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전쟁이 갖는 정치경제학적 의미

‘테러리즘과의 전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오사마 빈 라덴에 초점이 모아지는가 싶더니, 슬그머니 지상군을 투입해 ‘텔레반 정부에 대한 전복’을 꾀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안트락스’(탄저병)에 대한 공포가 만연하고 있다. 전염성과 치사율이 적어 생화학 무기로는 적합치 않다는 이 ‘백색가루’의 공포가 확산되는 것을 보면 뭔가 상당히 의도된 정치적 계산이 보인다. 미국이 그 정치적, 경제적 위기 상황마다 단골 메뉴로 삼았던 ‘이라크’ 와 ‘북한’을 겨냥한 장기 포석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런 의혹이 자연스레 드는 것은 이번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전쟁이 선전만큼 순수하지 않다는 분석 때문이다. 물론 이번 전쟁은 ‘테러리즘’에 대한 경종을 울리기 위한 것 이라는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전쟁이 정치적 타산의 산물’임을 생각할 때,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이 전쟁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미국과 영국에게 전쟁이 갖는 의미
우선 이 전쟁은 ‘반미와 반신자유주의에 대한 투쟁을 고립시키고 미국의 총체적인 세계지배를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인 전쟁’이라고 볼 수 있다. 얼마 전까지도 부시 행정부는 ‘교토의정서’로 부터의 탈퇴와 ‘미사일 방어구상 추진’ 그리고 ‘유엔 인종차별대회로 부터의 철수’ 등으로 국제적인 비난을 받아 오고 있었다. 오죽했으면 ‘유엔인권 이사회’의 이사국직 유지에 실패하게 되었을까? 하지만 ‘테러의 발생’과 ‘전쟁의 시작’으로 부시는 무능하고 독선적인 외교정책에 대한 비난을 잠재우고 오히려 ‘내 편 아니면 적’이라는 ‘부시독트린’으로 ‘국제적인 지원’을 강요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되었다.

또 하나의 시각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정복을 통해 미국은 ‘경제적인 실리’를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풍부하게 매장된 석유와 천연가스를 아프가니스탄을 거쳐 파키스탄이나 아라비안 해안으로 운송하는 ‘파이프라인 건설 프로젝트’를 독점하고자 하는 것은 미 행정부의 오랜 ‘다양하고 안정된 석유 보급로 확보’ 전략의 하나이다. 이를 위해 미국의 정유회사 ‘유노칼(Unocal)’은 텔레반 정부와 비밀협상을 전개해 왔는데, 중앙아시아의 투르크메니스탄으로부터 아프가니스탄을 거쳐 아라비안 해의 파키스탄 지역 항구까지 ‘석유와 천연가스 운반용 대형 관’을 건설하겠다는 이 제안은 미국만이 아니라 파티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정부 모두 환영할 만한 장기 프로젝트 였다. 미 정부의 지원을 받았던 이 계획안은 1998년 12월 케냐와 탄자니아의 미 대사관에 대한 테러공격이 없었다면 계속 추진 되었을 것이다 . 따라서 아프가니스탄에 친미정권을 수립하게 되면 이 계획안은 급물살을 타게 될 것이다. 이라크에 대한 공격과 지속적인 제제 조치나 ‘코소보’에 대한 공습과 세르비아에 대한 고립정책 역시, 실제로는 걸프지역과 카스피해 지역의 석유를 싼 가격에 안정되게 확보하기 위한 것이지 않았던가?

