된 학력중심주의가 한국의 진보 진영에서도 광범위하게 퍼져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전교조와 함께 보낸 세월이 오래돼서인지 20돌을 맞는 전교조에 대한 요구 사항도 매우 구체적이고 정교했다.
“전교조가 하루 빨리 어른 조직이 되기를 바란다. 세상을 제대로 아는 조직, 소통이 잘 되는 조직이 되기를 바란다. 정파적으로 현실 문제를 인식하지 말고 교육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20년 전부터 전교조 선생님들 만나면 당부했던 것이다. 정파 이익에 따라 일부만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버려서는 안 된다. 일교조를 반면 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그가 20년지기 전교조에 바라는 간절한 외침이었다.



전교조가 하루 빨리 어른 조직이 되기를 바란다. 세상을 제대로 아는 조직, 소통이 잘 되는 조직이 되기를 바란다. 정파적으로 현실 문제를 인식하지 말고 교육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20년 전부터 전교조 선생님들 만나면 당부했던 것이다. 정파 이익에 따라 일부만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버려서는 안 된다. 일교조를 반면 교사로 삼아야 한다” 유영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