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군은 항의가 아닌 이기려고 달려드는 싸움이어야 "

[참세상 사람] 동화작가 박기범의 반전운동
노정권과 전선을 치는 것은 과격한 게 아닙니다

지난 29일 김재복 수사가 단식을 하고 있는 청와대 분수앞 농성장. 울진에서 철군을 위한 농성과 릴레이 단식을 진행하고 있는 울진평화모임 회원들과 같은 모임 소속인 동화작가 박기범 씨가 농성장을 찾았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평화바람 문정현 신부와 오두희 활동가도 김재복 수사를 찾아왔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평화바람이 울진을 한번 방문하자, 이런 얘기가 나오는가 싶더니 김재복 수사도 "나도 여기 박혀 있을 것이 아니라 지역을 돌아다니며 단식 순례를 해야겠다"고 말한다. 동화작가도 같이 순례를 하겠다는 말도 나온다. 철군 투쟁 만담으로 웃음꽃이 피어난다.

알려진 바로는 8월3일 선발대 출국 이후 철군을 위한 단식, 농성, 시위를 하고 있는 곳은 두 곳이다. 한 곳은 청와대 앞이고 다른 한 곳은 새롭게 반전운동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는 울진 군청 앞이다.

울진의 철군 투쟁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대게가 유명하고 10월에는 송이가 좋다는 울진 바닷가에 동화작가가 정착을 했다. 동화작가는 여차 저차해서 그곳 초등학교 선생님들과 알게 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초등학교 선생님들도 뭔가 한 가닥 하는, 인권과 평화를 제대로 알고 있는, 전교조 활동을 하는 선생님들이었다. 이들은 다들 이대로 있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냥 개인적으로라도 뭔가 해보자 이거였다. 그렇게 바닷가 시골의 1인 시위와 농성은 소리 없이 질기게 시작되었다.

울진에서 멀리 떨어진 서울에는 전국적으로 파병운동을 지도하는 파병반대국민행동이 있었다. 울진의 조그만 동네 주민들은 국민행동에서 10만 릴레이 단식운동을 한다하여 여기에 맞춰 단식에 돌입한다. 군청 앞에 우산 하나, 피켓 하나 들고 들어간 단식. 그러나 8월 3일 자이툰 부대가 떠나자 단식단은 단식을 풀었다. 더불어 국민행동 홈페이지에 있던 릴레이 단식 게시판도 사라졌다.

그런데 울진 사람들 계속 단식을 한다. 왜냐고? 지금 아무 것도 안하고서 어떻게 11월에 추가 파병동의안을 막아내자는 건가? 단순한 물음이다. "그때 가서 하자는 건 또 항의나 깨작깨작 하다가 끝내자는 얘기나 다름없다"는 느낌이 꽂히는 한마디를 한다. 그래서 단식은 쭈욱 계속되고 농성도 쭈욱 계속되고 있다.

울진에 살면서 철군 투쟁 단식을 20일 넘게 하고 있는 송아지처럼 순진해 보이는 동화작가 박기범 씨에게 물었다. "울진평화모임은 왜 서울서도 그만둔 릴레이 단식농성을 아직도 하는가? 울진평화모임은 뭐하는 모임인가?"

"김선일씨의 호소가 보통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우리가 감당 못하게 되었죠. 우리도 뭔가 해야 하는 것 아니냐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선일 씨의 호소 영상이 뉴스로 계속 나오는데 최소한의 인간애를 가진 사람이면 뭔가 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함께 하는 사람 대부분은 그냥 자발성에 기반해 뭔가 시작했다. 뭐 대단한 걸 시작한 건 아니다. 그냥 1인 시위다. 올 여름을 달궜던 피스몹도 아니고 널린 노래방도 아닌 1인 시위를 했다.

울진 사람들은 군청 앞에서 한 사람 한 사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농성을 하고, 집회신고를 내야하고 이렇게 알음알음 이어가다 다음카페도 만들고 평화모임이라는 이름도 짓게 되었다. 한달 반 이상 농민, 학교 선생님, 원전 다니는 회사원, 직장인, 주부들의 시위가 이어졌다. 10만 단식 릴레이로 시작했지만 8월 3일 선발대가 떠나는 것을 보고 단식 릴레이는 더욱 멈출 수 없었다.

