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들과 독립영화 감독들의 은밀한 만남

이주노동자의 언어와 시선으로 한국을 말한다
'죽거나 혹은 떠나거나' 이주노동자 인터뷰 프로젝트 오픈


당신과 나, 지구인, 이주노동자

유난히 더웠던 7월의 밤, 광화문에 위치한 영상미디어센터 건물에는 매일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이주노동자들과 독립영화 감독들의 은밀한 만남이 진행되었다. 물레방아간도 아닌데 왜 은밀히 만나야만 했을까? 이유는 그렇다. 명동성당에서 농성중인 이주노동자들이 밤마다 몰래 농성장을 빠져 나와 한국사회에 대한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내는데 출입국 관리들이 알기라도 해봐라. 인권도 모르는 어부출신 출입국 관리들이 가스총과 쇠사슬에 그물까지 들고 쳐들어올지 모르는 일 아닌가? 이렇게 고용허가제 실시에 맞춰 이주노동자가 한국사회에 살았던 기록에 대한 거대한 프로젝트가 17일 공개되었다.

미디어센터 대강의실과 로비는 조명이 커지고 카메라가 돌아가면 이주노동자들이 바라본 한국사회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주노동자 본국의 언어로 유창하게 쏟아져 나왔다. 정권과 자본이 모르게 은밀해야만 했던 이 프로젝트는 억압받고 차별 받는 이주노동자, 그러나 모두 지구인이고 모두가 이주노동자일 수밖에 없는 우리의 이야기였고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치부가 시원스레 드러나는 공간이었다.

프로젝트에 참가한 20여 명의 스텝과 감독들, 그리고 13명의 이주노동자는 한 여름밤에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한국의 어두운 현대사를 정갈스럽게 쓰고 있었던 것이다. 이쯤에서 그 프로젝트 이름을 공개하겠다. '죽거나 혹은 떠나거나 - 이주노동자 인터뷰 프로젝트'


명동성당에 철저히 고립된 이주노동자의 시선으로

이 프로젝트의 취지는 이렇다.

"한국독립영화협회는 '이주'와 '노동'이라는 단어를 키워드로 이주노동자의 삶과 그들의 언어를 모으는 작업을 진행하고자 한다. 명성성당에 철저하게 고립된 그들의 시선으로, 명동성당 들머리라는 위치에서 한국사회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들의 말을 모아서 우리를 돌아보는 작업이 될 것이다. 이주노동자 인터뷰 프로젝트는 상처받은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치유의 과정이 될 것이며, 우리를 뒤돌아보게 할 것이다."

언뜻 보이는 단어는 "고립된 그들의 시선으로 한국사회를 이야기하고", "이주노동자에 대한 치유", "우리를 돌아봄" 등의 문구가 눈에 띈다. 필자가 보기엔 '고립된 그들의 시선'이 가장 중요한 단어다. 이 프로젝트는 명동성당에서 280여 일 농성투쟁 하면서, 그보다 더 오래 전인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처음 왔을 때, 공장에 들어갔을 때, 단속반에 쫓기고 있을 때, 그리고 그보다 더 오래 전에 그들이 이 더러운 땅에 오게 되면서 봐야했던 최근 10여년 동안의 코리아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된 계기는 뭘까? 이 프로젝트의 프로듀서를 맡은 영화 '미친시간'의 감독 이마리오씨는 이렇게 말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문제는 명동성당 농성에 들어갈 때부터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이들에 대한 관심은 떨어져 가고 있었고 어떻게든 독립영화진영이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고용허가제가 시행되는 8월이 되면 흩어질 지도 모르는데 매우 중요한 한 사회의 단면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담아 보자는 취지로 모였습니다" 이렇게 독립영화 감독들은 이주노동자의 삶과 그들이 한국사회를 보는 시선을 인터뷰를 통해 담기 위해 모인 것이다.


기록자체보다는 연대를 가장 중점에 두다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연출자들은 한국독립영화협회 회원들보다는 개인작업을 하거나 미디어센터에서 수업을 받았던 사람들, 평소 이주노동자 문제에 관심있던 사람들 등이다.

이들은 공동으로 기획안을 검토하고 비록 인터뷰라는 방식이 제한적이긴 하지만 이주노동자의 가슴속에 담겨진 얘기를 듣고 싶어했다. "이주노동자들이 한국 사회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런 물음에서 시작하는 것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많은 취재가 있기는 했지만 이주노동자의 삶을 들여다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잘 만든 작품이 나오지 않아도 그 자체가 소중했다. 이들의 작업은 "이주노동자들이 인터뷰 과정을 통해 평소에 하고 싶은 말을 시원스럽게 얘기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작품은 어떻게 될 것인가? 간단하다. 17일부터 한 작품씩 온라인으로 상영한다. 프로젝트를 통해 만들어진 작품들은 공동의 자산이 된다. 공동으로 보관하고 비상업적 목적으로 최대한 활용할 계획이다. 누구나 비상업 비왜곡을 전제로 사용할 수 있다.

