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연 대법관과 9명의 광주항쟁 수배자

[1단 기사로 본 세상] 박범계 의원 발언의 상대방은 누구

[편집자주] 주요 언론사가 단신 처리한 작은 뉴스를 곱씹어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려고 한다. 2009년 같은 문패로 연재하다 중단한 것을 이어 받는다. 꼭 ‘1단’이 아니어도 ‘단신’ 처리한 기사를 대상으로 한다.

박범계 의원이 지난 5일 국회 법사위 예산안 심사에 출석한 대법관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에게 “‘의원님, 꼭 살려주십시오’라고 말해보라”고 말했다. 일부에선 이 발언마저 쉴드치고 나섰다. 그만큼 절실한 예산인데 국회가 깎으려 드니, 의원들에게 읍소라도 해보라는 취지였단다.

그런데 지난 10일 국회 법사위에서 법원행정처는 문제의 법고을LX 예산을 받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동아일보 11월11일 14면) 법원행정처는 현재 예산으로는 제작이 어렵고 준비 과정을 살펴 내년에 올리겠다며 당장 내년에 예산 배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동아일보 11월 11일 14면

박범계 의원에게 문제의 발언을 들었던 조재연 대법관이 SNS를 달궜다. 조재연 대법관은 1980년 6월 사법고시에 수석 합격해 1993년까지 판사로 재직하면서 꽤 의미 있는 판결을 많이 남겼다. 경향신문이 1980년 6월 5일자 6면에 쓴 사시 수석합격자 조재연의 인터뷰기사에 따르면 조 대법관은 충북 제천에서 나고 자라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1974년 덕수상고를 졸업했다. 가난한 집안 사정 때문에 상고를 나와 한국은행에 들어가 배움의 길을 잊지 않고 방송통신대와 성균관대 야간부를 다니면서 고시 준비를 했다. 1979년 3월 한국은행을 그만두고 공부에 매달려 수석 합격했다. 건설일용직으로 일했던 아버지는 조 대법관이 덕수상고를 졸업하던 해에 돌아가셨다. 요즘 말로는 ‘개천용’에 해당한다.

조 대법관은 40년 전 인터뷰에서 존경하는 인물을 묻는 기자에게 늘 소신 있는 판결을 내놨던 ‘위대한 반대자’ 홀리버 웬델 홈즈 대법관을 존경한다고 했다.

판사가 된 조 대법관은 전두환 정부 때인 1985년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는 내용의 ‘민중달력’을 만들어 배포한 이들에게 검찰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하자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기각했다. 야당 의원들의 국회 발언을 모은 ‘민주정치1’이란 책을 펴냈다가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즉심에 회부된 출판사 일월서각 대표에게도 무죄를 선고했다. 그해 연말 공안검사들은 조 판사를 향해 “판사들, 영장 기각하면 영웅 되는 줄 아는 것 같다”고 불만을 털어놓을 정도였다.

조 판사는 1989년 2월 옷과 얼굴로는 식별하기 곤란한 미성년자를 손님으로 받은 성인디스코클럽 업주의 구속영장도 기각하는 등 늘 상식 위에서 판결했다. 이처럼 조 판사는 ‘소신 있는 법관이 꿈’이라던 경향신문 인터뷰 기사 제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았다.

  경향신문 1980년 6월 5일자 6면

조 대법관의 사시 수석합격 인터뷰는 경향신문 1980년 6월 5일자 6면 사이드 기사로 실렸다. 인터뷰 기사 아래엔 그해 여성 사시 합격자 3명의 인터뷰도 실렸다. 3명 중 한 명은 민주당과 국민의당에서 4선을 한 조배숙 전 의원이다.

조 대법관 인터뷰 기사 옆 6면 톱기사는 ‘광주사태(당시 언론은 이렇게 표현했다) 계엄사 추가 발표’ 전문이 실렸다. 수십 명에 달하는 수배자 얼굴과 프로필도 번호를 매겨가며 함께 실렸다. 1.장기표, 2.심재권, 3.심재철, 4.이철, 5,김부겸, 6.이해찬, 7.박계동, 8.신계륜, 9.설훈 순이다. 1~9번까지는 1번 장기표 씨를 제외한 8명 모두가 민주당 국회의원을 지냈다.

장기표 씨도 1992년 14대 총선 때 민중당을 시작으로 통합민주당, 민주국민당, 새천년민주당, 녹색사민당, 정통민주당을 거쳐 지난 4월엔 미래통합당까지 28년 동안 무려 7개 정당을 옮겨 다니며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니 정치인이나 마찬가지다. 결국 1~9번까지 수배자 모두가 정치인이 됐다. 이러니 민주화운동이 정치 진출을 위한 교두보에 불과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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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에 정통한 자

    박범계 의원님도 판사 출신이죠. 가끔 보면 말은 격분을 하는데 인상이 너무 딱딱해요. 난 그 분은 관심이 전혀 가지를 않던데

    요즘 언론 돌아가는 것을 보면 검찰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실상 사법부에서는 판사하고 한 계급이 차이가 날 정도입니다. 이러면 검찰이 동네 북 아닌 북이 되는 것도 어쩔 수 없습니다. 언론에서 판사들 비난하는 목소리 있습니까. 없지요. 검경이 고생해서 판사한테 올리면 판사가 땅땅땅 하면서 마무리를 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검경이 판결을 하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경찰과 검사는 판결에 영향을 주지만 결정하는 사람들이 아니란 말입니다. 검찰이 절대권력입니까 아닙니다. 법률에 대해서는 판사들이 절대권력입니다. 검경은 상대적입니다. 지금 검찰이 권력자들입니까. 동네 북입니까. 아무튼 지금은 펜대 세상입니다. 사법부 출신들이 입법부까지 대거 진출하고 있으니.

    예전에 겸직을 못할 때가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그런데 지금 불법 저지르면서 이것 저것 다하는 사람들 많은가 보던데

  • 소설에 정통한 자

    저 미련한 자스기. 일마, 매일노동뉴스, 참세상 이런 곳은 언론 아니가. 운동단체로 보이나. 우파나 좌파 딱 한곳에 넣기 어려운 언론, 세상 돌아가는 것을 싣는 언론이란 말이다. 언론은 요즘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구나 하고 보면 족하는 것이란 말이여. 언론에 그 이상을 바라면 바보나 똥이지 자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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