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이주노동자
87년 동아일보에 필리핀 출신 가정부들이 서울 강남에서 일한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물론 이전부터 이 땅 어딘가에는 사장들한테 망치로 얻어맞으며, '망치'라는 한국말을 배우고, 욕먹고, 제복 입은 사람만 봐도 경찰 같아서 슬금슬금 일하면서 일을 했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있었겠지만, 87년만을 놓고 보아도 한국 땅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일을 한 지는 벌써 18년이 되어간다.
그러나 한국 땅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자'라는 이름을 얻기까지는 많은 투쟁의 역사가 있었고, 지금도 명동성당 들머리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살기 위해 투쟁을 계속해 가고 있다.
일하라고 소리치는 사장을 뒤로 한 채 노동비자를 받고 당당하게 일하겠다고 공장 문을 박차고 나온 이주노동자, 형처럼 동생처럼 지내던 사장이 불법사람 고용해서 벌금 내느니 차라리 나가라고 했을 때, 그 배신감에 농성에 들어온 이주노동자, 한국에 들어온 지 채 4년이 되지 않아 합법화 대상이 되었지만 본국으로 돌아갔다 오면, 다시 일자리를 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형들의 말에 E-9비자도 포기하고 농성에 들어온 이주노동자... 이 곳 명동 성당 들머리에는 각자의 다른 삶의 이야기를 지니고 있지만, 여기에 모인 이주노동자들은 단 한 가지 한국 땅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자로,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단 하나의 희망을 쟁취하기 위해 텐트를 지키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명동성당 들머리에 텐트를 치고 농성투쟁을 시작한 것은 8월 17일 시행 예정인 고용허가제에 반대하면서, 이 제도의 안정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불법' 체류자들을 모두 쫓아 내보내겠다는 한국 정부의 강제추방 정책에 항의하고,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전면합법화를 위해서였다.
11월 15일 전국적으로 천여 명이 넘는 이주노동자들이 한국 정부의 강제추방 정책에 항의하면서 농성투쟁에 돌입했고, 대다수의 농성장이 정부의 자진출국 후 산업연수생 또는 고용허가제로의 재입국안을 수용하면서 정리했다. 그러나 명동 농성투쟁단은 빈깡통일 뿐인 자진출국정책을 총회를 통해 거부하면서 고용허가제 분쇄를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결의를 밝히고 있다.
얼핏 보면 '강제추방저지', '미등록이주노동자전면합법화'라는 이주노동자들의 요구가 신자유주의 저지, 반세계화 투쟁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싶다. 고용허가제가 공공부문 사유화 정책, 노동유연화 공세의 일환인 노동법 개악처럼 정부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으로 정확하게 운동진영에게 인식되지 않고 있으며, 대기업의 파업투쟁처럼 전국을 마비시키는 파괴력을 갖추고 있지도 않다. 그래서 아직도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은 노동운동에게 있어서는 신자유주의 반대투쟁 전선에 서 있는 이주노동자 투쟁으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주'라는 의미 자체에서 우리는 이미 이 투쟁이 그 자체로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이며, 자본에 의한 세계화에 반대하는 투쟁의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이주노동'은 제3세계 노동자들이 저임금과 실업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생존을 위한 선택이고 따라서 개인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강제하는 '강요된 이주노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이 그어놓은 차별을 넘어 장시간 노동 값싼 임금을 거부하고, 노동자로서의 당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 발목에 묶은 끈을 끊어내고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 한국의 노동자와 똑 같은 노동조건을 요구하는 투쟁은 그 자체로 자본이 그어놓은 노동자 내부의 서열화, 분열의 시도에 도전하는 것이기에 이미 그 자체로 반신자유주의 투쟁이다.
더욱이 고용허가제의 도입은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를 기간 노동력으로 한국 정부가 인정하고 있으며, 이주노동자 관련 제도의 도입을 통해 이주노동력에게도 노동유연성을 강요하고, 내국인 노동력과의 차이를 차별로 조장해 또 다시 서열과 시켜 한국 노동자들과의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은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전선에 서있다는 것이 더욱 명확해 지고 있다.
일어서는 이주노동자
80년대 후반 한국에 이주노동자의 유입 초기에는 한국에서 투쟁하는 초기 주체가 형성되지 못한 시기였다. 80년대 후반에 한국에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의 경우는 이주노동자 관련 제도가 아직 마련되어 있지 못한 상태에서 대부분 관광 비자를 통해 한국에 들어왔다. 당시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인식은 그나마 낫다고 한다면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안타까운 현실정도였다.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인권침해 문제가 사회화되었고 종교단체 및 노동 상담소 등이 이런 이주노동자들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개별적인 상담활동과 지원활동을 시작하는 시기가 바로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까지였다. 당시의 이주노동자들은 상담소 및 이주노동자 지원단체를 통해 임금체불, 산업재해를 비롯한 여러 문제를 개별적인 차원에서 해결하려 노력했다.
