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는 무직자?

故 구본주 씨 사망 관련, 삼성화재 예술인에 대한 사회적 가치 불인정 논란

"민중미술이란 이름으로 대중화 된 책 한 권, 그리고 그 책과 함께 시작된 새로운 교우관계가 나에게 새로운 고민거리로 던져졌고, 지금도 남아있는 고민들을 풀기 위해 작업을 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작업에 대한 나의 고민이란 '나는 왜 미술을 하는가' 정도였는데, 이젠 한 걸음 더 나아가 '난 과연 어떠한 미술을 해야 하는가', '어떠한 미술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동을 불러 일으킬 수 있을까'하는, 내 속에서 만의 자족적인 작업이 아닌 다른 이들을 포함해서 생각할 줄 아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이후로 난 운동권이라 불리우며 새로운 삶과 사고 방식들을 접하게 되었다" - 구본주, 1992년 겨울 中

  혁명은 단호한 것이다/1990/구본주

민중의 삶을 조각하던 故 구본주 씨

민중의 삶을 조각하던 한 작가가 있었다. 눈치밥 30년에 눈만 남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을 이야기 하고, 삶에 쫒겨 넥타이가 뒤로 넘어간 셀러리맨의 삶을 이야기 하던 조각가 故 구본주 씨는 죽어서도 예술가의 노동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 대해 아직 투쟁 중이다.

故 구본주 씨는 2003년 9월 29일 새벽, 포천에서 밤길을 지나다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젊은 예술가의 죽음에 안타까움으로 흐르는 눈물을 다 닦아내기도 전에, 가해자 측 보험회사인 삼성화재가 젊은 예술가의 노동을 제대로 인정하고 있지 않아 많은 예술인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삼성화재 측이 보험금 산정을 놓고 유가족과 법정 소송을 벌이고 있는 과정에서 故 구본주 씨를 무직자로 간주해 물의를 빚고 있는 것이다.

교통사고로 사람이 죽게 되면 유가족은 가해자 측 자동차보험회사와 손해배상청구소송을 거쳐 돈으로 보상을 받게 된다. 故 구본주 씨 유가족 측은 소송을 한지 1년 반이 지난 올해 초 △피해자 과실 범위 25% 미만 △가동연한(정년) 65세 인정 △2003년 노동부 발간 임금구조기본통계조사보고서 상의 예술 전문가 5∼9년 경력 인정 등으로 원고일부승소판결을 내렸다.

삼성화재, "예술가는 무직자다"

[출처: 삼성화재 홈페이지]

이에 삼성화재는 "구본주 씨의 작품이 육체적 노동의 작업을 요구하는 대형상징물이기 때문에 육체적 노동을 주된 업무로 하는 직종의 정년을 적용해야 하며, 작가의 소득을 입증할 만한 자료가 없기 때문에 예술활동에 대한 수입은 입증할 수 없음으로 구본주 씨의 수입을 '도시일용노임'으로 한정해야 한다"고 밝히고, △피해자 과실 범위 70% △가동연한(정년) 60세 △경력 불인정, 소득 불인정, 무직자에 준한 배상 등을 요구하며 항소를 진행하고 있다. 삼성화재의 주장대로라면 '도시일용노임'에 준한 산정이란 법원이 통상적으로 내리는 '무직자'에 대한 기준이며, 결국 삼성화재는 조각가 구본주 씨를 무직자로 취급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삼성화재의 주장에 대해 "삼성화재는 예술과 예술인에 대한 사회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예술인들은 '조각가故구본주소송(삼성화재)해결을위한예술인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지난 4일 성명서를 발표하고, 삼성화재 본관 앞에서 일인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예술인들은 성명서를 통해 "문화와 예술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자랑스런 삼성가의 구성원, 그 삼성화재가 '푼돈'을 아끼기 위해 한 예술가의 활동을 無로 돌리려 하고 있다"며 삼성화재를 강력히 비판하고 나섰다. 이어 "삼성화재는 '보상금 몇 푼이 아까워' 이 같은 게임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이후 유사 사례들에 대해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다시 말해 환금성이 증명되지 않는 예술의 가치를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자본의 추악한 논리가 게임의 법칙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고 예술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삼성화재를 규탄하고, "삼성화제는 고인의 예술가로서의 열정과 창작력, 사회에의 기여 등을 무시하고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음으로 고인과 유족 뿐 아니라 예술가 전체에 대한 모독을 저질렀다. 삼성화제는 즉각 유가족들에게 사과하고 항소를 포기하라"고 요구했다.

  8일 삼성화재 앞 일인시위에 나선 판화가 이윤엽 씨 [출처: 조각가故구본주소송(삼성화재)해결을위한예술인대책위원회]

예술가의 노동가치 인정 위해 사회적 인식변화 필요

안태호 대책위원회 실무위원은 "삼성화재의 판단은 철저하게 예술적 가치를 무시한 것이며, 이는 예술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없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예술가에게 정년이란 죽을 때 까지며 나이가 들어가면서 예술에 대한 다양한 인식의 변화가 생겨나기도 하고, 그 가치가 인정되기도 한다"며 삼성화재의 예술적 인식 없음을 비판하고, "예술가는 유통기한이 정해져 있는 기계가 아니다. 예술가는 창작력과 상상력을 통해 현재를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제시하기도 하고,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통로를 제시하기도 한다. 이러한 예술가들의 노동에 대해 제대로 된 가치가 평가되기 위해서는 예술가들을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조각가故구본주소송(삼성화재)해결을위한예술인대책위원회'에서는 이후 더 많은 예술인들의 연대를 통해 예술인 노동의 가치를 새롭게 제안하고 만들어 가기 위해 노력할 예정이다.
  파업/1990/구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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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 , 구본주 , 삼성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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