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8개월, 이제는 진짜 '공장으로 돌아가자'

[장투야!끝장내자!!](5) - 하이닉스 사내하청노동자들의 두 번째 여름

[장투야! 끝장내자!!]는 민중언론 참세상의 장기투쟁사업장을 위한 응원 기획이다. 장투사업장들은 7월4일부터 최대한 힘을 모아 투쟁을 한다고 한다. 장기투쟁사업장에 참세상이 쫓아간다. - 편집자 주


하이닉스매그나칩 청주공장 앞에 서면 늘 무겁다. 공장 담벼락에 빙 둘러쳐진 철조망이 무겁고 철조망 너머에 또 버티고 있는 거대한 컨테이너들이 그렇다.

정문 앞에 치렁치렁한 노동조합의 플래카드들과 페인트 글씨, 필시 오랫동안 눈보라와 비바람을 견뎌온 듯한 여러 동의 천막들에게서 느껴지는 투쟁한 세월의 무게가 또 그렇다.

7월 5일도 그랬다. 여름에도 을씨년스러운 공장 앞에 흐트러짐 없이 앉아 있는 충북지역 노동자들, 하이닉스 문제를 걸고 지역총파업을 벌인 것이 처음도 아닌데 덥고 습한 날씨 탓인지 무거운 공기와 함께 가라앉기만 하는.

적막을 깨고 선봉대가 경비실 셔터를 부수고 유리를 깬다. 하루이틀 싸운게 아닐 그 선봉대들은 경비실 안까지 전투경찰이 빼곡히 막아서자 방향을 급선회해 북문으로 달려간다. 헐레벌떡 따라갔더니 이미 선봉대가 북문 위 컨테이너를 점령하고 있다.




육중한 철문은 몇번의 실랑이 끝에 고리가 끊어져나가 활짝 열리고, 겹겹이 세 대의 컨테이너를 한 시간 동안 당겨 끌어냈다. 적막한 공단에는 컨테이너에 연결한 끈을 당기는 노동자들의 '영차, 영차' 함성만이 울린다. 컨테이너가 치워진 공장, 그 공장을 들여다보니 맨 먼저 새까맣게 진을 치고 있는 전투경찰들이 보인다. 허리를 굽히고 고함을 지르며 바닥에 방패를 갈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1년 8개월. 지긋지긋하고 피가 말리고, 온몸이 으스러지는 자본의 탄압. 우리는 참고 또 참았다. 십 수년의 뼈를 묻은 정든 일터, 가족들과 함께한 삶의 일터, 나의 땀과 애정이 살아있는 자랑스런 일터! 그 일터로 돌아가길 갈망했다.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공장이며 일터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이제는 끝을 보자"(7월 5일,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지회 투쟁승리 지역총파업 투쟁결의문 중)

2004년 10월에 노조를 만들었다가 그 해 12월에 사측으로부터 '폐업'이라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 노동자들. 2005년 한해와 2006년 상반기를 꼬박 거리에서 보내고 두 번째 여름을 맞고 있다.

그 1년 8개월 동안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노동자들은 공장 앞에 천막을 치고, 셀 수 없이 집회를 하고, 지역 노동자들과 총파업을 함께 하고, 분신을 기도하고, 고압송전탑에 오르고, 삼보일배를 하고, 서울로 상경해 사장실을 점거하고, 단식을 하고, 청와대를 찾고, 유서를 썼다.


"하루 12시간 일해도 매년 변함없는 백만원이 갓 넘는 임금에 미래를 기약할 수 없었습니다. 일 년 이상의 수입 없는 긴 싸움에 몸과 마음이 지쳤지만 이젠 오기도 생깁니다. 이젠 마음의 준비가 됐네요. 일 년 이상을 길거리에서 투쟁하며 산 경험이기에 내 생명을 걸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조합원들 그동안 너무 힘들었어요. 여보 당신에겐 참으로 미안하구려"(2006년 1월 16일, 강필선 조합원 유서 중)

10년 근속에 65만원짜리 월급을 받던 이들이, 거리로 나와 얻어맞고 피흘리고 연행되고 수배되고, 지회장이 구속되고 조합원 30명이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단식하다 쓰러지고 강제 해산되고, 생활고로 살림살이를 길에 내놓고 배곯는 자녀들을 보며 피눈물을 흘리는 동안,

하이닉스매그나칩 자본은 '신노사문화상'을 받고, 1조 8천억원의 순이익을 내고, 청주공장 주변을 철조망과 컨테이너로 두르고, 청주공장과 서울 양재동 본사를 일당 2-30만원짜리 용역경비 수백명으로 두르고, 노동조합에 14억 원이라는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사장실에 찾아온 노동자들을 경찰에 진압을 요청해 쫓아냈다.

해고자 전원에게 '불법파견' 판정이 내려진 지도 1년인데 교섭은커녕 눈 하나 깜짝 않는다. 아, 지긋지긋한 자본!


"이해심 많았던 제 아내, 오랫동안 무일푼에 10원도 못 가져다주고 빚만 늘어가는 삶에 찌들려, 고통이 심해서 못살겠다고 어느날 술을 먹고 8층 집에서 뛰어내리려고 했을때, 저는 아내를 붙잡고 울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가족들의 목숨을 뒤로 하고 서울에 올라왔습니다. 전부 유서를 쓰고, 죽자는 마음으로.

죽기를 각오하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오늘도 내일도 투쟁하고 있습니다. 저희에게 무서운 것은 자본이나 공권력이 아닙니다. 동지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것이 가장 두렵습니다. 동지들, 저희들이 앞장서겠습니다. 많은 지지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저희에게 힘을 실어주십시오" (2006년 1월 24일, 상경투쟁에 나선 이경한 조합원)


7월 5일, 하이닉스매그나칩 청주공장 북문이 뚫리고 막 대치상황이 되자마자 노동부에서 연락이 왔다는 소식이 들어온다. 교섭에 진척이 있을만한 어떤 내용을 정부에서 직접 제시했다는 말을 듣고 그날의 투쟁은 마무리됐다.

어찌된 영문인지 공장에 원인을 알수 없는 정전 사태가 발생했다는 소식도 거의 동시에 들어온다. 반도체 공장에서의 정전이 사측에 얼마만큼의 손실을 입힐지 상상할 순 없어도, 공장 앞에 모인 노동자들은 "우리의 투쟁이 정당하다는 걸 하늘이 알아준다", "하이닉스 자본은 천벌받을거다"라고 해석하며 잠시나마 표정이 밝아졌다.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노동자들이 거리에서 '세번째 겨울'을 맞이하지 않았으면. 그들이 '복직'이라는 '진짜 선물'을 받을 때까지, 그래서 공장으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아무리 하이닉스 자본이 밟고 막아도, 그럴수록 그들의 투쟁은 '더욱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