한 편 영국의 토니블레어 역시 국내적으로 당면하고 있었던 ‘지하철 등의 공기업에 대한 사기업화 문제’, ‘국립의료 제도 문제’ 그리고 ‘교육 문제’ 등 굵직한 현안들에 대한 정책이 국민의 지지를 받는데 실패한 상황이었다. 더구나 ‘유로화 도입’ 문제로 의견이 분분한 상황에서 미국과의 관계 마져 소원해지게 되면 자칫 ‘유럽’과 ‘미국’ 사이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될 상황이기도 했다. 그의 정치참모 ‘조 무어’가 9-11 테러 사건을 접하자 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이메일을 동료들에게 보낸 것은 이런 상황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 그녀의 메일엔 이런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오늘이 바로 그 동안 끙끙 앓던 골치 아픈 문제들을 풀어헤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런 시각으로 국제문제를 들여 다 보면, 테러문제에 대한 대응은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습과 빈 라덴에 대한 제거는 결국 일시적인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 중류층 이상의 안정된 가정에서 자라나고 대학 교육까지 받은 총망 받는 젊은이들이 자발적으로 ‘자살테러’에 나서고 그를 배출 한 가정의 가족들이 오히려 이를 자랑스러워 하는 지극히 ‘비정상적인’ 현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테러리즘과의 전쟁은 이슬람에 대한 뿌리깊은 적대의식과 제국주의 정책의 수정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여전히 남는 의문들
오사마 빈 라덴을 악마의 화신으로 묘사하고 반 인류적 테러행위자로 규정하려면 먼저 그의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가 최근 팩스와 녹화 필름으로 보낸 메시지 그리고 그보다 몇 년 전 부터 해왔던 그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이렇다:
l 미국은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의 편에 섬으로서 팔레스타인 문제로 대변되는 중동 문제를 더욱 더 어렵게 만든 장본인 이다”;
l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이슬람 성지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기지를 당장 철수 하라”;
l "이라크에 가하고 있는 경제 제제 등으로 수 십만 명의 무고한 어린이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으니 당장 그 봉쇄조치를 해체하라”.


그런데 이런 주장을 하는 그를 두고 ‘악마’라 규정했으니, 음으로 양으로 그의 주장에 동조하는 많은 세계 인민들, 대다수의 무슬림 지지자들은 ‘악마의 자식들’로 단죄 당할 판이다. 오사마 빈 라덴의 무혐의 주장이나 텔레반 정부의 증거제시 요구, 세계 평화 애호 민중들의 ‘전쟁반대’ 요구가 일고의 가치없이 묵살되는 것을 보고, 중세시기 이성과 합리적 판단을 마비 시켰던 ‘마녀사냥’을 떠올리는 것은 지나친 상상일까?

오사마 빈 라덴이 진짜 교살자라면 반미항전을 평소 이슬람의 명예를 지키는 ‘성전’ 이라고 말해오던 그가 왜 신의 이름을 걸고 사건과의 관련성을 극구 부인하고 나서는 것일까? 오사마 빈 라덴이 주범이라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으면 그를 내 줄 수 있다는 텔레반 정부의 항변은 일고의 가치가 없는 것일까? 오사마 빈 라덴이 주범이라면 그를 국제 재판에 회부해 그의 만행과 그의 조직의 범죄성을 인류 앞에 고발하는 것이 보다 현명한 처사가 아닐까? 평소 날아오는 미사일도 격추해 낼 수 있는 기술이 있다고 대공 방어망의 우수성을 선전하던 미국은 왜 수도 워싱턴과 국제 금융지 뉴욕 상공을 버젓이 선회하며 타격 목표를 조준하던 점보 여객기가, 목표물 그것도 전략적으로 중요한 건물인 국제무역센타와 펜타곤 건물을 차례 차례 부딪힐 동안 보고만 있었을까? 비행기가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즉각 파악하고 발진해 민간 비행기를 바짝 쫓고 있었다던 미 전투기 들은 왜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을까? 미국은 자국에 대한 외부의 공격과 테러 가능성에 대해 늘 경계해 오고 있었던 터라 매년 중동지방을 중심으로 한 테러그룹의 소재, 활동, 자금 흐름 그리고 그에 대한 대응까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보고서 를 작성할 수 있는 정보력을 오래 전부터 확보하고 있었다는 데, 과연 9-11 테러사건에 대해 사전에 아무런 조짐을 파악하지 못했었을까?

