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철폐합의가 전원해고로

살인적인 노동강도가 부른 위험천만 탱크로리 졸음운전
위장 도급 불법 파견 대성산소 용역기사

*윤효한 부위원장이 기자회견과 선전전을 하고 있는 있는 조합원들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다

지난 6월14일 비가 내린 직후 아직 물기가 가시지 않은 인사동 거리는 월드컵 때문인지 많은 외국인들로 붐볐다. 하지만 인사동거리 중간쯤(서울 종로구 관훈동 155-2)에는 인사동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투쟁조끼와 방송차량이 인사동거리를 장악하고 있었다. 이들은 (주)대성산소에서 탱크로리 차량을 운전하는 용역기사 노동자들이었다.

대성산소 용역기사노조 곽민영(46) 위원장과 윤효한(46)부위원장은 조합원들이 대성그룹 앞에서 기자회견과 선전전을 하는 모습을 멀찍이 떨어져 바라보고만 있었다. 노란색 우비를 입고 조합원들이 선전전과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윤효한 부위원장은 연신 담배를 꺼내 물었다.

곽 위원장과 윤 부위원장은 지난 3월12일 수원지법의 업무방해 금지 가처분 신청으로 인해 대성 그룹과 관련된 건물 100미터이내 천막 철거, 유인물 배포 금지, 엠프 방송금지, 현수막 제거, 기타 여러 방법으로 회사 비방금지 등의 가처분을 당한 상태이다. 두 사람 모두 대성그룹과 싸움의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는 기본권인 집회와 시위의 자유까지 박탈당한 것이다.

(주)대성산소는 공업용 고압가스를 생산, 판매하는 업체이며 전체 노동자 수가 400여명 정도 된다. 그중 탱크로리 운전기사는 30명 여명이며 이중 비정규직 용역기사는 14명 정도였다. (주)대성산소에서 탱크로리를 운전하는 노동자들은 고압가스 운송자격을 취득해야 한다. 그만큼 탱크로리운전은 전문적이며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용역기사들은 위장도급 불법 파견된 비정규직이다.

대성산소 용역기사 노동조합은 2001년 대성산소 정규직노동자들이 임단협을 통해 파업 37일의 성과로 '비정규직 철폐라는 노사합의'를 통해 생겨났다. 아이러니 하게도 비정규직 철폐라는 합의사항은 비정규직을 없애게 된다. 곽 위원장은 "비정규직 철폐라는 정규직의 노사합의는 비정규직을 전부 없애기 위해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것이 아닌 정규직을 위해 해고한다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6년 동안 비정규직으로 살아오면서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 노동시간은 2배의 삶을 살아온 용역기사 노동자들에게 비정규직 철폐 합의소식은 희망이었다. 그래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노조에 달려가 노조로 받아달라고 했다. 하지만 비정규직 철폐라는 합의는 정규직을 위해 비정규직 해고를 합의 본 것의 다른 이름인 것을 알게 되었다. 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받아주지 않았고 9월17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만의 노동조합을 따로 건설하게 된다.

용역기사들이 비정규직 노조를 결성하자 (주)대성산소는 공장장 등 관리자 및 용역회사 사장을 동원해 조합탈퇴를 종용하고 대성산소에 근무하는 친인척 및 지인을 총동원해 조합탈퇴를 설득하여 노조설립 20일만에 노조설립주체를 제외하고 전원을 탈퇴시켜버렸다. 끝내 조합을 탈퇴하지 않는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10월31일부로 용역기사 전부를 해고하고 그들이 속해있던 용역회사 두 곳을 계약 해지했다. 그 날부터 탱크로리 용역 운전기사들의 투쟁은 시작되었고 2002년 6월14일까지 225일째가 되었다.

그동안 회사가 몇 번 만나자 해서 만났지만 회사의 입장은 "정규직은 죽어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또한 회사는 비정규직이 해고되는 그 날부터 정규직 기사들을 전부 소사장화 시켜 버렸다. 소사장제도는 운반하는 물량대로 돈을 준다. 결국 밤새 운전을 해야만 한다. 소사장으로 전환된 사람은 쉴 수가 없게 되었다. 노동강도에 견디지 못한 소사장들이 기사를 추가로 채용할 것을 요구했지만 사측은 "너네들은 1년 계약했으니 싫으면 나가라"는 답변만 했다고 한다. 지금은 정규직 기사들이 비정규직 노조에 연락을 많이 해오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곽위원장은 "그들은 비정규직 투쟁으로 정규직이 되었으면 하지만 직접 나서지는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탱크로리 기사 중 정규직으로 버티고 있는 사람은 세 명뿐이다. 이미 운송직 30여명 중 열한 명이 소사장으로 전환되었다.

또한 대성산소 비정규직 문제는 운송기사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작년겨울 반월공장 특수가스 제조부에 폭파사고가 있었다. 특수가스 믹싱은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작업인데 작업을 한 노동자가 폭파로 죽은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비정규직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모두가 정규직 노동자로 알고 있었는데 사고가 나서 알고 보니 비정규직이었던 것이다.

"당시 가스 사고에 대해 가스배합 자체가 잘못되어 터졌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있었으나 죽은 사람에게 전부 책임을 전가 시켜버렸다"는 것이 곽위원장의 설명이다. 죽은 노동자는 입사 1년이 안된 계약직 노동자로 가스 믹싱을 해 왔다. 이렇게 생산직은 누가 비정규직인지 결코 알 수 없다. 생산 파트 하나를 완전히 떼어내서 과장을 소사장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 놓았다. 근데 그 사장이라는 사람도 사실은 비정규직이라는 것이다.

또한 대성산소 용역기사들의 노동강도는 장난이 아니다. 탱크로리 용역기사들은 아침 7시에 출근해서 하루종일 전국의 사업장을 돌아다닌다. 공업용가스가 필요한 공장에 가스를 배달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다. 기사들은 배차해 주는 대로 물량을 돌려야 하기 때문에 심한 경우 24시간 내내 운전을 하고 쉬지도 못한 채 또 일을 해야 할 때가 종종 있다. 곽 위원장은 3일간 내내 운전을 해본 적이 있다고 한다. 그때 사측에 "사람 죽일 일 있느냐?"라고 따지자 그 자리에서 배차 거부라고 해고당하기도 했다.

이들 탱크로리 용역기사들은 이틀 밤을 꼬박 새고 운전하는 것은 기본이고 가까운 거리로 돌아다녀도 24시간 일하는 것은 기본이다. 주로 반월에서 여천을 왕복하며 그 사이에 있는 사업장에 가스를 넣어준다. 그래서 잠은 주로 차에서 자는 통에 졸음운전으로 사고 위험이 크다. 곽 위원장도 "제일 고통스러운 것이 졸리운 것"이라며 "대형 사고 날 뻔한 적도 많았다"고 밝혔다.

대성산소 용역기사 노동조합은 대성그룹 본사에서 6월13일부터 매일 12시 30분부터 1시간동안 '부당해고 철회와 정규직으로 직접고용 쟁취를 위한 30인 릴레이 1인시위'에 돌입하였으며 매주 수요일에는 집중집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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