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을 영구 식민지로 만드는 ‘아브라함 협정’의 이면

[INTERNATIONAL3]

“샬롬 알라이꿈”

지난 8월 13일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연합국(UAE)의 국교 정상화가 발표된 후, 두바이 사람들이 이렇게 인사를 나눈다고 한 기자가 전했다. 아랍어로 ‘당신에게 평화를’이라는 뜻을 가진 인사말 ‘쌀람 알라이꿈’에서, 평화를 의미하는 ‘쌀람’을 같은 뜻의 히브리어 ‘샬롬’으로 대체한 것이다. 장난스러운 인사말이라곤 하지만 ‘정상화’에 대한 낙관이 느껴진다.

UAE와 이스라엘이 평화 협정을 맺었다. 아랍국가가 이스라엘과 국교를 정상화한 것은 1979년 이집트, 1994년 요르단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하지만 아랍 세계로부터 이전과 같은 반발은 없었다. 뒤이어 바레인도 가세했다. 9월 15일 워싱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중재 하에 4개국은 ‘아브라함 협정’을 공식 체결했다. 아브라함 협정은 4개국 대표가 서명한 총론격 문서 한 장과, 이스라엘-UAE 간 7장의 합의문(부속문서 3장 포함), 이스라엘-바레인 간 합의문 1장으로 이뤄져 있다.

[출처: https://images.axios.com/]

트럼프를 비롯해 모두가 이것이 “역사적 평화협정”이라 말한다. 팔레스타인, 나아가 아랍 민중의 반식민주의 투쟁사에 변곡점이 될 사건임은 분명하다. 역사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순간인 것이다. 물론 예상된 일이었다. ‘반-이란 전선’ 구축을 명분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왕국을 비롯한 아랍국가들이 지난 수년 간 노골적으로 이스라엘과 관계를 조금씩 정상화해 왔기 때문이다. 아랍국가의 지도자들은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하기 전 어느 수위면 자국민이 들고일어나지 않을까 조금씩 간을 봤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인도 뉴델리를 오가는 이스라엘의 민항기에 사우디 상공 경유를 허가하거나 바레인이 이스라엘로부터 코로나19 대응 지원을 받는 등 그 예는 셀 수 없이 많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사우디나 UAE 왕정이 자국의 반체제 인사들을 탄압하기 위해 이스라엘 기업의 해킹 기술을 쓴다는 것도 폭로됐다. 어느 정도 반발은 있었지만, 권력을 위협할 수준은 아니었다.

때문에 지금일 줄 몰랐을 뿐 누구나 예상했던 일이다. 하지만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과 국교 ‘정상화’를 공식화한 것은 이전의 오랜 입장을 명백히 뒤집은 것이다. 아랍 국가들은 표면적이나마 팔레스타인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팔레스타인이 독립하기 전까지 이스라엘을 보이콧한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군사점령과 식민화는 이제 영구적인 기정사실임이 공식화됐다. 22개 아랍 국가로 이뤄진 ‘아랍 연맹’은 애초 영국 제국주의의 하수인으로 출범했지만 어쨌든 팔레스타인이라는 명분을 자신들의 주요 대의로 삼았다. UAE는 이번 평화 협정을 통해 이스라엘의 서안지구 영토 병합을 막겠다며 여전히 그 대의에 봉사하는 척 팔레스타인을 관계 정상화의 구실로 삼았다. 하지만 협정문에는 영토 병합 철회에 대한 언급이 없을뿐더러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계획을 철회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아랍 연맹은 회원국의 일탈행위를 제재하는 아무런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서안지구 영토병합 계획 철회?

올해 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영토의 최대 30%를 이스라엘로 강제 병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을 때 논평자들은 염려했다. 이스라엘이 막 나가는 만큼 국제사회의 요구도 더 후퇴할 거라고. 우려는 사실이 됐다. 지난 70여 년간 국제사회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라는 두 개의 국가 건립을 지지하며, 이스라엘에 군사점령지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철수하라고 요구해왔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7월 1일부터 서안지구 영토를 병합하겠다고 선언한 후엔 ‘제발 팔레스타인 영토만은 병합하지 말아 달라’라며 후퇴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UAE가 이스라엘에 군사점령 종식이 아닌 영토병합 철회를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8월 13일 양국 국교 정상화 발표일에 이스라엘이 영토병합을 ‘중단’한다는 내용이 있었지만, 불과 몇 시간 후, 네타냐후 총리는 이 협정이 트럼프 대통령의 ‘세기의 딜’을 무효로 하는 것이 아니라며 서안지구 영토병합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4반세기 만에, 이집트·요르단 때와 달리 이스라엘의 양보와 후퇴에 기반하지 않은 평화를 만들어냈다”고 자평했다.