이런 수 많은 의문과 질문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 가운데 1백만달러를 호가하는 ‘토마호크’ 미사일 보다 값어치 있는 건물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는 아프가니스탄의 폐허의 도시들을 미-영 연합군의 폭격기들이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물론 미-영 연합군은 이 헐벗은 지역에 폭격기들만 보낸 것은 아니다. 20여년간의 내전과 가뭄 그리고 강제퇴거 등으로 속구무책으로 죽음의 골짜기로 몰리고 있는 수백만 민중들의 처지를 가슴 아파한다며 구호물자를 실은 비행기들도 함께 보낸 것이다. 한 손엔 빵을 다른 손엔 칼자루를 쥐고 ‘우린 너희들을 독재와 압제 그리고 빈곤으로 부 터 해방시켜 주려 왔다’고 선전하고 있다. 빵을 먹으라는 것인지 빵을 먹고 체하라는 것인지….

해방자 논리를 경계해야
그런데 이 ‘해방자’의 논리는 웬지 무척 꺼름직하다. 한 손엔 성경을 다른 손엔 총포를 들이대고 식민지사냥에 나섰던 제국주의자들이 식민지 민중들을 향해 ‘우린 너희를 무지와 몽매로 부터 개화시키고 계몽시키려 왔다’ 하지 않았던가? 일본 군국주의 자들이 ‘우리 일본의 도움으로 동아시아 제 나라들은 봉건주의 굴레를 벗어나 근대적 경제발전의 토대를 쌓을 수 있었다’고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 하는 논리를 펼치고 있듯이 말이다.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습을 두고 행해진 한 여론조사의 결과는 이런 제국주의 논리가 선진자본주의 국가 일반인들 사이에 뿌리깊게 내재돼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영국의 10월 12일짜 ‘가디언’지에 따르면 영국국민의 74% 이상이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습을 지지하고 있으며, 토니블레어 수상이 이 위기국면을 잘 대처하고 있다며 80% 이상이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이런 여론에 힘입어 토니블레어는 ‘공습을 중단하지 않으면 수백만 민중이 한 달 이내에 추위와 기아와 질병으로 죽어갈 수 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라는’ 국제 구호 단체들의 애타는 호소를 ‘공습과 군사적 행동만이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으로 부터 영국민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있다. 테러리스트들로 부터 직접적인 공격을 당하지 않았던 영국에서는 ‘사전 예방조치’ 로써 한 나라의 주권을 마음대로 유린하고 한 나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마음대로 우롱하고 있는 토니블레어가 그 인기 절정에 있고, ‘미국의 중동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고하는 길만이 테러리즘의 근원을 제거할 수 있는 길이다’는 사우디 왕자의 권고에 격분하며 그가 내놓은 위로금 천만달러를 내던져 버린 뉴욕시장 줄리아니가 미국에서는 영웅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앵글로 색슨족의 우월 주의적 정서는 ‘내 편 아니면 적’이라는 소위 말하는 ‘부시독트린’으로 전 세계 국가들을 향해 ‘충성서약’을 요구하고 있는 미국의 대외정책에 그대로 관철되고 있는 것이다.

테러를 보는 또 하나의 시각
무고한 자국민이 자살공격에 희생되었으니 그에 대한 대응을 강구하는 것을 무모한 짓이라 나무랄 수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무고한 시민을 죽인 테러리스트를 잡기 위해 더 많은 무고한 민중을 죽이겠다는 발상은 그들의 제국주의적 본성엔 어울리는 대응 일지는 몰라도 ‘항구적인, 지속 가능한 평화’를 바라는 전 세계 평화애호 민중들이 바라는 대응 양식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테러리즘과의 전쟁’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테러행위엔 뿌리깊은 역사적 배경과 정치경제적 동기들이 분명 있다. ‘식민지 잔재’, ‘군사적 강점’, ‘친서방독재정권’,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불평등’ 그리고 ‘종교적 갈등과 인종적 차별’문제 등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들 뿐만 아니라, 이런 문제들의 해결을 바라는 민중들의 평화적 요구를 묵살해 온 ‘반민중적 정권’들과 ‘외세의 개입’이 극단적인 무력투쟁을 낳아 온 것이다.

