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노조 건설기금 마련 연대의 밤' 열려

1천여 명 참석해 국적을 넘어선 연대 과시해

지난 12일 고려대학교에서는 ‘서울경인 이주노동자노동조합 건설기금 마련 연대의 밤’ 행사가 열렸다. 오후 5시부터 밤 11시까지 고려대 학생식당에서 진행된 이날 행사는 민주노총 산하 노조 조합원을 비롯해 시민, 학생, 단체활동가 등 약 1천여 명이 참석해 국적을 넘어선 뜨거운 연대의 장으로 마련되었다.


이주노동자들, 독자노조 건설 닻 올라

한국정부의 합동단속과 강제추방정책으로 이주노동자들이 죽어나가던 2003년 말, 이주노동자들은 정부의 탄압에 맞서 명동성당에서 ‘고용허가제 폐지, 노동허가제 쟁취’를 내걸고 농성투쟁에 돌입했다.

그로부터 1년, 지난 해 11월 26일 이주노동자들은 385일 간의 기나 긴 투쟁을 정리하였다. 이주노동자들의 치열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끝끝내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주노동자들이 목 놓아 외치던 노동허가제는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이주노동자들의 치열한 투쟁은 한국사회에 그들의 존재와 목소리를 알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이주노동자들의 기나긴 투쟁의 성과와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 1월 23일, 서울경인지역 평등노조 이주노동자지부는 임시총회를 통해 수도권 이주노동자 독자 노동조합 건설을 결의하였다. 이로써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들의 독자 노조 건설을 향한 닻이 올려지게 된 것이다. 이번 ‘연대의 밤’ 행사는 이주노동자들의 노조 건설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는 한편, 한국노동자와 이주노동자들 간의 연대와 이주노동 운동에 대한 고민을 함께하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이주노동자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안와르 평등노조 이주노동자지부장 1문 1답

이번 행사를 준비한 목적은
이번 행사의 가장 큰 목적은 서울경인지역 이주노동자 독자 노조 건설 기금을 마련하는 것이다. 또 이번 ‘연대의 밤’ 행사를 통해 그간 이주노동자 운동과 함께 해온 사람들과의 연대를 보다 더 공고히 하고 싶다.

마련된 기금은 구체적으로 어떤 곳에 쓰이게 되나
현재 사무실이 없어 민주노총 서울본부를 빌려 쓰고 있다. 우선은 노조 사무실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다. 또 노조 차량을 구입하려 한다. 서울 이외에 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지역조직들이 분포되었는데, 지역총회에 한번 내려가면 차가 끊겨 서울로 돌아오기가 쉽지 않다. 원활한 지역조직화를 위해서는 차가 꼭 필요할 것 같다.

노조의 출범은 언제쯤으로 잡고 있나
이르면 4월 초, 늦어도 4월 안에는 공식 출범할 계획이다.

이주노동자들의 독자 노조 건설에 있어 가장 어려운 부분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재정 문제가 가장 힘든 것 같다. 이번 행사도 그런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민주노총 차원의 지원은 없었는가
이주노동자들은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에 대한 기대가 많다. 그들이 한번 움직이면 잘될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민주노총도 이주노동자에 대한 여러 가지 사업계획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움직임은 없다. 민주노총에서는 전국노조로 가면 지원하겠다는 얘기 정도는 되고 있다.

상황이 그렇다면, 전국단위 노조로 위상을 잡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전국노조에 대한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현재 이주노동자들의 70%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어 일단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 역량을 중심으로 노조를 만들게 되었다. 우선은 수도권 노조가 출범하지만, 출범 이후 전국투쟁단 등을 꾸려 지역역량을 조직한 뒤 전국노조로 전환하는 방안 등 다양한 차원에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노조 출범 이후 포부나 계획은
1년 넘게 진행한 명동성당 농성투쟁을 통해 대사회적으로 이주노동자 문제를 알려낼 수 있었다. 또 명동성당 농성투쟁을 통해 이주노동자들도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도 모두가 단결하고, 함께 가면 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에 출범하는 노조가 한국에서 일하는 모든 이주노동자들의 권리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주방에서는 각국의 음식이, 무대에서는 각국의 문화공연이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가 '라면치킨볶음'을 만들고 있다
이날 행사 장소로 마련된 고려대 학생식당은 7시가 넘자 방문한 참석자들로 발 딛을 틈이 없었다. 특히 이날 행사에서는 이주노동자와 마찬가지로 한국사회 주류 노동운동으로부터 비껴나 있는 비정규직노동자, 영세 장기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한국에서 가장 어렵게 투쟁하고 있는 이들이 바로 이주노동자들이다. 그런 점에서 이주노동자들과 비정규직노동자들은 교감할 수 있는 지점이 많은 것 같다”며 “모든 노동자들과 연대해야겠지만, 특히 이주노동자들에게는 마음이 더 많이 간다”며 비슷한 처지의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강한 연대감을 드러냈다.