국제법을 정면 위반하는 이스라엘의 영토병합 계획이 이스라엘의 입지를 오히려 공고화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자찬하듯 영토병합을 철회할 필요 없이, 예루살렘을 동서로 분할할 필요도 없이, 이스라엘은 자국에 가장 유리한 ‘평화’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4개 국가의 셈법

아울러 뇌물, 사기, 배임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으며, 코로나19에 대한 대응 부족으로 인해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는 네타냐후 총리 개인에게 이번 협상은 또 하나의 돌파구가 됐다.

코로나로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은 다른 위정자들도 마찬가지다. 이번 협상은 모두에게 주요 치적으로 남아 정치적 돌파구가 될 것이다. 특히 미국의 정치 환경에서 이스라엘의 이익에 부합하는 행위는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에 반드시 도움이 된다. 트럼프는 11월에 있을 미 대선의 격전지로 꼽히는 위스콘신 유세장에서, 8월 17일 그러니까 이스라엘-UAE 국교 정상화 발표 나흘 뒤 이렇게 연설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옮겼습니다. 그건 복음주의자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복음주의자들이 유대인들보다도 더 기뻐했다니 굉장한 일이죠. 맞아요, 엄청난 일입니다.”

2018년 5월, 예루살렘으로 미국의 주-이스라엘 대사관을 이전한 이유가 미국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의 지지를 받기 위한 것이었음을 직접 자신의 입으로 밝힌 것이다. 이번 협상 역시 재선을 위한 포석 중 하나였다.

UAE는 어떤가? UAE는 미국에 무려 8년간 F-35 스텔스 전투기 판매 의사를 타진해 왔다. 한국도 8조 원을 들여 올해 F-35 40대를 도입할 예정이지만, 미국은 사우디를 비롯한 아랍의 동맹국들에는 F-35를 판매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제공권이 인접국보다 압도적으로 우세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미 의회에서 초당적으로 합의된 사안이지만 이번 협상을 계기로 UAE는 더 적극적으로 구입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미국 의원들은 이번 협상안에 해당 내용이 포함되지 않는다며 반대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파는 데 아무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UAE에는 이번 협정이 F-35를 비롯해 MQ-9 리퍼 드론, 보잉 EA-18G 그라울러 등 미국의 첨단 무기를 구입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바레인 왕정은 2011년 아랍혁명 초기에 권좌에서 끌어내려질 위기에 처하자 사우디와 UAE에 군대 파견을 요청해 비무장 시위대를 사살하며 위기를 벗어났었다. 바레인은 사우디 없이는 스스로 통제할 능력이 없는 국가다. 사우디에 충성스런 바레인 왕정은 사우디 승인 하에 협정을 맺었을 것이고, 이후 사우디가 이스라엘과의 국교 정상화를 맺는 데 디딤돌이 될 것이다. 물론 사우디가 아랍 전역에서 갖는 위상 때문에 당장은 이스라엘과 협정을 체결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바레인은 미 해군 제5함대의 사령부가 위치한 곳이기도 하다.

이전에 이스라엘이 이집트, 요르단과 맺은 협정은 교전 관계의 종식이 주요의제였고, 교역과 상호 투자, 관광 등은 제한적이었다. 딱히 이스라엘과 교전 관계에 있었던 것도 아닌 걸프 왕정들은 일정한 경제적 이익을 누리고 나아가 내부의 정치적 불만을 다스리는 데 협정을 활용할 것이다. ‘반-이란 전선’ 구축이 명분인 만큼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은 공식적으로 첩보를 공유하고 미국을 중심으로 해서 군사 협력 관계를 강화해 나갈 것이다.

[출처: Bahraini artist Sarah Qaid]

아브라함의 재소환

‘아브라함 협정’이 이름을 따온 아브라함은 유대인과 아랍인 공동의 선조로 여겨진다. 그래서 유일신을 섬기는 세 개 종교-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공통 뿌리로 불린다. 아브라함의 아랍어 발음은 이브라힘이다.