94년 1월 12일 이주노동자들은 드디어 투쟁의 역사의 전면에 얼굴을 내보이기 시작했다. 경실련 강당에서 네팔과 방글라데시 미등록 이주노동자 11명이 강제출국을 각오하고 농성에 돌입한 것이다. 이들의 핵심적 요구는 산업재해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었다. 또한 체불임금 지급 등을 비롯하여 사업주에 의한 구타와 감금노동 같은 인권/노동권 침해를 고발하였다. 이 투쟁의 성과로 한국정부는 3월부터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도 산재보상을 실시했고, 나아가 94년 9월에는 이미 출국한 노동자들에게도 산업재해 보상을 3년간 소급하여 적용하였다.
한국정부에서는 늘어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문제를 제도화해서 해결하고 동시에 값싼 임금의 노동력을 요구하는 중소기업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94년 산업기술 연수생제도를 도입하게 된다. 그러나 산업기술연수생제도 아래서 장시간 노동과 값싼 임금, 임금체불, 구타 감금 행위 등을 견디지 못하고 연수업체를 이탈해 스스로 불법을 선택하는 이주노동자들이 늘어났다.
95년 1월에는 산업기술 연수생 13명이 '학생'이라는 신분에 묶여 노동자로 일을 하면서도 무한적 착취에 이주노동자들을 방치 시켜놓은 노예제도인 산업기술 연수생제도를 고발하는 농성투쟁에 들어갔다. 명동성당에서 몸에 쇠사슬을 감은 채,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 '때리지 마세요' 등의 요구를 내걸고 투쟁을 시작했다.
농성 초기의 가장 직접적인 요구는 구타금지와 체불임금지급, 여권반환 등의 요구였으나, 점차 문제의 본질적인 부분으로 투쟁의 수위를 상승시켜 나갔다. 농성참가자들은 이후 한국 정부의 사과와 한국 노동자와 동일하게 노동권을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이 투쟁은 한국사회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왔으며, 한국 정부는 사태수습을 위해서 일본에 있는 네팔 대사를 불러오기까지 했다.
여권 반환과 자유로운 행동보장 재취업 보장 원치 않는 잔업, 시간외 근무 강요금지 업무상 질병 재해 시 보상 및 치료 연수수당 직접 지급 미지급 임금 즉시 반환 애로신고센터 설치 활성화 등 9개항에 합의하고 농성투쟁을 마무리했지만 한국 정부는 9개항의 합의를 이행하지 않았고, 이들 투쟁의 주체들은 뿔뿔이 흩어져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개인으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이 투쟁을 통해 95년 7월 향후 이주노동자 운동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게 될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가 결성되는 성과를 남긴다. 그러나 아직 이주노동자들은 스스로 조직을 형성하고 투쟁의 주체로 서기에는 얼마간의 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외노협은 96년 외국인노동자보호법제정운동을 시작으로 해서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청원운동과 여론화 작업을 위한 캠페인 등에 나섰고, 각 이주노동자 공동체들은 지원단체들과 연계하여 한국에서 일어나는 각종 문제들을 해결했다. 사회적으로 이주노동자 인권의 문제를 알려내고 헌신적인 활동가들이 이주노동자들의 어려움들을 개별적으로 해결했으나, 지원단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노동운동으로서의 이주노동자 투쟁, 이주노동조합 건설
외노협 내부의 한국인 활동가들은 이주노동자들이 주체로 서는 자기 조직화의 필요성에 공감을 했고 2001년 10월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완전 쟁취와 이주 취업의 자유실현을 위한 투쟁본부를 건설하고 2001년 5월 26일 서울경인지역 평등노동조합이 출범한다. 평등노조의 출범의 배경에는 이미 2000년 12월부터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고용허가제 관련한 논의에 대한 입장차이도 있다.
일부에서는 고용허가제를 차선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이 있었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고용허가제가 아닌 노동허가제의 전면적인 도입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 차이들이 이주노동조합 건설 문제의식의 일부차지 한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이제는 대리투쟁이 아닌 이주노동자들 스스로가 문제의 해결자, 투쟁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평등노조 이주노동자 지부에서는 현장에서의 투쟁을 조직했다. 개별 사업장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상담소와 노동부를 통해서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라, 분회의 조합원이 문제가 발생한 사업장 앞에서 항의투쟁을 조직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조직하는 새로운 전형이 창출되었다.