프로이센의 군사전략가 카알 폰 클라우제비츠가 전쟁을 ‘물리력으로 내 의지를 적에게 강요하는 한 표현이라 ’ 고 정의 했듯이, ‘테러’ 또한 정치적 의지를 표현하는 한 방법으로 받아 들이고 대처해야 하는 것이다. 역사가 증명하듯 한쪽에서는 ‘테러범’으로 낙인 찍힌 자들이 다른 쪽에서는 ‘해방전사’, ‘혁명전사’로 영웅적 대접을 받고 있는 사실은 이를 잘 대변해주고 있다. 예를 들면, 일제 식민지 시절 ‘안중근 의사’나 ‘윤봉길 의사’, 그리고 ‘김구 선생’ 등 우리의 항일전사들 대부분이 일제 당국에 의해 ‘테러범’으로 낙인 찍히지 않았었던가? 쿠바혁명의 영웅 ‘체 게바라’의 경우는 또 어떠한가? 서방의 시각으로 보면 그는 그야말로 남미 여러 나라들과 스페인 등을 오가며 국제혁명을 선동했던 ‘국제테러범의 원조’가 아니었던가?

작전명 ‘항구적 평화’와 빈 라덴
지난 10월 7일 밤 개시된 미-영 연합군의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격은 항공모함과 잠수함, 공군기지 등에서 발사, 발진한 미사일과 전투기, 전폭기 들이 입체적으로 동원된 그야말로 최첨단 초정밀 군사작전이었다. B1-B, B2 , B52 등의 전략 핵 전폭기 15대와 F/A-18, F-14 등의 전투기 25대, 그리고 미항공모함 칼빈슨호와 엔터프라이즈호, 영국 항공모함 일러스트리어스호와 HMS 트라이엄프, HMS 트라팔가 핵 잠수함등에서 발사된 개당 1백만 달러짜리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 등등이 중심이 된 공격은 인공위성과 공중 조기 경보통제기(AWACS), 정찰기 EA-6B, 조기 경보기E2-C, 그리고 공중 급유기KC-135등의 지원하에 예정된 목표물을 하나하나 부셔나갔다. 여기에 아프가니스탄의 산악지형과 비밀터널 등을 겨냥한 특수무기들; 공중에서 폭발한 뒤 주변 공기를 흡수해 반경 1km 이내를 질식상태로 만드는 공기연료폭탄(FAE) 과 지하벙커 파괴용 모듈러 항공폭탄(GBU-28) 등이 동원될 예정이다. 게다가 걸프전이나 코소보 전쟁 때와는 다르게 식량을 공수하고 탈레반 정부에 반기를 들라는 선전 전단을 살포하는 등 그야말로 물리력과 심리전을 결합한 이상적인 총 공세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압도적인 물량공세도 공습 2시간 만에 방영된 빈 라덴의 인터뷰로 인해 그만 맥이 빠지고 말았다. 카타르에 기반을 두고 있는 이슬람권의 세계 방송 알 자지라 방송에 의해 독점 방영된 인터뷰에서 빈 라덴은 이교도들의 십자군 전쟁에 맞서 이슬람을 지켜내자는 ‘성전’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빈 라덴은 미-영의 공습에 맞서 총 한방 쏘지 않았지만 그가 설파하는 논리는 메가톤급 핵폭탄과 같은 위력으로 미-영 연합군을 위협하고 있다. 