인터뷰 프로젝트는 기록에 중점을 둔 것은 아니다. 그것보다는 연대가 더욱 중요한 지점이라고 이마리오씨는 말한다. "고전적인 그런 연대가 아닌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같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고민했습니다. 독립영화가 연대하는 것은 영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이주노동자 헤미니씨는 이 작업에 대해 "농성을 계속 해왔지만 미디어를 통해서 자세하게 이주노동자의 문제와 실질적인 해결 상황들, 우리의 새로운 인생이 미디어 통해 이 사회에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기쁘다. 언론을 통해 실제적인 문제들이 다뤄지지 않으므로 잘 나갔으면 좋겠고 작업 자체가 굉장히 색다르다. 조명 카메라 장비들이 그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느낌을 살리고 자기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전달 할 수 있다. 가장 기억나는 것은 네팔에서 산 인생과 한국에서 산 인생이 모두 한사람의 인생인데 한국에서 살아온 현실과 이주노동자 문제를 느낀 그대로 이야기 한 부분이다."라고 밝혔다.

이렇게 인터뷰 프로젝트는 이주노동자의 기슴 속에 담긴 한국의 이야기를 끌어내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가슴에는 이미 한국이라는 나라가 담겨 있다. 이제 한국인이 이주노동자에게 답할 차례다. "이 안에 너 있어"

이 프로젝트가 한창 촬영중인 7월 14일 총연출을 맡은 주현숙 감독과 프로듀서를 맡은 이마리오 감독을 동시에 만나 진행한 인터뷰 일문일답이다.

-이 프로젝트가 다른 영상들과 특별한 다른 점이 있다면?
(이마리오)이주노동자의 삶을 기록한다는 데 있다. 노동자로 살면서 듣고 느꼈던 다양한 것들. 그것이 삻 이라면 그 위치에서 보수적인 한국사회 그런 부분을 이주노동자의 시선으로 기록하고 싶다.

-이주노동자의 시선이란 어떤 시선인가?
(이마리오)그 사람이 처해 있는 위치에 따라 이주노동자는 가장 밑바닥에 있다. 이주노동자가 보는 이 사회는 가장 적나라 할 것이다. 비판적인 한국인의 눈에서조차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농성단은 이 프로젝트에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주현숙)투쟁하는 분들이 언론에는 투쟁하는 얘기만 해왔고 특히 대중매체에는 한국에 좋은 부분만 나가는데 다층적이고 다면적인 자신을 인터뷰하겠다는 그런 요청 때문에 좋은 반응이었다. 농성단은 투쟁 일정만 고려해 달라고 했다. 프로젝트에 참가한 사람은 자신의 삶을 얘기해 보겠다고 자발적으로 나선 분들만 했다.

-자국어로 인터뷰를 한다고 들었다
(이마리오)진짜 가슴속의 이야기는 자기 언어로 내야 제대로 표현 할 수 있다. 한국어로 아무리 잘 표현해도 자국어로 더 잘 표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사회적으로 이주노동자들을 어눌하게 보는 것이 언어를 잘못해서 지적 능력이 적다고 얘기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은 엄청난 경험과 심도 깊은 고민을 담고 있기도 하고 이주노동자는 당신과 나, 지구인처럼 똑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불쌍한 사람, 착취당하는 사람으로 단편화되어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 10년~20년 있던 한국의 구성인자였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한국 현대사의 한 부분을 읽는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현대사를 이해 할 수 있다. 90년대 초반의 한국과 2000년대 한국이 다르다. 그때의 산업구조와 그때의 이주노동자의 인식을 담아야 한국 현대사라는 퍼즐을 맞출 수 있다.

(주현숙)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은 구호가 아닌 하나의 입체를 가진(단면이 아닌) 사람의 욕구다. 모두 우리와 같이 생각과 욕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이주노동자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마리오) 노동자, 이주노동자 이러면 계급으로만 생각한다. 개개인의 인간으로 지각되지 않는다. 덩어리의 사람으로써만 인식된다. 특히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인식은 더욱 심하다.

-인터뷰라는 형식이 갑갑할 것 같다
(이마리오)형식에 대한 고민이 많다. 내용은 풍부하다. 이것 자체가 프로파간다다. 교육프로그램이다. 이 대상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야 뭘 물어볼지 알게 된다. 형식은 단조로울 수 있지만 각 감독의 생각이 다이나믹하다.

