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조, 풀무원 기업 정신은 죽었습니다"

풀무원 파업 120일, 천막 철거 텐트 노숙 중
단협개악안 두고 교섭 교착 상태

겨울을 알리는 찬 가을비가 옷깃을 여기게 하는 11월 2일, 파업 119일차를 맞는 풀무원 노동자들은 서울 수서역 풀무원 본사 앞에서 6차 서울 상경투쟁을 진행했다. 당초 2시로 예정되었던 집회는 궂은 비로 30여 분 늦게서야 시작되었다.


상복을 입은 조합원들과 "청정기업 풀무원은 죽었다"라는 근조 현수막, 길가에 걸려진 만장들은 파업 119일차를 맞은 풀무원 노동자들의 분노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23명의 조합원에 대한 고소고발, 16명의 조합원에 대한 징계경고, 더구나 지난 10월 29일 농성장이던 천막을 강제 철거 당하고, 춘천 공장에는 출입금지 가처분 신청까지 떨어졌다.

회사는 노조 출입을 허하는 판결에도 불구하고 임의로 노조 간부 5인에 대해 일몰 전, 일출 후에만 출입을 허용하고 있다. 더구나 1일에는 천막이 있던 자리에 나무마저 심어놓아 노동자들의 분노는 분노를 넘어 허탈감에 가까운 상태였다.

약 30분간 집회가 진행되는 동안 풀무원 노동자들은 비 그친 후 한결 추워질 날씨 걱정 속에서도 지하도든, 어느 구석에 꼬마 텐트를 치든 ‘풀무원 사측의 노조 말살을 끝장보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거듭했다.

119일차까지 이른 풀무원 파업, 노사 대립의 쟁점은 무엇인가

공장장에게 최종 해고결정권...개악 단협안 수용 요구

풀무원노조가 파업에 돌입하며 당초 주되게 회사 측에 요구했던 것은 단일호봉제 도입, 교육비 의료비 지원, 주 5일제 실시, 생활임금 보장 등이다. 그러나 지금 정작 노조를 극단으로 몰고 있는 것은 회사 측이 들고 나온 새로운 단협안이다.

풀무원노조에 따르면, 풀무원사 측은 기존에 노사 동수로 구성된 징계위에서 3분의2 찬성으로 해고 여부를 결정하던 것을 과반 찬성으로 기준을 낮추고 동수의 경우 공장장이 최종 해고 여부를 결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는 “노사 동수로 꾸려진 징계위에서 최종결정권을 공장장에게 주는 것은 노조를 들러리로 만드는 것이며 결국 노동자를 공장장의 통제 속에 길들이려는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또한 기존의 징계 사유 중 회사에 막대한 지장을 ‘고의’로 준 경우에서 ‘고의’를 삭제하고, '정당한' 작업 지시에 불응이라는 자의적 판단기준을 삽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채용에 있어서도 노사가 공동으로 논의하던 기존 단협을 깨고 회사에서만 전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는 “징계의 폭과 판단 기준을 대폭 자유롭게 하고, 채용시에도 회사의 측근만을 심겠다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2월부터 진행된 교섭은 지난 28일 이후로 다시 교착상태다. 회사는 개악된 단협안을 노조 측에서 수용하라는 입장에 변화의 여지가 없는 상태라는 것이 노조의 설명이다. 노조 측 대표교섭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소정호 화학섬유연맹 조직부장은 “회사에서 합의된 내용마저 번복을 거듭해 28일 최종 교섭자리에서 문서로 교섭에 임할 것을 요구했고, 회사도 2~4일 교섭에 성실히 임할 것을 약속했으나 교섭 재개 전에 확인하니 문서로 제시할 것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며 회사측의 교섭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노조 기존 요구안 대부분 회사안으로 수용

풀무원 노동자들은 “월급을 올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근로조건 개선을 해달라 라는 것도 아니고 이제는 개악안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는 데도 풀무원 사측은 노동자들을 119일 동안 길거리에 방치하고 있다”고 분노하고 있다. 협상에서 회사측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했다는 것이다.

노조측에 따르면 당초 4대 요구안 중 단일호봉제는 내년 7월 1일부터 외부기관에 의뢰해서 기준을 마련하기로 합의했고, 주 5일제는 내년 7월 1일부터 회사에서 제시한 4조 3교대를 시행하기로 했다.