그가 언급한 ‘팔레스타인 문제’와 ‘이라크 민중의 참담한 실상’은 적어도 아랍 민중들과 이슬람 진영 민중들에게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궐기하자’ 메시지 처럼 그들의 심중을 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남다르게 정치적 각성이 뛰어나고 조국과 민족에 대한 애정이 드높았던 젊은 엘리트들이 제일 먼저 반제반식민지 투쟁에 나섰던 것과 마찬 가지로 아랍민중 속의 선각자들이 바로 반미 반이스라엘 무장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빈 라덴의 투쟁방법이 정당한 가 아닌가 하는 논쟁은 2차적인 문제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왜 빈 라덴과 같은 소위 말하는 ‘테러리스트’들이 민중의 바다를 헤치며 그들의 보호와 지지를 받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미-영의 대외정책과 중동문제
오늘날 중동문제의 핵심인 팔레스타인 문제는 20세기초 영국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볼 수도 있다.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5-16년, 이집트를 관리하던 총독격인 헨리 맥마흔경은 아랍계 지도자들과 만나 ‘오토만제국’에 대항해 싸우면 그에 상응한 보답을 하겠다는 비밀회담을 가졌다.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아랍진영의 독립을 그 댓가로 지불하겠다는 서약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영국정부가 다른 세력들과 또 다른 비밀협약들을 체결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1917년 영국 외무장관 아처 발포어는 ‘영국정부는 유대인의 국가를 팔레스타인 지방에 건설하는 것을 지원하겠다’는 선언을 하고 이뿐만 아니라 프랑스 정부와도 비밀협약을 통해 ‘오토만 제국’을 분할해서 나누어 통치 하기로 한 것이다 . 전쟁이 끝난 후 이 비밀협약에 따라 영국은 현재의 이스라엘 지역, 팔레스타인 지역 그리고 요르단 지방과 이라크 지역을 프랑스는 시리아와 레바논 지역을 각각 나누어 차지했다. 자연히 ‘팔레스타인 지방’을 비롯한 중동지방에서 자치 독립국가 건설을 기대했던 아랍진영은 영국의 ‘기만행위’에 분노하고 대항해 싸우기 시작하는 데, 이에 맞서 영국과 미국이 ‘이스라엘’국가를 건설하고 전폭적인 지지를 하며 이 이스라엘을 중동지방을 지배하는 전초기지로 이용해 왔다는 데 오늘날 중동 문제의 원인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영 연합군이 펼치고 있는 ‘군사적 대응으로 테러리스트들의 기반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대 테러리스트 정책’이라는 논리는 한마디로 설득력이 없다. 테러리스트의 기반이 ‘텔레반 정부’나 ‘빈 라덴’ 같은 소수의 극단주의자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화롭고 정의로운 삶을 바라는 민중의 염원이 소위 말하는 테러리스트들의 기반이다. 그렇기에 이 기반은 ‘외세의 간섭과 독재와 불평등이 존재하는 한 마르지 않을 뿌리깊은 샘’과 같은 것이다.