이주지부에서 조직한 투쟁뿐만 아니라 2001년 세원전지 필리핀 산업연수생 인금 인상 및 작업조건 개선을 위한 투쟁, 2001년 동아타이어 현지법인 연수생의 최저임금 인상 투쟁, 2001년 동진 케미칼 한국/이주노동자 연대파업. 2002년 1월 아모르 가구투쟁, 2002년 마석 수창가구 파업투쟁 등 이주노동자들의 저항이 계속되었다.
평등노동조합 이주지부는 2002년 4월 7일 '자진출국거부/단속추방분쇄/합법화 쟁취 이주노동자 투쟁 결의대회를 조직하면서 1000여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대중적인 집회를 열었고 이주노동자들이 노동허가제 도입하기를 바라는 강렬한 투쟁의 열기를 확인했다. 그리고 2002년 4월 77일간의 농성투쟁을 조직했다. 그리고 이 투쟁에 대한 열망은 다시 11월 15일 시작한 '강제추방저지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합법화를 위한 농성투쟁'에서도 드러났다.
이주노동자, 신자유주의 분쇄 투쟁전선에 서다
11월 17일부터 전국적으로 시작된 단속 추방은 8월 17일 시행을 앞두고 있는 고용허가제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의 성격을 띠고 있다. 2003년 3월 현재 정부통계로도 36만 명에 육박하는 이주노동자들 중 약 70퍼센트 이상이 미등록 이주노동자이다. 한국 정부로서는 관리되지 않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대책이 시급했을 것이고, 산업연수생제도 하에서의 이주노동자 인권침해라는 오명을 면피하기 위해서도 새로운 제도의 도입이 시급했다. 그러나 새로운 제도인 고용허가제도 노예제도인 산업연수생제도에서 한 끝도 나가지 못했다.
오히려 노무현 정부의 반노동자적 신자유주의 정책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고용허가제의 핵심은 해고를 통해 이주노동자들의 국내수급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매년 계약을 갱신해야 하고, 사업장 이동의 자유, 특히 임금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 악질적인 조항을 담고 있다. 따라서 고용허가제를 분쇄하는 투쟁은 바로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파열구를 내는 투쟁이다.
또한 고용허가제 분쇄투쟁은 이주노동자들만의 투쟁일 수 없다. '내국인 우선 고용'이라는 원칙으로 인해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조건을 먼저 한국의 노동자들에게 제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와 한국 노동자의 임금하락경쟁은 이미 고용허가제에서 제도화되었다. 이주노동자들은 가뜩이나 일자리도 없는 상황에서 한국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뺏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자본과 언론에서 공개적으로 비난을 하고 있다면 현장에서는 암묵적으로 이주노동자들의 존재 자체가 위협이 되고 있다. 건설 현장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임금덤핑을 치는 바람에 한국인 노동자들이 임금 경쟁을 해야 하고, 인천의 한 도자기 공장에서는 파업 때 이주노동자들의 대체근로로 인해 파업이 파괴되기도 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저단가 낙찰, 임금하락 경쟁을 조장하면서 내국인 노동자와 이주노동자들을 분리·서열화 시키고 있는 것은 이주노동자들이 아니라 자본이라는 것이다.
이주노동자 투쟁 10년, 더 이상 잃을 것은 없다.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 들어올 때부터 노동자였으나, 한 번도 노동자였던 적이 없었으므로. 그러나 10년이 넘는 투쟁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의 역동성을 발견한다. 말이 다르고, 피부가 다르고, 문화가 다른 이 사회에서도 노동을 하는 한 노동자일 수밖에 없으며, 자신의 권리는 자신이 스스로 투쟁하고 조직되어야만 찾을 수 있다는 아주 단순한 진리를 스스로 증명해 보이는 중이다.
한국의 노동자들에게는 무엇을 남겼는가? 아니 이주노동자들을 포함한 한국 땅에 있는 모든 노동자들에게는 무엇을 남겼는가? 그것은 자본이 그어놓은 국경이라는 것은 노동자들에게는 하등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자본이 자본을 마음먹은 대로 넘나들면서 이윤에 눈이 벌게져 있는 이 세상에서 또 한편에서는 노동자들이 먹고 살기 위해 국경을 넘어야 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있다. 그러나 이 이주노동자들과 내국인 노동자들이 자기 밥그릇을 위해 넘어오지 말라고 선을 그어놓고, 선을 넘어온 이주노동자들을 외면한다면 노동자의 진정한 승리와 해방은 오지 않는 다는 사실을 노동자는 깨달아 가고 있다.
진정한 국제연대, 국제주의의 실현이란 자본이 그어놓은 분열의 선을 넘어 노동자의 이름으로 단결하는 것을 인식해 가고 있다. 이것이야 말로 신자유주의 10년, 노동자들에게 남아 있는 단 하나의 희망이다.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