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문 경찰청장의 퇴임과 신임 허준영 경찰청장 임명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경찰청고용직노조의 경찰청 앞 집회가 계속됐다.
눈발이 흩날리는, 18일 오전 11시 경찰청 건너편 의주로 공원에서 ‘경찰청 고용직공무원 강제해고 철회와 기능직 전환을 촉구’하는 공공연맹 기자회견과 결의대회가 연이어 벌어졌다.
공공연맹은 기자회견에서 지난 해 12월 31일 자행된 경찰청 고용직공무원에 대한 강제해고(직권면직)을 즉각 철회하고 기능직으로 특별임용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또한 지난 14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허준영 신임 경찰청장이 “경찰청 내에서도 취약계층이(고용직공무원) 있는 것을 안다”며 “제도적 구제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것을 지적하며 경찰청고용직공무원노조와 직접 대화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기자회견에 함께 참석한 신승철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민주노총은 2월 비정규입법쟁취 투쟁을 앞두고 현자불법파견과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싸움으로 전초전을 삼겠다”고 호언했다.
고용직노조, “전원 기능직으로 특별임용하라”
기자회견과 함께 경찰청고용직공무원노조는 ‘신임 경찰청장 취임에 따른 경찰고용직공무원노조 입장’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고용직노조는 “89년 고용직직제가 폐지될 당시 이미 대통령 시행령으로 유사경력 3년 이상인 자들을 기능직으로 특별임용한 사례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공개경쟁시험을 통해 89명을 기능직 신규채용하겠다는 경찰청의 입장에 대해 “그때의 법을 적용하여 자진퇴직 하지 않은 87명의 고용직공무원들은 전원 기능직으로 특별임용해야 함이 마땅함에도 계속 특별채용 운운하며 제한경쟁시험을 보라고 하는 경찰청의 억지는 즉각 시정”되어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같은 자리에서 ‘경찰청 고용직공무원 강제해고 철회와 기능직 전환 쟁취를 위한 공공연맹 결의대회’가 진행됐다. 결의대회에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조인 경마진흥 노조, 자동차운전학원노조, 시설관리노조 조합원들이 함께했다. 또한 꾸준히 연대해 온 민주노총 서울본부, 자치노조, 박인숙 민주노동당 여성부문 최고위원, 민주노동당 서울시지부 당원들도 참가했다.
양경규 공공연맹 위원장은 대회사를 통해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라 공공의 적이 되고 있다”며 “여성노동자라고 해서 대충 짜르면 물러설 줄 알았다면 오산”이라고 경고했다. 박인숙 민주노동당 여성담당 최고위원은 “씩씩한 언니들은 여기 다 모여있다”며 “눈비에 젖은 옷은 빨면 되고 머리는 감으면 되지만 우리의 투쟁은 미룰 수 없다”고 조합원들의 결의를 높였다.
역시 힘든 싸움 펼치는 공공부문 비정규노동자들
힘든 사람의 사정은 힘든 사람들이 안다고 이 날 집회에는 역시 힘겨운 싸움을 진행하고 있는 경마진흥노조 조합원들이 다수 참석했고, 이명조 경마진흥 노조 위원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공공부문 소규모 비정규 투쟁 사업장의 하나인 경마진흥(주)의 속사정은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다. 경마진흥(주)는 농림부 산하기관인 한국마사회의 자회사로, 마사회는 경마진흥(주)과 도급계약을 체결해 인력을 운영하며 실질적인 인사노무관리및 작업지시를 해왔다.
작년 6월 경마진흥노조는 불법파견 진정을 했고 이에 인천지방노동사무소에서 “경마진흥(주)과 한국마사회간 행해진 업무는 도급이라기보다 그 실질에 있어 파견에 해당된다”며 “진정인(경마진흥노조)는 마사회소속의 근로자로 보아야 하므로 이제라도 진정인의 요구대로 근로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해야 하니 근로계약 미체결 상태를 시정하고 9월 24일까지 통보할 것”이라는 시정지시문을 하달했다.