-다이나믹하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이마리오)다큐는 많은 준비를 해야 구체성을 표현할 수 있다. 대상을 얼마나 아느냐에 따라 다르다. 보통 한 감독이 두 명의 이주노동자를 인터뷰하는데 처음 할 때와 두 번째 할 때가 다르다. 처음 가져온 생각을 구체화시키고 이주노동자를 어떻게 드러낼지 컨셉이 하루에 12번은 바뀌는 것 같다. 스테인드 글라스 처럼 개개인의 색깔이 녹아나지만 하나로 엮인다면 좋겠다

(주현숙)최대한 인터뷰한 감독의 색깔이 잘 드러나게 감독의 편견도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 인터뷰를 보는 한국인도 그 화면속에 자신의 모습이 나와 공감하고 반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각각의 색깔이 얼마나 드러날 것인지가 중요하다. 22살 감독이 연출한 작품은 22살 감독의 느낌이 나왔으면 좋겠다. 연출자들의 기획이 가지각색이라 재미있다.
이주노동자 인터뷰 프로젝트 참가 양승렬 감독 인터뷰
- 이 프로젝트에 어떻게 참가하게 되었는가?
8개월 동안 농성한 걸로 아는데 이주노동자들의 개인사를 듣고 싶었다.

-개인사를 들어보니 어땠나?
8월 고용허가제가 시행되면 어려울 텐데 프로젝트 끝나고도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고 싶다.

-주로 나눈 이야기는 무엇인가?
20-30분 짜리 인터뷰인데 네팔의 가족이야기. 떠나온 배경, 한국에 와서 힘들었던 부분, 농성중 애로사항 등이다.

-가장 기억 남는 내용은?
인터뷰한 형의 꿈이 의사였다고 한다. 형은 한국에 오기 전에 대학생이었다. 자기의 꿈을 포기하고 동생학비를 벌기 위해 온 것이다. 형은 자기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투쟁을 같이 하게 되었다. 지금은 그 꿈을 포기한 것 같아 아쉬웠다.

-처음 의도와 같은 기록이 드러난 인터뷰 였나?
그 형은 2000년에 한국에 왔다. 한국에 오기 전에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듣고 왔다고 한다. 4시간 일하고 4시간 한국어 공부할 수 있다고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듣고 왔는데 연수생으로 32만원 받고 다치면 월급을 까고 욕먹고 맞기도 했다. 그 형 입을 통해 그 과거를 이야기하는 부분의 맥락을 모르는 사람이 많으므로 자기 이야기를 통해 현실을 알리는 의미가 크다고 본다.

-같이 뭔가 해보고 싶다고 했는데
프로젝트 끝나고도 계속 만나고 싶다. 촬영 편집이 끝나면 투쟁과 밥이라는 활동도 같이 해보고 싶다.

-아직 학생인데 학교에서 이런 운동을 하는 학생들과 관계가 좀 있었나?
선배들을 통해 학기초에 명동성당 농성에 대해 인권영화제에서 본적이 있고 쇼학씨가 강연한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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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심스레 되물어보고 싶습니다

    이주노동자의 안된 모습을 비추어 한국사회를 고발하고자 하는 시선이 아닌가 생각되는데요

    저는 인터뷰라는 형식을 떠올리며 이주노동자 개인으로 들어가자면 인간됨이 슬픈 그래서 더욱 치열한 사회적 현실 만큼이나 깊이있는 개인적인 고뇌와 사람됨에 대한 성찰을 기대했습니다

    물론 우리가 말하는 연대의 단어적 의미가 그런 부분까지 감당하기에는 그 심도가 작다는 생각도 합니다

    더불어 그 연대라는 것이 값싼 이즘의 한 맥락인지도 모르겠다는 것 또한 사실 드는 생각입니다

    이주노동자들에게 무엇이 연대일까요 그들(명성농성단 뿐만아니라)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연대일까요

    다큐멘터리에 대한 개인적인 기대입니다만 묵직이 바라보면서 청자에게 일반 매체들이 하지 못하는 감정들과 인간에 대한 이해, 나아가 경외를 전달했으면 합니다

    더욱이 작금의 제한된 -정치적 한국이라는-틀에서 벗어나 홀로 된 인간성과 그것에 기초한 이주노동의 현실이 그려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데요

    연대 투쟁의 제약들을 보면서 어렴풋이 느낀 것은 지나치게 한쪽 시선으로 치우치지 않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농성이나 구호나 그러한 퍼포먼스들이 가지는 궁한 지점을 저는 '죽거나...' 팀에서 찾아 가만히 담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부족한 필로 작으나마 감독님들께 힘이 되고 싶어 몇자 적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읽던 책을 뒤적여 누추한 글을 메우고자 합니다

    -

    절망과 고통은 정태적인 요소이다. 상승의 동력은 희망과 긍지에서 나온다. 인간들로 하여금 반항하게 하는 것은 현실의 고통이 아니라 보다 나은 것들에 대한 희구이다.

    _떠돌이 철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