대다수의 무슬림 사회가 테러리즘을 반대하고 종교적 배타주의와 여성에 대한 성차별을 반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부정적인 선입관들이 서방세계에 이슬람의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다. 더구나 이슬람 진영의 과학과 앞선 물질문명이 유럽세계를 중세의 암흑기로 부터 탈출할 수 있게 도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운동에 대한 서방 세계의 보편적 여론은 대단히 적대적인 것이 현실이다. 13세기 십자군 전쟁으로 부터 19세기 식민지 수탈을 거쳐 이라크에 대한 폭격과 경제제제 등을 통해 서방 진영이 이슬람 진영에 보여왔던 정책은 ‘대화’나 ‘공존공영’을 위한 것 이었다기 보다는 보다는 차라리 ‘정복전쟁’ 그 자체 였다고 표현해야 옳지 않을까? 한편으로는 이란, 수단, 레바논 그리고 사우디 아라비아 등에 친서방 독재 정권을 세우고, 다른 편으로는 오사마 빈 라덴과 텔레반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등과 같은 이슬람 과격주의 운동을 미국의 중앙정보국(CIA)이 노골적으로 지원해 왔다는 사실은, 결국 미국 등 서방권은 자국의 정치경제적 이익이 보장되는 한 중동의 평화나 안녕, 민주화나 인권신장 등의 근본문제는 관심이 없다는 이중적인 대외정책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제국주의 정책과 이중 잣대를 경게해야
문제는 치유해야 할 상처가 있다면 덮어 놓고 상처를 꿰맬 것이 아니라 두고두고 고통의 원인이 되는 ‘고름’을 짜내야 한다는 것이다. 중동지방 뿐만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남미 등 대부분의 제 3세계 나라들이 공통으로 겼고 있는 기아, 빈곤, 저개발, 환경 오염, 독재 정치, 부정부패, 부의 불평등한 분배등 분쟁과 갈등의 원인이 되는 문제 들을 단순히 해당국들의 무능력 탓으로만 돌리고 외면한 다면 해결책은 나올 수 없다. 제2의, 제3의 빈 라덴이 그 속에서 지속적으로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테러사건이 있기 바로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열렸던 ‘유엔 인종차별 철폐 대회’에서 주장됐던 ‘노예 무역과 식민지 지배 사과와 배상’ 요구와 이스라엘의 ‘시오니즘’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강권정치를 정당화해 온 대표적인 ‘인종차별’ 정책 이라는 아랍 진영의 주장처럼, <노예사냥>과 <식민지 개척> 그리고 <신자유주의 정책> 등으로 제3세계를 구조적으로 조직적으로 수탈해 온 북부 선진 자본주의 진영 역시 ‘테러리즘’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이슬람 과격주의는 경제적 불평등과 군사적 강점 그리고 독재정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주어진 역사적 사실은 미국과 영국의 대중동 정책(물질주의, 군사우월주의 그리고 인종차별주의 등)이 이러한 불의를 불러오고 결과적으로 이슬람 운동 진영의 과격화를 불러 일으켜 왔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서방진영에겐 테러주의자들이고 테러 조직일 수 있지만, 서방의 제국주의적 압제에 목숨을 걸고 맞서 싸우는 진정한 해방 전사들로 추앙 받을 수 있는 정서가 중동 지방엔 있음을 함께 보아야 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하면 ‘정의의 행동’이고 남이 하면 ‘악마의 테러’라는 이중잣대 논리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이스라엘이 탱크와 미사일을 동원해 유엔이 인정한 팔레스타인 지역을 강점하는 것은 눈감아 주고 그에 맞서 팔레스타인이 자살테러로 대응하는 것은 용서 못할 잔학행위로 비난 하고 있다. 전 유고 연방의 종주국인 세르비아가 자국의 한 영토인 ‘코소보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던 알바니아계에 의한 분리운동에 대해 가한 잔학행위를 규탄하며 소위 말하는 ‘인도주의적 전쟁’을 위해 유엔안보리 이사회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군사행동에 나섰던 나토는, 자국 내 거주하고 있는 ‘쿠르드족’을 차별하며 수만명의 목숨까지 해치고 있는 ‘터키정부’에 대해선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 칠레의 민주정권 ‘아옌데’ 정권을 쿠테타로 전복시키고 독재자 ‘피노체트’를 세우는가 하면, ‘통킹만 미 함정 폭파 사건’을 조작, 북베트남과의 전면전을 유도한 것도 미 정보기관의 작품이였다. 해방정국의 그 역사적 분기점에서 미군정 당국은 안두희를 사주 ‘김구선생’을 암살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의 독재 정권의 뒤에는 항상 미국의 지원이 있어왔고, 급기야 1980년 ‘광주민주항쟁’을 공산당의 조정에 의한 폭도들의 난동이라 규정하며 군대를 동원 무고한 시민을 학살하던 그 장소 그 군인들 뒤에도 미국의 후원이 있었다.