경찰청과 마사회는 닮은 꼴?
그러나 ‘배째라’ 로 일관해오던 마사회는 작년 12월 8일 일방적으로 05년 시설관리 용역계약을 변경해 계약을 해지하고 경마진흥회 소속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몰았고 노동자들의 요구를 묵살했다.
경찰청은 정부기관, 마사회는 정부산하기관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고용문제를 해결하겠다 호언하는 정부가 앞장서서 힘없는 비정규직, 하위직 노동자들부터 거리로 내몰고 있는 점은 놀랍도록 닮은 꼴이라는 지적이다.
역시 상황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인 자동차운전노조 조합원들도 참가해 소중한 투쟁기금을 전달했다.
노동가수 박준의 노래공연과 조합원 투쟁발언에 이어 최혜순 경찰청고용직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이 나와 “이제는 떨어질 곳도 없고, 물러설 곳도 없어 우리는 올라갈 곳 밖에 없다”며 발언을 시작했다. 최혜순 위원장은 허준영 신임경찰청장에게 면담을 요구하며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직장, 우리의 일자리인 경찰로 돌아가 썩어빠진 작태를 바로 잡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각자 집을 떠나 34일째 거점투쟁을 진행하는 고용직 조합원들의 표정은 여전히 밝고, 목소리는 눈발을 뚫고 힘차게 퍼져나갔다. 삭발한 조합원들의 머리는 까만 밤송이처럼 자라났다. 결의대회를 마친 조합원들은 경찰청 정문 앞에서 "경찰청장 나오라"며 큰 함성을 지르고 나서야 거점투쟁장소인 민주노동당 당사로 돌아갔다.
경찰청고용직 노조 투쟁 앞으로 어떻게 되나
질긴 싸움 성과 눈 앞에, 긴장 늦추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지적도
지난해 말 최기문 경찰청장의 갑작스러운 퇴진으로 경찰청고용직노조의 싸움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물론 최기문 경찰청장의 퇴진 이후에도 직권면직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고용직 노조 조합원들 스스로의 지치지 않는 싸움이 계속 됐고 인터넷 대안 미디어를 중심으로 고용직노조의 투쟁과 직권면직의 불합리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됐고 미약하나마 사회적 이슈화에 성공했다.
결국 허준영 신임 경찰청장 인사청문회에서 이영순 민주노동당 의원이 경찰청고용직 직권면직에 관한 질의를 펼쳤고 신임 경찰청장은 “제도적 구체적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미흡하나마 전향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경찰청고용직공무원노동조합 결성 당시부터 함께 하고 있는 이상훈 공공연맹 미조직비정규실장은 “이영순 의원이 허준영 신임 경찰청장과 직접 (고용직 조합원 문제에 대해)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안다”며 “또한 민주노총과 경찰청사이 대화의 창구는 마련되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현재 경찰청은 직권면직 이후 개별적으로 일용직으로 재임용할 수 있다는 입장에서 한 발 물러서 “공개경쟁시험을 통해 89명을 기능직으로 신규채용하겠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물론 고용직 조합 측은 “공개경쟁시험을 통한 신규채용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안”이라며 강경하게 맞서고 있다.
경찰청이 시험을 통해 기능직 채용하겠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는 것을 볼 때, 예산이나 정원의 문제는 해결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경찰청이 공개경쟁 시험을 통한 채용이라는 절차를 내세우는 것은 향후 고용직노조 조합원들이 경찰조직으로 돌아갔을 경우 경찰의 여러 불합리한 관행들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을 우려, 조직적 실체를 와해시키고자 하는 속내로 보인다.
힘든 싸움을 견디고 질기게 버텨내서 경찰청고용직공무원들은 이제 주도권을 잡았다. 경찰청의 양보 아닌 양보에 흔들리지 말고 조금만 더 버텨 조직적 성과를 거둬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