"유월부터 피켓을 들고 군청 앞에 있으면서 서명을 받을 때 이미 여론은 만들어져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스스로는 군민들에게 감동을 받으면서도 '지금은 싸울 때인데, 지금은 여론을 확인할 때가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지역에서 오래 계신 분들은 이러한 성과들이 축적되어 가는 과정을 소중히 여겼어요"

"울진의 투쟁은 김재복 수사님이 외롭게 싸우고 수사님이 붙잡고 계시는 철군 싸움을 외롭게 두지 않는다는 안간힘의 의미도 있어요. 이 풀뿌리 운동을 그대로 두지 않겠다는 것과 지역, 부문에서 움직일 수 있다면 최대한 해보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스스로는 자족적인 것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들어요"

지난 29일 김재복 수사를 찾은 동화작가 박기범씨

동화작가는 거의 매일 단식일지를 써서 울진 평화 모임 게시판과 미디어참세상에 올린다. 그는 단식일지에서 촛불로는 노무현정권의 파병을 이길 수 없다고 했다.

"촛불이 더 이상 이 투쟁을 이길 수 없다는 건 무슨 뜻인가?"

"촛불시위를 부정하는 건 아니에요. 촛불 시위는 굉장한 힘이고 사람을 감동케 하는 힘이 있었다는 생각을 해요. 하지만 싸움에 맞는 무기를 선택해야 합니다. 어떤 싸움은 촛불이 필요하고 어떤 싸움은 돌이 필요할 수도 있어요. 또 어떤 싸움은 이론으로 숨통을 조여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에 있어서 과연 촛불로 싸움을 해야 하는가 라는 고민이 들었습니다. 작년 3월에 처음 시작하는 투쟁이면 촛불이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 군대가 총을 들고 이라크 민중을 죽이러 가는데 촛불이 제대로 된 무기인가 라는 겁니다. 그럼 뭐냐에는 뚜렷한 답은 없어요. 비판 자체가 부끄럽기는 합니다. 그러나 최소한 촛불이 대중이나 정권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어요"

지금 철군투쟁에 모든 것을 내걸고 투쟁하는 곳은 두군 데 밖에 없다. 김재복 수사야 싸워 온 이력이 그렇다 치고 울진 사람들은 왜 아직도 싸우고 있을까?

"저도 울진 사람들도 그렇고 크게 정세를 아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냥 신문이나 뉴스를 보고 양심을 배반할 수 없다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양심을 배반할 수 없는 사람들의 릴레이 단식과 박기범 씨의 20일 넘는 단식은 김재복 수사의 단식과 맞닿아 있었다. 젊은 동화작가도 파병반대국민행동의 투쟁 전술에 아쉬움이 많다.

"어제 본진이 마지막으로 출병했는데 국민행동 홈페이지에는 그전에 단식 게시판조차 죽여 버린 상황입니다. 지역에서 풀뿌리 운동을 살리려는 사람들은 맥이 빠져 안타깝습니다."

"마지막 출병이 어젠데 그전에 파병투쟁 평가 MT를 다녀오는 건 아닌 것 같았습니다. 평가의 내용을 떠나서 잘은 모르지만 출병조차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평가를 한다는 것은 당황스러움으로 다가 왔습니다. 박석운 집행위원장이 인터뷰한 기사를 보았는데 과연 파병을 막겠다는 의지가 있었는지도 의심스러웠습니다. 그 인터뷰에는 파병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항의 수준의 투쟁이었다고 반성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평가가 끝났으면 달라지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습니다. 어제 본진이 파병되었는데도 200-300명 정도 모였다는 것입니다. 너무 황당했어요. 8월 15일만 해도 단상 위에 올라 이 투쟁에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열의를 보였는데... 국민행동에 참가하는 351개 단체가 한 명씩만 나와도 어제 집회보다는 많았을 것입니다."

