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십도에 가까운 날씨에 길바닥에 나선 고용직노조 조합원들. |
72일째 농성을 진행중인 경찰청고용직노동조합 전 조합원들의 기대를 모았던 경찰청 경무기획국장 면담이 아무런 성과를 남기지 못하고 마무리 됐다. 한낮의 바람도 매서웠던 25일 오후 1시, 서대문지하철역 3번 출구 입구에서 직권면직 철회 기능직 전환 경찰청 고용직 노조 결의대회가 열렸고 오후 2시 부터는 경찰청고용직공무원노조 간부 5명과 경찰청 경무기획국장을 필두로한 간부들과의 첫 번째 공식 면담이 열렸다.
애초 경찰청고용직공무원노조는 경찰청 맞은편 의주로 공원에서 집회를 진행해왔으나 현재 이 곳에 이름모를 단체가 3월말까지 집회신고를 내놓았다. 물론 어떠한 단체도 의주로 공원에서 실제 집회를 열고 있지는 않다.
이 날 공식면담이 성사되기 까지 경찰청고용직공무원노조는 험난한 과정을 겪었다. 경찰청 고용직 노조는 경찰청·청와대 앞 집회 및 1인 시위와 경찰청·행자부·중앙인사위 인사담당자 면담,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청와대 신문고 민원등을 지속적으로 펼쳐왔다.
이에 대해 경찰청은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책임 없는 하위직급자를 내세워 경찰청고용직공무원노조의 요구를 무마하거나 차일피일 미뤄왔다. 결국 지난 17일 오전 7시 30분 경찰청고용직공무원노조 조합원들이 불시에 경찰청을 항의방문하고 물리적 충돌이 벌어지고 나서야 25일의 면담이 결정됐다.
전경찰조직의 예산과 인사기획 맡고 있는 홍영기 경무기획국장
1시부터 시작된 집회에는 공공연맹, 시설관리노조, 전국통신산업노조등이 함께 했다. 집회 자리에서 조합원들은 경찰조직에서 경찰청장, 차장에 이어 세 번째 직급을 차지 하고 있고 전 경찰조직의 예산과 인사기획을 책임지고 있는 홍영기 치안감을 면담한다는 사실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또한 홍영기 치안감은 지난 1월 21일 승진해 경무기획국장직을 맡기 이전에도 경무기획국 산하 혁신기획단장직을 맡고 있어 경찰청 내의 구조조정 과정을 총괄했기 때문에 경찰청 고용직 관련 사안에 대해 문외한도 아닌 상황이기도 했다.
오후 2시 경찰청고용직공무원노조의 문정영, 김미숙 부위원장과 장희정 사무국장, 김향실 전북지부장, 김은미 강원지부장이 면담에 나섰다. 당초 김태진 공공연맹 부위원장이 함께 면담에 나설 계획이었으나 경찰청의 강력한 반발로 고용직 조합원들만 면담에 임했다.
경찰청, 면담과정에서도 여러 가지 빈축 사
면담이 이미 예정되어 있었지만 경찰청의 철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
이 과정에서 경찰청은 ‘우리는 이들을 노조로 인정하지 않고 있고 상급단체를 함께 만날 경우 노조를 인정하는 셈’이 된다는 입장을 내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면담과정에서 경찰청은 고용직공무원노조라는 명칭 대신에 ‘고용직해고자 모임’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경찰청은 ‘면담 과정을 비공개 하기로 약속했다’며 면담 취재는 커녕 사진촬용조차 호용치 않아 취재에 나선 기자들은 경찰청 민원실에서 기다렸다. 이 과정에서 경찰청은 고용직공무원노조의 사진촬영과 기록을 담당하는 박미경 조합원을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민원실에도 들어오지 못하게 가로막고 건물 밖에 한참 동안 세워놓아 빈축을 샀다. 결국 경찰청은 취재기자들의 항의에 부딪혀 박미경 조합원이 건물 안으로 들어와 기다릴 수 있도록 허용하기도 했다.
홍영기, “앞으로 불법행위에는 엄정하게 대처할 것”
성과없이 면담을 마무리하고 허탈한 표정으로 나오는 노조 간부들. |
이 날 면담에서 경찰청 고용직 조합원들은 △직권면직철회 △기능직전환 △노동조합인정 이라는 요구안을 제출했다. 오후 2시부터 시작된 면담은 오후 4시가 훨씬 넘어 까지 진행됐다. 이 시간 동안 나머지 조합원들은 서대문지하철역 입구에서 겨울바람을 맞아 뺨과 귀가 빨갛게 얼은채로 길바닥에 앉아 면담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4시 30분경 면담에 들어간 조합 간부들이 상기된 표정으로 면담장을 하나 둘 빠져나왔다. 문정영 부위원장은 “벽에다 대고 이야기 하는 기분이었다”는 말로 상황을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면담자들에 따르면 홍영기 경찰청 경무기획국장은 “법과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경찰조직이기 때문에 요구안을 들어줄 수 없다”며 “사기업에 취업알선을 해줄 수는 있고 기능직 공무원 시험을 봐서 다시 들어오던가 아니면 일용직 취업은 적극 도와주겠으니 가고 싶은 경찰서 이름을 적어서 제출하라”는 어처구니 없는 발언을 내놓았다고 한다.
또한 “지금까지는 경찰가족이라는 정리를 봐서 봐주기도 했지만 앞으로 불법집회를 벌이면 엄정하게 대처할 것”이라는 엄포를 놓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고 전해졌다.
“다음에는 경찰청장 불러내자”
아기를 업고 결의 대회에 나선 조합원도 눈에 띄었다. |
한낮인데도 불구하고 영하 10도 가까이 떨어진 날씨에 길바닥에서 면담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조합원들은 이 소식을 전해듣고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김미숙 부위원장은 “일용직 취업을 적극 돕겠다는 경무기획국장한테 ‘국장님은 다시 순경으로 시작하라면 하겠냐’”고 되물었다“라며 목소리를 높였고 조합원들은 한 목소리로 경무기획국장의 답변을 일축했다. 분노의 눈물을 흘리는 조합원도 눈에 띄었고 ”72일간 싸워 경무기획국장을 만났으니 다음에는 경찰청장을 불러낼 수 있을 것“이라며 동료들을 다독이는 조합원도 보였다.
면담의 모든 과정에 동석하지는 못했지만 경찰청과 일정한 창구 역할을 담당한 곽노충 공공연맹 조직국장은 “경무기획국과 공공연맹 사이에 대화창구는 유지하기로 했다”며 “경찰청이 이런식으로 나오니 경찰청고용직공무원노조와 공공연맹의 투쟁양상도 한 층 더 강화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 전했다. 곽노충 조직국장은 “주말 동안 고용직노조, 연맹, 총연맹이 전술 논의를 펼쳐 다음 주부터는 강력하고 다양한 투쟁이 펼쳐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저녁 여가시간이면 투쟁가, 율동을 하나 둘 배우는 재미가 쏠쏠한데 당사에서 밥 짓는 냄새, 김치냄새를 풍기는게 민주노동당 당직자들에게 제일 미안하다”며 웃음 짓던 조합원들이 매운 바람을 뚫고 다시 농성장으로 되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