이번 협정의 이름은 기독교(미국)-유대교(이스라엘)-이슬람교(UAE와 바레인) 신자들이 모두 “아브라함의 아이들”이라며 화합을 상징하는 의미로 붙여졌다.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아랍국가가 소위 평화협정을 맺을 때마다 아브라함을 소환하더니 이번엔 아예 협정 명칭으로까지 갖다 쓴 것이다. 이집트 때는 지미 카터 미 대통령이, 오슬로 협정 때는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이, 요르단 때 요르단 왕이 아브라함을 들먹이며 화합을 강조했다. 엉뚱하게 협정에 종교적 외피를 둘러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의 본질이 시온주의 제국주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종교적 충돌인 것처럼 호도하는 것이다. 세 종교 간 공존 어쩌고 하는 내용은 아예 이스라엘-UAE 협정문안에도 들어갔다.

컬럼비아대학교 교수 조셉 마사드는 아브라함을 소환하는 이들의 목적을 이렇게 지적한다.

“아브라함을 들먹이는 목적은 팔레스타인을 정복하고 그 땅을 유대인의 정착형 식민지(settler-colony)로 만들고자 했던 유럽의 유대 식민주의 운동 즉 시온주의가, 유럽의 식민지 탐사가 아니라 유대인의 종교적 탐사인 척 가장하기 위한 것이다. (…) 여기서 우리는, 유럽의 유대인이 유럽인이 아니라 고대 팔레스타인 땅에 살았던 이스라엘인의 직계 후손이며, 때문에 유럽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땅을 식민화하는 것은 ‘수복’에 다름 아니고, 또 팔레스타인 원주민들이야말로 사실상 진짜 식민주의자였다는, 프로테스탄트적이고 반유대주의적인 사상을 차용한 시온주의자들의 프로파간다에 새로울 게 없음을 상기해야 한다.”

그는 또 최소 지난 20년간 종교 간 ‘대화’, ‘관용’을 후원해 온 아랍국가들이 시온주의의 식민주의 역사를 ‘종교 분쟁’으로 둔갑시키는 전략의 필수 구성요소로 기능해 왔다고 지적한다.

아브라함의 땅에서 실제로 볼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이 벌이는 테러다. 1994년 아브라함의 유해를 모신 사원에서 극우 테러리스트가 학살을 벌인 사건이 아니더라도 그 사례는 다양하다. 이브라힘 사원이 위치한 알칼릴(헤브론)은 불법 유대인 정착민들이 팔레스타인 민중들에게 일상적으로 테러를 가하는 강경 극우파들의 집결지다. 이 강경 극우파들이 이스라엘 정치를 좌우한 지 이미 오래다.

다음은 누구인가

이 글이 나갈 쯤엔 얼마나 많은 아랍국가가 이스라엘과 국교 정상화 선언에 합류했을까? 트럼프는 5∼6개의 아랍국가가 UAE와 바레인의 전철을 따를 것이라 했고, 오만, 수단, 모로코가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오만은 오랫동안 이스라엘과 아랍 세계의 중재자 역할을 자임했고, 수단은 노골적으로 친이스라엘 행보를 보여 왔으며, 모로코는 이스라엘과 첩보를 공유한다는 혐의를 받아왔다. 이들뿐 아니라 많은 친미 성향 아랍국가가 반-이란 전선에 합류한다며 이스라엘과 국교를 정상화할 것이다. 제라드 쿠슈너의 바람대로 사우디가 이 대열에 합류할 때 이스라엘의 완전한 정상 국가화, 즉 팔레스타인 영구점령의 기정사실화가 마무리될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끝은 아닐 것이다. 이스라엘과 국교 정상화가 발표된 뒤 바레인 민중은 “팔레스타인은 나의 문제”라며 당국의 결정이 바레인 민중의 의사에 반한다고 외치고 있다. 오랫동안 팔레스타인과 연대해 온 수단 시민사회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아랍의 위정자들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국내에서 민심을 달래는 데에 이용해 왔다. 그러면서 민주주의와 경제 개혁, 때로는 혁명적 전복을 요구하는 민중을 무참하게 탄압했다. 팔레스타인 저항운동은 이미 오래전부터 점령뿐 아니라 부패한 팔레스타인 위정자들에 저항할 필요성을 역설해 왔다. 다른 아랍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역사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지금 이 순간, 다음 페이지를 새로 써 내려가는 것은 바로 아랍 민중 자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