박기범씨는 본진이 출발하는 날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울진에서 오다가 심하게 멀미가 났다고 한다. 단식으로 인해 장시간의 버스 타기는 무리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단식을 택했을까?

그의 눈에는 아직도 이라크에서 "푸드(food), 푸드(food)"하며 굶는 아이들이 선하기만 하다고 한다. "이라크는 전기가 끊기고 식량도 없어요. 그곳은 계속해서 굶고 죽어 가고 있는데... 지금부터는 우리나라 군대의 짓이고 내가 하는 짓이 되어 버린 겁니다. 내 잘못으로 여겨지는 게 있어 미안한 마음이랄까 하는 게 마음 한 켠에 있습니다. 계속 참회하고 반성하고 있어요."

그의 참회와 반성은 지금부터라도 진짜 철군을 시키기 위해 달려드는 싸움으로 이어진다. "적어도 8월 15일까지도 투쟁은 근근히 있었어요. 그러나 15일 이후 싸움은 확 떨어진 것 같은데... 이건 아닙니다. 지금 멈추고 11월에 연장 동의안 저지를 위해 싸우자고 하는 건 그 싸움도 항의 수준으로 하겠다는 겁니다. 그건 이기려고 달려드는 싸움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부터 모아가고 싸워가도 이길까 말까하는데 이 싸움을 미루자는 것은 지금까지의 행태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김재복 수사는 자신이 새로운 투쟁의 불씨를 일구는 징검다리를 하겠다 했다. 울진모임 사람들도, 박기범 씨도 그런 마음으로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박기범 씨의 단식은 자신을 위한 싸움이기도 하다. 그는 떳떳하게 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이 전쟁을 넘어 또 다른 전쟁조차도 끝내기 위한 자신의 삶의 방식에 대한 고민도 하고 있다.

"석유 때문에 사람을 그렇게 죽이는데 반전운동을 하는 우리는 예전 수준으로 석유를 씁니다. 지금 당장은 파병을 막고 철군을 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지속적으로 석유에 기대어 사는 우리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전쟁은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석유는 어차피 고갈될 텐데 석유에 의존하는 삶의 방식이라면 언제든 그걸 차지하기 위해 마지막 한 방울까지 싸우고 죽이려 하지 않겠습니까?"

동화작가는 노무현정권에 전선을 그어야 한다고 말한다. 박기범 씨의 눈에 비친 노정권은 사람이 죽어도 끄떡없는 정권. 더 말할 게 없는 정권이다. 가까이는 지율스님이 목숨을 걸어도 누구도 코빼기도 하나 안 비치는 정권이었고 자기나라 국민이 죽게되고 애원하고 절규해도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죽일 테면 죽여 봐라는 정권이었다.

"저는 노무현정권에 전선을 긋는 것이 결코 급진적이거나 과격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미 노무현정권이 우리에게 먼저 전선을 쳤기 때문입니다. 노무현정권이 먼저 민중을 적대하고 배반했습니다. 민중들은 다 죽어가다 이제 싸우기 시작한 건데 더 이상 논할 가치가 있는가 생각합니다."

동화작가는 요즘 전범 민중재판 운동에 관심이 많이 간다고 한다. 인권, 평화권 단체들을 중심으로 하고 준비되고 있는 국제전범 민중재판이 대중적으로 반전 운동을 살릴 수 있는 운동이 될 수 있겠다는 판단이다.

29일 김재복 수사, 울진평화모임, 평화바람의 모임은 단식순례(가칭)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김재복, 박기범 두 단식자가 평화바람과 함께 울진을 시작으로 지역 단식순례를 해보자는 것이었다. 단식중이라 힘들겠지만 적극적으로 지역을 돌아다니며 철군에 대한 얘기와 민중법정 얘기를 하면서 민중법정에 힘을 실어 가자는 계획들이 즉석에서 나오고 계획되었다. 11월이 아닌 지금 당장 이들이 돌아다닐 지역마다 철군투쟁의 바람, 반전운동의 풀뿌리가 다시 고개를 쳐들고 일어날 날도 머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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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 박기범 , 철군투쟁 , 기재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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