이뿐 만이 아니다. 미국과 영국은 이번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격을 위해 ‘더러운 흥정’을 주변 국가들과 버젓이 벌이고 있지 않은가? 군사 쿠테타로 집권한 ‘파키스탄 정부’에 대해선 경제 제재를 해제 함은 물론 상당한 금액의 경제 원조까지 덤으로 주고 있다. 러시아에겐 ‘체첸 반군에 대한 지원’ 중단을 약속하고 또 중국과는 ‘티베트 문제’를 거론하지 않기로 하는 등 말이다. 이 흥정을 국제적인 지원으로 착각하면 곤란하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 모두가 ‘이슬람근본주의 운동’에 대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거나 적어도 이슬람 분리주의 운동 문제를 내부적으로 겪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쟁은 지고 폐해는 남아
전쟁이 종료되고 아프가니스탄에 또 하나의 위성국가를 세우고 그곳에 이슬람 성지 ‘메카’ 근처에 두고 있는 미군기지를 옮겨 놓게 되면 지역의 안정을 도모할 수 있을까? 살인 면허증을 받은 CIA는 오사마 빈 라덴을 제거하면 그 면허증을 순수히 반납할 것인가? 신분증 제도를 도입하고 테러용의자로 의심이 가는 대상에 대해선 구금, 도청, 계좌추적 그리고 압수수색 등을 법원에 대한 영장 청구 없이도 가능케 한다면, 그것이 아랍민족과 이슬람 신도들에 대한 차별대우의 도구로 악용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는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부시와 토니블레어는 이번 전쟁이 ‘이슬람 과의 전쟁이 아니다’ 라며 강변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들의 다짐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필리핀, 인도, 중동, 중앙 아시아 등의 전통적인 이슬람 진영에서 뿐만 아니라 아시아 여러 나라들과 미국, 영국 등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반대’ 투쟁은 이슬람에 대한 차별을 중지하고 강압적인 제국주의 정책을 거두라는 충고를 담고 있다. 특히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그리고 요르단의 상대적 친미정권이 전쟁의 양상에 따라 그 존재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경고는 미-영 연합군이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결국 애초에 내세웠던 테러리즘과의 전쟁은 반미 반제국주의 투쟁의 확산만을 불러 일으킨 셈이다.

한편 영국 정가에서는, 1950년대에 미국의 조세프 메카시 상원의원이 주도한 ‘반공산당 조사위원회’가 처럼, 노동당 원내 총무가 같은 당 의원에게 ‘전쟁반대’를 주장하는 것은 1938년 히틀러 정권이 유대인에 대해 벌였던 잔학행위에 대해 침묵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폭언을 퍼붓으며, 당장 언론과의 접촉을 중단하지 않으면 내 편이 아닌 것으로 간주하겠다는 압력을 가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돼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 이는 9-11테러사건을 두고 자신들의 ‘꺼름직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라는’ 메일을 보냈던 정치참모 ‘조 무어’를 그 따가운 여론의 눈총에도 아랑 곳 없이 감싸고 도는 당지도부에 대한 불만이 있는 가운 데 불거진 것이어서, 상대적인 소외감을 느끼고 있던 당내 좌파의 도전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기도 하다.

이것이 소위 ‘자유와 민주세계를 지키겠다’며, 의도하든 아니든 이슬람 진영을 테러주의자로 규정하고 증거제시도 없이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맹폭을 가하고 있는 미국과 영국의 지도부의 가치관이며 세계관의 한 단면이다. 이들의 왜곡된 가치관 앞에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 전쟁,테러,기아,빈곤,질병,불평등, 그리고 희망 없는 삶 등-을 맡길 수 있겠는가?

문제는 빈 라덴이 없어진다 해도 ‘제국주의자’들은 또 다른 ‘악마’를 만들어 내고 또 다른 전쟁의 명분을 찾을 것이란 것이다. 제국주의자들이 말하는 <자유>와 <민주> 그리고 <인권>은 그들의 장미빛 미래를 위한 ‘정치적 보험’일 뿐이다.
(2001년 10월 23일 작성)

덧붙이는 말

덧붙이는 글은 이렇게 저렇게 요렇게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