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고 힘찬 모습으로 직권면직에 대응한 고용직 조합원들
마침내 직권면직이 떨어진 31일 오전, 경찰청고용직노조 전 조합원 결의대회가 경찰청 건너편 서대문 의주로 공원에서 열렸다. 간부농성 11일차, 전조합원 단식 5일차를 맞이하고 공무원직을 상실하게 된 날이었지만 눈물 바다였던 이전 집회 분위기와 이 날의 분위기는 아주 달랐다.
조합원들은 팔뚝질을 하고 노래를 부르며 소녀처럼 활짝 웃으며 집회장으로 뛰어 들어왔다. 신임 양경규 공공연맹 위원장과 박인숙 민주노동당여성담당 최고위원과 민주노동당 서울시지부 간부들도 집회에 참석했다.
최혜순 위원장, "오늘부터 우리는 민간인"
이제는 공식적인 사전행사가 되다시피한 삭발간부들의 율동이 있은 후 장희정 사무국장의 사회로 본 집회가 시작됐다. 먼저 대회사에 나선 최혜순 위원장은 “경찰청에 다시 돌아가 더러워서 못해먹겠다고 사표 쓰고 나오는 한이 있어도, 우리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싸우자”며 “오늘부로 우리는 민간인이 됐다. 이전에는 플라스틱 방패를 들고 나오더니 민간인이 됐다고 쇠방패를 들고나와 막고 닭장차 숫자도 줄였다”고 경찰청을 성토했다. 이어 “우리는 지금 남편, 자식이 보고 싶어도 참고 있다. 일단 이 싸움을 이기고 돌아가자”고 조합원들의 결의를 다졌다.
내일부터 임기가 시작되는 양경규 신임공공연맹위원장이 연대발언에 나섰다. 전임 이호동 위원장 역시 선거낙선 이후에도 경찰청고용직노조의 투쟁에 적극적으로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 좋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양경규 위원장은 “여러분의 투쟁과 저의 위원장 임기, 6기 연맹 집행부가 함께 시작한다”며 “여러분의 시작이 저의 시작이고 여러분의 끝이 저의 시작이다”고 운을 뗏다. 이어 “지난 16일간의 투쟁으로 여러분은 노동자로 다시 태어났다”며 “다시 태어난 투사로 여러분들이 새로운 투쟁을 시작하리라 믿는다”고 고용직조합원들을 격려했다.
"여성노동자는 강하다!"
박인숙 민주노동당최고위원도 연대발언을 했다. 박인숙 최고위원은 “간담회나 삭발식때 항상 눈물범벅으로 만났는데 오늘은 밝은 여성노동자의 모습으로 만났다”며 활짝 웃었다. “10년 이상 일한 여성노동자들을 국가기관이 찬 거리로 내몰았다”며 “이 싸움은 누가 더 질기냐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희정 노조 사무국장이 “지금까지 여성은 약한 줄 알았는데 여성노동자는 강하다는 것을 이번에 느꼈다”고 화답했다.
경찰청고용직노조와 비슷한 경험을 겪었던 자치노조의 안치복 위원장이 단상에 올랐다. 안치복 위워장은 “여러분이 노조를 세워 6개월을 싸워 최기문 경찰청장의 목이 날아갔다”며 “들리는 말에 의하면 최기문 청장이 24일 보직해임이 됐는데 싹싹 빌어 27일 자진사퇴 하는 형식을 취했다”며 “청문회 절차가 남아있는 신임 허준영 청장도 여러분이 날려버릴 수 있다”고 말해 조합원들의 환호를 이끌어 냈다.
지역 조합원 세명의 투쟁 발언이 있은 후 퍼포먼스가 벌어졌다. 행자부, 정부, 경찰청장, 직권면직 이라는 글자가 4면에 적혀있는 상징물을 박살내는 퍼포먼스가 조합원들의 스트레스를 확 날려버렸다.
신경 곤두세우는 경찰청
몸은 괜찮냐, 힘들진 않냐며 안부를 묻던 그 경찰이 통화 도중 “나 지금 이 앞에 와 있는데..”하며 말을 꺼냈다고 한다. 섬뜩해진 박미경 조합원은 회유를 시도하는 그 경찰관에게 “이상한 소리하실 것 같으니 통화 더 하기 싫다”고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그 경찰은 강원도에서 근무하고 있고 또한 보직도 정보 쪽이 아니라 일반 지구대 근무자라고 한다.
추수작업(조합원 개개인을 추적하고 감시하는 경찰활동)이 정보과 형사나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 뿐 아니라 과거 친분이 있었던 사람들을 통해 광범위하게 이루어 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결의대회가 끝난 후 장희정 사무국장은 직권면직의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실감이 안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직권면직을 인정할 수 도 없다”고 단호하게 답했다.
신임 경찰청장 인사청문회가 좋은 기회
한 맺힌 경험들을 서로 나누며 눈물을 흘리던 경찰청고용직노조 조합원들은 16일의 투쟁을 통해 팔뚝질이 어색하지 않은 옹골찬 싸움꾼으로 거듭났다. 직권면직이 떨어진 오늘, 조합원들의 표정은 한층 더 밝았다.
한편 최기문 경찰청장이 물러나고 허준영 서울경찰청장이 신임 경찰청장직을 맡은 것은 경찰청고용직노조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라는 평가다. 허준영 청장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정식으로 청장직위에 오를 수 있다. 따라서 경찰청장 인사청문회에서 고용직노조의 문제가 적극 제기될 수 있도록 다각도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