6시간 가까이 진행된 이날 행사에는 이주노동자, 민주노총 산하 각 연맹, 학생단체, 민중가수들의 문화공연이 이어져 행사의 분위기를 한층 뜨겁게 달구었다. 고려대학교 율동패 ‘비상’의 율동, 민중가수 연영석 씨의 노래, 우지용 문화예술노조 부위원장의 창소리 등 행사 전반부는 한국노동자들의 문화공연이 이어졌다. 이어 행사 후반부에는 이주노동자들의 문화공연이 다채롭게 진행되었다.

또 이날 행사에서 판매된 요리 준비는 네팔, 방글라데시, 한국 등 각국 노동자들로 구성된 ‘드림팀’이 맡았다.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만든 ‘루띠’, 네팔과 한국음식을 혼합한 퓨젼스타일 요리 ‘라면치킨볶음’ 그리고 한국노동자들이 만든 ‘골뱅이무침’ 등 이날 행사에 등장한 먹거리를 통해서도 국적을 넘어선 연대는 표현되고 있었다.

주방에서 ‘루띠’를 만들던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삼수 씨는 “힘들지 않냐”고 말을 건네자 “이런 자리에서 음식을 만드는 것이 너무 즐겁고, 기분이 좋다”며 흐뭇해했다. 한국에 와 레미콘 운전을 하고 있는 그는 “이주노동자들의 노조가 생긴다는 것 자체가 너무 기쁘다. 또 그것을 위해 한국노동자들이 함께 해주고 있어 힘이 난다”며 “이주노동자노조가 생기고, 잘 되어서 우리도 한국에서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인정받고 싶다”고 말했다.

  '루띠'를 만들고 있는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단병호 의원, 이수호 위원장 연대와 지지 밝혀

이날 ‘연대의 밤’ 행사에는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 등도 참석해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연대와 지지의사를 밝혔다.

“이주노동자들을 생각할 때마다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며 연대사를 시작한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심심찮게 제기되었던 민주노총 이주노동자 정책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듯 “민주노총은 그동안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해 열심히 일한다고 했지만, 미흡하고 부족한 점이 많았다”며 그동안의 민주노총 이주노동자 사업을 평가했다.

이수호 위원장은 이어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단위들이 현재 이 땅에서 가장 힘겹게 투쟁하는 분들인 것 같다”며 “민주노총은 탄압받고, 어려운 조건에 있는 모든 노동자들과 새롭게 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길을 올바로 갈 수 있게 조언해달라”고 호소했다.

"이주노동자 문제, 독자적인 수준에서 논의와 역량 배치하겠다"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 1문 1답

이주노동자 '연대의 밤' 행사에 위원장이 직접 참석하는 것은 이례적인 것 같다
이주노동자 문제는 노동운동의 정체성과 관련해 중요한 관점을 제공해 주고 있다. 이주노동자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냐’가 가지고 있는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주노동자 문제가 현재 현실과 운동의 괴리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측면이 있다. 민주노총이 이주노동자 사업을 하고 있지만, 어려운 점이 많았다.

의도하든, 하지 않았든 그간 민주노총이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해 소홀했다는 지적이 있다
현재 노조운동이 가지고 있는 일종의 한계지점인 것 같다. 민주노총은 비정규직실을 중심으로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사업을 배치했지만 부족한 점이 있었다. 인권차원에서 이주노동자 문제와 관련한 단체들이 생기고,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었는데, 그것을 묶어세우기가 어려웠다. 이주노동자 문제에 있어서 민주노총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던 점이 있다.

현재까지의 상황은 그렇고, 앞으로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해 민주노총이 가지고 있는 계획은 무엇인가
어찌되었든 이주노동자 문제는 민주노총이 끌어안고 가야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이주노동자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 모든 단위와 함께하며, 다양한 논의 속에 자연스럽게 함께 가려하고 있다. 현재는 비정규직 문제에 포함시켜 놓고 있지만, 별개 수준에서 논의와 역량을 배치해 나가겠다.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은 “오늘 ‘연대의 밤’ 행사에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 무척 기쁘다”며 “이주노동자들이 현재 한국사회에서 어떤 불이익을 받고 있느냐는 굳이 말 안 해도 될 것 같다. 국적, 피부색, 민족 등의 차이로 차별받고 있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여기 있는 분들과 함께 할 것”이라며 연대의 뜻을 전했다.

단병호 의원은 이어 “정부, 사용자 단체 등 노동진영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나서 비정규직법안을 처리하려 하고 있다. 또 정부와 자본은 올해 노동관계법을 전면적으로 개편하려 하고 있다”며 “올해는 한국노동자들에게도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개악법안들을 힘을 합쳐 막아야한다”며 한국노동자와 이주노동자들 간의 연대와 단결을 강조했다.

이날 연대주점을 통해 마련된 기금은 이주노동자노조 사무실 및 차량 구입비 등으로 쓰일 예정이다. 서울경인 이주노동자노조는 이르면 4월 초 공식 출범할 예정이다. 한편, 이번 행사는 ‘서울경인지역 평등노조 이주노동자지부’, ‘이주노동자운동 후원회’가 주최했고, 민주노총 서울본부, 민주노동당 서울시당위원회, 전국비정규 연대회의, 대구성서공단,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 등이 후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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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노동자 , 고용허가제 , 노동허가제 , 이주노동자노조 , 연대주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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