2003년 근골격계 싸움 당시 노조에서도 4조 3교대를 요구한 바 있지만 내용에서는 시행될 회사안과는 다르다. 2003년 당시 노조는 5일 근무 2일 휴무를 요구했었다. 회사의 안은 5일 근무 2일 휴무, 5일 근무 1일 휴무 1일 교육, 5일 근무 1일 휴무, 20일 주기이다. 이 중 1일간의 교육 내용에 대한 시험을 치러 인사 평가에 반영한다는 것이다. 박제동 풀무원 춘천공장 사무국장은 “회사의 안 대로라면 노동강도 완화 효과가 떨어지고 대부분 40~50대 후반 노동자들에게 시험을 치르는 것이 과도하지만 파업의 장기화를 피하기 위해 수용했다”고 밝혔다.

노조는 또한 교육비 지원 요구를 철회했고, 의료비 지원의 경우 1년에 한 번 건강검진비의 70%지원을 요구했던 것을 2년에 한 번 20만원 지원으로 합의했다.

한편, 2003년 근골격계 투쟁으로 임금협상을 하지 못했던 풀무원노조는 당해 주주이익 배당률이었던 19.8%에 해당하는 임금인상을 요구했으나 회사 측이 난색을 표했다. 노조는 다시 작년 풀무원 계열사 공동 인상액인 10만2천 원을 요구하였다. 회사는 그 전제로 생산성 향상을 위해 작업시간을 매뉴얼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박제동 사무국장은 “휴식시간 얼마, 화장실 이동 시간 얼마 등등 모든상황을 규정한다는 게 노예문서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렇게 안 해도 공장에서는 생산 외의 여유가 없지만 그런 노예문서 자체를 승인해 줄 수는 없다”며 수용불가 의사를 명확히 했다. 2003년 임금안이 타결이 안 된 상태이므로 2004년 임금인상은 아직 거론조차 실질적으로 되지 못했다.

벼랑에 내몰린 사람의 결연함과 분노

파업 119일차 춘천과 의령에서는 매일 조합원들이 대형마트 등에서 선전전과 1인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노조는 천막이 철거되었지만 서울 상경 20여 명의 조합원들의 농성도 강행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책임 있는 회사 측의 해결을 요구하는 각계의 성명과 비난 역시 높아지고 있다. 지난 18일 강원도 풀무원노사관계제자리찾기공대위(공대위), 경남 공대위는 풀무원 불매운동에 돌입했고, 민주노총과 화학섬유연맹 역시 20일 풀무원 불매운동에 돌입했다. 또한 민주노총은 전국에 집회 신고를 내고 매주 2회 이상 집회나 선전전을 열기로 결정했으며, 산하 사업장 매장 가판대에서 풀무원 물건을 수거할 것을 결의한 상태다.

박엄선 풀무원 춘천공장 위원장은 “아직까지 이탈자는 전혀 없고, 어떻게든 이 자리를 지키며 동력이 안 떨어지게 의지를 다져갈 것이다. 또한 좀 더 높은 수위의 전체적인 공세 역시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의지를 전했다.

천막이 철거된 자리에 심어진 나무들을 바라보는 조합원

파업 초기 농성장에서 투쟁의 승리에 대한 담담한 자신감을 보여주던 의령의 한 조합원이 4개월간 숙소였던 농성 천막이 뜯겨나간 자리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자신들은 10년 넘게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근골격계에 시달려 온 순박한 노동자들이라며 현장의 실태를 하나하나 얘기해 주던 그 조합원의 얼굴에는 3개월 전 순박했던 눈빛이 아닌 벼랑에 내몰린 사람의 결연함과 분노가 서려 있었다.

이 날 4명의 풀무원 노동자들은 간이 텐트에서 노숙을 하고, 16명의 노동자들은 민주노총 서울본부에서 밤을 보냈다. 교섭은 아직 재개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생명을 하늘처럼, “조직과 개인의 균형과 조화를 통해서 조직의 능력과 발전과 개인의 보람있는 삶의 실현”이라는 풀무원 인사관리 가치가 참으로 무색한 파업 120일, 노동자들은 오늘도 다시 거리로 나섰다.
태그

풀무원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최하은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 공유정옥

    http://www.pnojo.org로 가시면
    투쟁 소식과 함께 서명운동에 동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