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성산대교와 마포대교에서 기습 선전전을 하듯 옥상에서 현수막을 걸고 내려올 줄 알았다. 쉴 새 없이 퍼붓는 비를 맞으며 구호를 외친다. 옥상에서 사진을 찍고 건물 아래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출입문을 향해 갔다. 이게 뭔가? 출입문을 준비해온 철판으로 나사못을 박아 오도 가도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 참세상자료사진 |
장기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은 동아일보사 일민미술관 옥상 점거농성에 들어갔다. “구속을 각오하고 왔어요. 이렇게라도 외치지 않고서는 길이 없어요”라며 장대비를 맞으며 구호를 외친다.
12일, 동아일보사 옥상으로
옥상 아래에는 점거소식을 듣고 달려온 노동자들이 온몸으로 저항하며 경찰에 연행이 된다. 연행 과정을 지켜보는 점거농성자들의 구호 소리는 떨린다. 지금 이들의 얼굴에 흐르는 것은 빗물만은 아니다.
‘노동자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던…’하며 현 정권의 노동정책을 비판한다. 구속을 각오하고 올라온 장기투쟁사업장 노동자의 눈물을 생각했다. 노동자의 눈물은 누가 닦아 줄 것인가? 정부일까?
13일 오전 민주노총 사무실을 찾았다. 어제 옥상에서 만난 노동자들이 하나 둘 모인다. 무슨 일로 왔냐고 물으니 대답을 하지 않는다. 뭔가가 있는 것 같은데. 잠시 뒤 의문은 풀렸다.
13일, 민주노총으로
민주노총 17차 중앙집행위원회 오전 회의가 정회될 때쯤 방청석에 앉아있던 장기투쟁노동자 한 명이 발언을 요청한다. 조준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정회를 선언한 후 발언기회를 주었다.
노동자의 발언은 다음과 같다. 비정규 장기투쟁사업장이 공동투쟁을 하게 된 배경과 투쟁과정을 소개했다. 그리고 동아일보 점거농성을 계획하게 된 동기를 이야기 했다. 농성장 아래에 연대온 노동자들이 137명이 연행되고, 농성장 진압이 임박하자 민주노총에 지원을 요청하러 12일 FTA 저지를 위한 노동자 사전 집회장으로 갔다. 긴박한 상황을 알리는 발언기회를 요청했다. 하지만 민주노총 간부는 장기투쟁사업장 노동자의 요구를 묵살했다.
▲ 참세상자료사진 |
민주노총의 한 간부가 “이상한 사람이 와서 대오 정비를 하는데 방해하고 있다”고 말을 했다고 한다. 모 연맹 수석부위원장은 점거농성 소식을 듣고 민주노총 한 집행국 간부를 만나 상황을 논의하러 갔다. 그 간부는 “거기(동아일보사 옥상) 왜 올라갔는데, 줄넘기하러 올라갔어?”라고 하였다.
줄넘기하러 점거농성
민주노총 담당자들이 상급단체에 보고 하지 않은 투쟁이니 나 몰라라 한 것에 장기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은 분노하였고, 줄넘기하러 갔냐는 비아냥거림에 참을 수 없어 민주노총을 찾아온 것이다.
보고가 끝나자 민주노총 간부가 답변을 위해 마이크를 잡는다. 사무총국의 간부들은 적은 인원으로 열심히 일한다. 여러 번 구속을 당하며 싸워 온 사람이다. 민주노총도 소식을 듣고 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였다. 장투사업장을 담당하는 한 간부는 점거소식을 듣고 자신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투쟁을 하였다고 했다.
‘동아일보 점거가 담당자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투쟁이었다.’ 한참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헤매었다. 장투사업장 노동자들의 싸움에 함께 하지 못해 가슴이 아팠다고 해석을 해야 하나? 어리둥절하다.
민주노총 담당자 가슴에 대못을 박다
장투사업장 노동자들이 점거농성에 들어가기 전 민주노총 담당자를 만났다. 모종의 투쟁을 준비한다고 전했다. 이 말을 들은 담당자는 “민주노총 투쟁 일정(12일 FTA저지)이 있는데 이렇게 하면 어떻게 하냐?”고 했다. 함께 하지 못해 가슴이 아팠을 것 같지는 않다.
조준호 위원장이 수습에 나섰다. 아마 합의되지 못한 투쟁을 전개해 책임자로서 순간적으로 말실수를 한 것 같다. 줄넘기 소리를 들은 모 연맹 수석도 평소에 적절치 못한 표현을 많이 한다. 흥분한 거로 이해를 하고 넘어가야 한다.
하지만 수습이 되지 않았다. 민주노총과 협의되지 않은 투쟁은 하지 말라는 거냐, 이게 어찌 단순한 말실수냐며 항의가 이어졌다.
▲ 참세상자료사진 |
“민주노총과는 사전에 협의가 되지 않는다. 판(투쟁)을 만들자고 하면 역량이 없다, 시기에 맞지 않다고 번번이 거부했다. 별수 없이 우리끼리 결정하고 하여야 했다. 싸운다고 하면 막을까봐 (민주노총 담당자에게) 말을 못했다. 말할 때마다 커트 당했다.”
말할 때마다 커트
조준호 위원장은 장기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인지하였고, 내용을 조사해 진상을 알아보겠다고 했다.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또한 앞으로는 총연맹과 함께 할 것을 장투사업장 노동자에게 부탁하였다. 늘 장투사업장 문제 해결을 우선순위에 두고 노력을 한다고 했다.
몇 가지 모순과 의문점은 남는다.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은 누가 더 간절할까? 말실수로 넘기지 못하는 데에는 골이 너무 깊은 것은 아닐까? 사전에 협의되지 않으면 투쟁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순간적인 말실수였을까? 이후 중앙집행위 자리에서 논의를 하고 대책을 찾겠다고 했으니 슬기롭게 민주노총이 해결하리라 생각된다.
장기투쟁사업장의 문제는 민주노총 집행국이 모든 책임을 떠맡을 문제는 아니다. 각 지역본부와 연맹들도 함께 고민과 반성을 해야 한다. 장투사업장 노동자들도 물론 모든 것을 잘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잘못 읽으면 문제의 본질은 사라지고 비난으로 남을 수 있는 이야기다. 부끄러운 이야기고, 분열을 부추길 이야기다. 하지만 민주노총의 역사성과 장점은 감추는 게 아니라 들춰 해결하는 힘에 있다. 노동자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하는 현 정권에게 구걸하지 않고, 노동자 스스로 닦고 일어서는 힘이 민주노총에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눈물은 노동자가 닦자
오늘 민주노총에 왜 왔냐고 묻자, 얼버무리던 노동자의 얼굴이 떠오른다. 뒤에서 욕하는 것보다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는 민주노총이 있어 희망이다. 서운하지만 민주노총과 함께 하려는 마음의 발로일 거다.
7개 장투사업장 이름으로 뿌려진 요구서에 맨 마지막에는 당구장 표시가 있고, ‘표현이 거친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합니다’는 문구가 있다. 앞으로는 민주노총이 눈물을 닦아 주는 일보다 먼저 노동자의 눈물을 흘리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조준호 위원장과 즉석 대화를 나누는 동안 울먹이며 눈물을 흘리는 조합원이 많았다. 숱한 투쟁의 현장에서 흘리는 눈물보다 몇 배는 짠 것 같다.